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투자자는 회사와 이해관계가 같을까
회사에서 유상증자(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 결정 내용을 공시하자 소액주주들은 자신들의 커뮤니티에 '유상증자에 맞서는 주주행동 요청'이라는 제목의 글을 커뮤니티에 게재하며 변호사를 선임하고 대표이사 해임안을 (임시주주총회에서) 상정하자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직전 연도에 회사의 큰 악재가 있어서 주가가 크게 떨어져 있던 상태에서 외부 투자유치나 3자배정이 아닌 주주배정(기존 구주 1주당 신주 일정 비율을 청약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형태를 말한다) 증자 공시에 투자자들은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주주가 청약에 참여해 대금을 입금해야 신주를 받을 수 있고 회사가 그 돈을 자본으로 확충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안정적인 매출 기반을 확보하고 있는 제조업 등 일반적인 업태에 비해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하는 바이오 업종 기업은 대부분 큰 연구개발비 지출을 위해 외부로부터 투자금에 의존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최대주주(주로 창업자)의 지분은 점차 희석되고 제법 여러 기업들이 10%도 채 안 되는 최대주주 지분율을 보인다. 우리 회사처럼 2010년대 바이오 활황기에 발맞춰 주가가 크게 올랐던 기업들은 그 특성상 전체 주주 구성에서 소액주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일반적으로도 주주배정 유상증자 소식이 발표되면 악재로 인식돼 주가가 하락하기 마련인데 우리 회사는 그렇지 않아도 주주들이 뿔이 나 있던 상황에 기름을 부었다. 만만치 않은 소액주주 지분이 결집되었고 그들의 대표를 맡은 사람이 회사에 방문해 주가 부양을 위한 대책을 요구했다.
주주들은 끊임없이 회사에 성토하는 건 물론, 증권 관련 커뮤니티나 토론방에 마치 회사와 창업자가 사기를 치는 집단인 것처럼 여론을 만들기도 했다. 시장에 많이 알려져야 회사가 압박을 느끼고 자신들을 위해 억지로라도 주가를 부양해 줄 거란 믿음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어렵사리 유상증자 절차를 마친 뒤에도 주주들의 요구는 멈추지 않았다. 포털 검색창에 회사 이름을 입력하면 각종 안 좋은 의미의 연관검색어들이 따라붙었고, 시장에서는 문제 많은 경영권 분쟁 기업으로 각인됐다. 과연 회사의 연구개발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을까? 지난한 소송 대응 과정에서 법무 비용은 물론 행정력 낭비가 극심했다.
그들은 오직 주가'만' 가지고 회사의 모든 것을 판단하고 회사가 홈페이지에 공지한 내용들과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한 자료들을 믿지 않기 시작했다. 회사의 IR자료와 공시자료에 다 설명되어 있는 임상시험 설계를 놓고 의혹을 제기하는가 하면 출처도 확인할 수 없는 루머를 사실처럼 커뮤니티에 퍼뜨리기도 했다. 회사의 발표보다 주식 유튜버의 말을 신뢰하는 그들이 내세운 것은 '정의'였다. 회사는 부도덕하고 선량한 소액주주에게 피해를 주는 거대 집단이므로 경영진을 해임하고 자신들이 추천한 인물을 회사의 이사회 구성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 과연 이 자본 시장에서 정의라는 건 무엇일까? 그들이 자신이 산 가격보다 회사의 주가가 높은 상황이었다면 회사의 경영이나 연구개발 활동에 과연 문제를 삼았을까?
공시자료는 회사의 자의적인 해석이나 편향적인 낙관을 기재할 수 없고 건조하게 사실에 충실한 내용을 써야 하기 때문에 공식적인 차원의 투자자 소통은 대부분 보도자료 배포나 홈페이지 등을 통한 뉴스레터, 공지사항의 형식을 취한다. 이때 회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떡하죠 우리 망했어요"가 아니라 지금 연구개발 현황과 사업 추진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향후 회사의 전망이나 계획은 어떠한지에 대해 "현시점"에서 최대한의 청사진을 제공해 주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거기에 대한 투자판단은 당연하게도 투자자의 몫이다. 회사의 관계자가 하는 말은 현시점에서의 미래에 대한 예측 정보다. 표현상으로도 '예상', '기대', '전망', '계획' 등과 같은 단어가 빈번하게 쓰인다. 2030년경 우리가 타깃하고 있는 질환의 치료제 시장 규모가 10조 원에 이를 것으로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000에 따르면 '전망'된다. 우리 회사의 현재 진행 중인 미국 임상 3상은 2026년 하반기에 결과를 발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말들.
분쟁이 장기화되는 과정에서 결국 회사는 경영권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 되어 제3자에게 최대주주의 지위와 경영권을 넘겼다. 연구개발의 핵심적인 역할을 오랜 기간 담당해 왔던 창업자는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회사는 존속하고 있지만, 과연 그 지난한 소액주주 행동의 결과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정의를 부르짖으며 "대표 감옥 보내야 한다"던 그 주주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의 이해관계는 과연 회사의 그것과 얼마나 조응할 수 있을까. 주가가 만족스러운 정도로 오르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분을 털고 나갈 이의 이해와, 인고의 세월을 들여 한 분야에 매진해 온 경영자의 이해와 법인으로서 회사의 지분에 투자한 최대주주의 이해가 과연 얼마나 서로 맞을 수 있을까. 최근에는 우리 회사 말고도 주로 소액주주들의 연대와 회사 간 경영권 분쟁 내지 갈등을 빚는 사례가 아주 많아졌다. 이유는 당연히 딱 하나다. "주가가 떨어졌다. 회사는 투자자를 기만하고 주가를 방치하고 있다." 거의 모든 회사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들이 요구하는 건 회사 업종과 규모에 관계없이 언제나 자기 주식을 소각해라, 임원이 솔선수범해 장내매수 해라, 배당을 늘려라, 등과 같은 것들이다. 과연 그것들이 회사의 사업이 잘 되고 좋은 경영 성과를 내는 일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투자자는 회사에 지분을 위임하고 적절한 감시를 지속하며 회사와 경영자는 투자자에게 성과로 보답하기 위해 서로 장기적 관점에서 동반 상생하는 일은 적어도 내게는 단지 이상에 불과한 것 같다.
직전 글에서 말한 제약바이오 업종 기업의 포괄공시(투자판단관련주요경영사항) 내용은 한국거래소 가이드라인에 따라 아래와 같은 문구 기재를 포함하도록 되어 있다. 요즘 나는 '투자자'들이 얼마나 신중하게 여러 위험도와 변수들을 고려해 '투자'하고 있을지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회사가 전문성과 성실성을 가지고 사업에 매진해야 하듯이, 투자자 역시 성실하게 신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냥 내 돈 내놓으라고 or 내가 산 가격보다 비싸게 '만들어' 놓으라고 떼쓰는 일에 불과하다.
임상시험 약물이 의약품으로 최종 허가받을 확률은 통계적으로 약 10%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임상시험 및 품목허가 과정에서 기대에 상응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당사가 상업화 계획을 변경하거나 포기할 수 있는 가능성도 상존합니다.
투자자는 수시공시 및 사업보고서 등을 통해 공시된 투자 위험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히 투자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