가끔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요즘 같은 증시에 ‘코스닥’과 ‘바이오’ 두 단어 중 하나만 말해도 치를 떨거나 가슴 한편에 있던 자기 계좌의 파란색 숫자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나는 어쩌다 보니 그 둘 다에 속해 있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에 상장되어 있는 제약-바이오 업종 기업에 2020년 하반기에 입사해 IR, PR, 공시 업무를 맡은 지 곧 만 5년째를 꼭 채우게 된다. 이쯤 되면 제 업에 대해서 정의 내리거나 고찰하기 딱 좋은 시기다. 나는 누구이며 무얼 하는 사람인가 하는 물음 말이다.
IR담당자는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흔히 주식 담당자의 줄임말인 ‘주담’으로 불린다. 그들에게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은 기업이기 이전에 ‘종목’이고 ‘주식’이다. 그 회사의 IR 부서 전화로 전화를 걸면 받는 사람이 있고 그는 회사 담당자다. 내 주식을 담당하는 사람. 이 말은 어쩐지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섰을 때 주문을 받아 주고 그에 상응하는 유, 무형의 대가(음식이나 음료 등)를 ‘제공’해주는 서비스 노동을 떠올리게 한다. 이 어감에는 동의하는 면도 있고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
공시 담당자든 IR 담당자든 주식 담당자든 다 뭘 맡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니 그 뭐가 무엇인지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 또는 정의해보고 싶어진다. 우리 회사의 내가 속해 있는 부서의 '직무기술서'에는 업무목표에 대해 이런 서술이 있다. (물론 내가 쓴 것이다)
목표 1: 효과적인 언론 홍보 활동을 통해 회사 연구개발 및 사업현황 등에 대한 소식을 적시에 제공
목표 2: 금융감독원 및 한국거래소 공시규정을 준수하여 투자자에게 공시를 통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
목표 3: 개인 및 기관투자자들과의 우호적인 투자자 관계 형성
글을 쓰는 현재 유가증권시장(코스피)과 코스닥 시장 상장기업만 2,600개가 넘고 각각의 회사에는 규모를 막론하고 위 목표의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다 보니 나는 셋 모두를 담당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PR도 하고 IR도 하고 공시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단히 멋진 일을 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나는 내 업무의 역할과 중요도에 대해 물론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사실은 '그냥 직장인 1'인 동시에 특히 개인 투자자들의 각종 성토와 훈수, 경우에 따라 욕설을 떠안는 사람이다.
일을 하면서 자주 직면하는 문제다. 과연 내가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일이 그들이 주는 감정 노동 때문인가? 스스로 느끼는 정도의 가치와 역할이 과연 주식시장에서 거래하는 외부 참여자들에게도 잘 전달 또는 공감이 되고 있는가? 5년째 수많은 사례와 군상들을 접하며 투자자 응대에 도가 텄다고 생각하던 차에 요즘은 생성형 인공지능의 시대에 걸맞게 지금껏 생각해보지도 못한 차원의 새로운 챌린지를 마주하기도 한다. 아마도 풀어볼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제목으로 돌아가서 ‘IR 담당자는 뭐 하는 사람인가요?’에 대한 내 답은 일단 '외부에서 오는 모든 문의와 질의와 불만을 ‘몸빵’으로 막는 사람'이다. 특히 회사 주식의 시가가 전날보다 떨어지고 있을 때. 연일 SK하이닉스 주가가 몇십만 원을 찍고 코스피 지수가 얼마를 돌파할 때 우리 회사에 오래 '투자'했다는 누군가 내 자리 번호로 전화를 건다. 대뜸 불만 담긴 높은 언성이 나온다.
“요즘 삼성전자고 하이닉스고 다 가는데 왜 여기(우리 회사를 말한다)는 맨날 주가가 이 모양인가요?”
“주식회사가 주가를 이렇게 방치해도 되는 겁니까?”
“회사 경영진은 출근은 합니까? 주가에 신경은 쓰고 있나요?”
“회사가 대체 뭔 악재를 꽁꽁 숨기고 있는 건가요?”
위 이야기는 제법 순화해서 쓴 것들이다. 어떤 사람들과는 드물게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선에서 좋은 대화가 오가기도 하지만 전화로 위와 같은 걸 물어 오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남들 다 오르는데’(그럴 일은 없다) 우리 회사만 주가를 의도적으로 방치한다고 생각하고 '남들 다 알려주는데'(이럴 일도 없다) 우리 회사만 투자자가 뭔가를 질문하면 거기에 제대로 답을 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회사가 특정 기관이나 세력과 ’결탁‘해 주가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리도록 '조작'하고 있다는 등 상상 날개를 펼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본인이 생각하는 주식시장의 미래와 우리 회사의 문제점, 그리고 이 산업에 필요한 정부 정책 등에 대해 30분 동안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다. 내 의견을 묻고는 그 답을 듣지도 않고 자기 말만 하다가 제 풀에 지쳐서는 끊는 사람도 있다.
해야 하는 자리에 있느니 몸빵을 충실히 수행은 하고 있는데, IR 담당자가 주가 올리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주가 올리는 직무가 있어서 실제 그 주식의 가치가 오른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IR 담당자로서 외부에 여러 방식으로 전하는 회사 차원의 사업 현황 등 투자정보와 실제 주식 시장에서 원하는 정보 사이에는 늘 간극이 있다. 보도자료를 열심히 써서 배포해도 며칠만 지나면 사람들은 그걸 잊어버린다. (그런 기사가 있었어? 언제?) 여러 수정과 검토 끝에 무사히 공시를 제출해도 사람들은 방대한 사업보고서에서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손실) 부분처럼 필요한 일부만 가볍게 읽고 닫아버린다. 이 일은 수고에 비해 언제나 덜 인정받는다. 그렇다면 나라도 인정해 줘야겠다. 다시 질문으로 마무리해야겠다. 그래, 언론 관계든 투자자 관계든 알겠는데 ‘공시’는 또 뭐 하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