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주가 그거 어떻게 오르는 건가요

많이 사면 오르고 많이 팔면 떨어진다

by 김동진

여러 회사의 공시담당자들이 함께 있는 커뮤니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이야기 중 하나가 개인주주가 전화로 담당자에게 (대체로 욕설이나 폭언을 섞어 가며) 왜 주가가 떨어지냐며 회사에 대책을 요구하는 경우에 대한 성토다. 사가 주식을 발행했고 그 주식을 상장했으니 그 주식에 투자를 한 누군가가 자기가 산 가격보다 주가가 떨어져 있으면 물론 기분이 나쁘거나 초초하거나 답답할 것이다.


핵심적으로 전제해야 할 것은 그 누군가가 그 주식을 시장(장내)에서 샀는지 공모 청약 등을 통해서 샀는지 여부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전자는 그걸 발행회사로부터 산 게 아니라 시장에서 주식을 내놓은(매도) 누군가로부터 샀다는 뜻이고 후자는 실제로 발행회사의 자본금을 확충해 주는 방식으로 샀다는 뜻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자와 후자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구분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회사가 주가를 올리고 싶다고 올릴 수 없고 노력은 할 수 있을 따름이지만 시장에서 주식을 산 사람이 회사 직원들의 월급이 자기 돈으로 나간다고까지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제 월급은 회사에서 받지 투자자에게 받는 게 아닙니다) 장내에서 주식을 산 대금이 그 주식을 발행한 회사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는 상식적인 이야기를 적으려는 게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응대하다 보면 물론 그들에게도 삶이 있고 증권계좌를 만들어 우리 회사의 주식을 어떤 경로로든 사기 전까지 수많은 계기, 그러니까 그들의 삶을 다 알 리 만무한 내가 함부로 판단하기 어려운 그들의 사정이 있음을 짐작하지만 알고 싶지도 않을 때가 많다. 온갖 이야기를 떠나 적어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격앙된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건 그가 투자판단을 스스로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추천받은 것이나 어디선가 들은 것에 판단을 위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들은 것'이 중요하다. 회사의 사업 현황보다는 단기적으로 주가가 급등할 만한 호재성 정보를 커뮤니티나 유튜브에서 접하고 그걸 더 믿는 경우가 많다. 친구 누구가 추천해 준 걸 믿고 (그 회사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거나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일단 매수한 뒤 그 가격보다 주가가 떨어지면 회사에 전화해 화를 내는 식이다.


담당자들 사이에서 자조적으로 이야기하는 일종의 밈과 같은 것 중 하나가 "서울 도심에 노루가 출몰하면 '노루페인트' 종목을 사라"는 것이다. 당연히 노루페인트가 어떤 회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 전에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두 대통령 간의 회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건네받은 펜을 칭찬한 것을 두고 문구 제조기업인 '모나미'의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나중에 가서 밝혀지기는 했지만, 실제 그 펜의 제조사가 어디인지는 이미 상관없다. 여기서 투자판단에 작용한 것은 그 회사가 사업이 잘 되고 있고 실적이나 전망이 좋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회사가 테마주가 되었다는 점이다. 선거철이라든가 혹은 여러 사회, 문화적인 맥락에서 상장 종목이 회사 현황과 무관한 이유로 주가가 급변하는 건 꽤 흔한 일이다. 여기서 문제는 어떤 사람들은 그 회사가 어쩌다 상한가(가격 최고 상한선)에 도달했을 시점에 주식을 매수한 뒤 주가가 떨어지면 그 주식을 발행한 회사에 주가를 올리라고 요구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른바 테마주로 주가가 급등한 회사 대부분의 주가는 여지없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하락한다)


일반적이지 않은 테마 종목 이야길 우스개처럼 꺼냈지만 여러 회사 담당자들과 온, 오프라인에서 몇 년 간 이야기 나누어 온 경험을 토대로 하면 첫 글에 쓴 흔한 문의 - "왜 이 회사 주가가 이 모양인가요?" - 에 대해 그 함의를 헤아리면 '이 내가 주식을 산 이 회사 빼고 다른 회사 주가를 보면 잘 오르고 있는데 왜 이 회사는 이 모양이냐'라는 데 있다. 주식투자 몇 년 동안 이런 종목은 처음 본다는 둥(저도 주주님 같은 투자자는 처음 봅니다, 아니 요즘은 많이 본 것 같습니다), 이 회사 경영진은 공매도 세력과 결탁해 고의로 주가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둥(세력이 누군지 알고 싶네요), 금감원에 신고하겠다는 둥(하세요) 별소리를 듣는다.


이건 자본의 영역이지만 수학 공식의 영역이 아니다. x에 어떤 값을 대입하면 y값이 어떻게 도출되듯 회사가 이것을 하면 주가가 오른다 하는 방정식이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외부에서 주주들만 물어보는 게 아니라 내부에서도 누군가 물어본다. 김 과장, 오늘 우리 주가 왜 이래? 무슨 특이사항 있는지 알아봐. 대부분의 경우 이유는 명확하지 않고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전체 증시 지수에 영향을 받거나 밤 사이 미국 증시의 영향을 받거나 옆 동네 경쟁 회사의 영향을 받거나 개인 투자자들이 몰리거나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목하거나 우연히 우리 회사가 개발하고 있는 분야가 각광을 받거나 조만간 발표할 임상시험 결과에 대한 '기대감'이 형성되거나 특정 종목 유료 리딩방 같은 곳에서 우리 회사 종목을 '찜'하거나 하는 이유들로 오르거나 떨어진다. 저 많은 분석 중 어떤 것이 중요한 영향을 주었거나 그렇지 않은지 주식 고수가 아니라 주식 고수 할아버지가 와도 정확하게 맞힐 수는 없다.


한국거래소에서 '현저한 시황변동'을 이유로 조회공시를 요구받은 회사들의 답변 공시를 보면 대다수의 경우 '중요정보 없음'이 답변 공시 제목이다. 왜 오르는지 잘 모르겠다는 뜻이다. 오늘 내가 가지고 있는 주식의 가격이 오르고 있다? 그건 사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떨어진다? 파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만약 내가 그 이유를 언제나 정확히 알 수 있다면, 당장 전 재산을 주식에 집중해 전업 '투자자'가 될 것이다. 물론 그건 투자가 아니라 투기가 되겠지만.

keyword
이전 03화기업 공개를 한 회사의 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