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업 공개를 한 회사의 숙명

돈 많은 비상장회사 하고 싶다

by 김동진

회사 주식을 증시에 상장하는 일은 꽤 영광스럽거나 영예로운 일처럼 비친다. 회사 제품이나 기술의 가치를 인정받아서 처음으로 외부의 불특정 다수의 잠재 투자자들에게 공모 자금을 유치하는 일이고, 모집과 청약을 거쳐 마침내 증시에 주식이 유통되는 첫날(상장일)에는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대표이사 등 임원이 특유의 빨간 재킷을 입고 상장식을 하기도 한다. 대외적으로 그 자체로 회사에 대해 알려질 기회가 되기도 하고 공모 자금을 유치했으니 필요한 곳에 자금을 집행할 수도 있다. 특히 비상장 시절부터 오래 재직해 온 임직원들은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을 행사하는 등 큰 보상을 얻을 기회도 된다.


세상 많은 일들이 그렇지만 상장에도 좋은 면만 있지는 않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아주 오래된 말처럼, 기업을 공개하는 순간 부담해야 하는 의무들이 늘어난다. 임직원이 주식 거래를 하다가 차익을 볼 경우 반환해야 할 수 있고(단기매매차익 반환제도)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임원의 주식 보유 현황의 변동을 신고해야 하며(지분공시) 외부감사인이나 감사, 감사위원회와 같이 컴플라이언스 영역에서 대폭 신경 쓸 것이 많아진다. 당연히 회사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이것들은 까다로워진다. 이사회나 주주총회와 같은 의결 기구에서 심의, 논의해야 하는 사항들의 무게감도 증가한다.


문제는(?) 이것들을 최전선에서 챙겨야 할 사람이 바로 공시담당자라는 것. (내부적인 고충은 또 뒤에 가서 적기로 한다) 투자를 유치하거나 회사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점차 이해관계자의 수와 범위가 복잡하게 확대되기 때문에 공시 하나를 제출하더라도 보는 눈이 안에서나 밖에서나 많아진다는 뜻이다. 공시 외에도 IR과 PR의 측면에서 업무 맥락이 복잡해지는 건 물론 외연이 확장되다 보니 생각지 못한 변수가 회사의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업 활동과 무관하게 특정 사회 이슈나 소위 '테마'로 엮여 주가가 급변하기도 하고 실무자 입장에서 알아야 할 것들도 늘어난다. 주로 규제 관점에서 고려해야 할 것들이다.


최근 진행되었거나 진행 중인 일련으 상법 개정이 기업 활동 전반에 부담을 가중시키는 쪽으로 작용하면서 몇 개 기업이 이미 공개매수 등을 거쳐 자진 상장폐지를 했거나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실 기업이 이미 기반이 탄탄하고 존속에 문제가 없다면 '굳이' 기업공개의 상태를 유지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투자자의 권익과 이권을 보호하고 시장 감시 기능을 강화한다는 대전제와 그에 따른 정책 기조가 상장기업 경영자와 실무자 입장에서는 당연하게도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소수주주들이 특정 플랫폼을 통해 지분을 모아 상법상의 소수주주권(주주제안 등)을 행사하는 건 물론 주가를 올리라며 압박을 가하는 현상도 최근 심화되고 있다. 일개 실무자 입장이지만 나라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돈만 많으면 굳이 상장해야 하나? 나도 돈 많은 비상장회사 하고 싶다 뭐 그런 것. 상장은 자금을 조달하고 유통시키는 수단인 동시에 기업 활동의 투명성을 강화시켜야만 하는 양면의 것이라서 말이다. 다수의 상장기업들이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하면서 회사의 성과를 제고하기 위해 성실히 노력하고 있음에도 회사 주식을 보유한 외부자들이 회사에 대해 과도하게 개입, 간섭하려는 순간 기업 활동에는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차질이 빚어지기도 한다. 적어도 내가 있는 회사에서는 그걸 뼈저리게 겪었다. 이제 이 이야기를 할 차례다.

keyword
이전 02화공시: 회사가 써야만 하는 언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