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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박스의 이상한 테스트

'변화하는 관람 문화'란 무엇인가

by 김동진

최근 메가박스의 이벤트 페이지에 '[휴대폰 FREE] 반딧불만없음 프로젝트'라는 제목의 수상한 '프로젝트'가 올라왔다. 요는 조명이 일부 켜진 상태로 일부 MEGA LED 상영관의 일부 상영회차에 일정 기간 동안(11/3(월)-11/6(목)) 휴대전화를 사용해도 되는(촬영, 녹화, 플래시 사용은 금지) 테스트 성격의 상영을 운영한다는 것.


https://www.megabox.co.kr/event/detail?eventNo=19077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기획의 배경과 의도도, 기획 자체의 실질도 크게 잘못된 것은 물론 관람 니즈를 전혀 충족하지도 못하고 존중하지도 않는 실패한 기획이다.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에서 특별 기획 상영회를 명목으로 영화 관람을 적극적으로 해치는 촌극에 가까워 보인다. 물론 이 자체가 여러 의미의 노이즈를 만들고 관람 문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는 마케팅적 요소에 가깝다고 하면 적어도 그것만큼은 일부 긍정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메가박스 '반딧불만없음 프로젝트' 페이지 중에서


1) 변화하는 관람 문화란 무엇인가


이 프로젝트의 제목부터 스마트폰 불빛으로 대다수 관객에게 심각한 피해를 끼치는 일명 '폰딧불이'에 착안하고 있으므로 휴대전화에 대해 말해야 한다. 이미 이동통신 가입자 1천만 명을 돌파한 1998년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요즘 통용되는 의미의 스마트폰으로 말해도 최소 아이폰 1세대가 나온 2007년. 국내에서 실질적으로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만한 2010년대 초반. 여기서 변화하는 관람 문화를 반영한다는 건 과연 무엇을 정확히 지칭하는 것일까? 전 국민이 스마트폰을 쓰는 시대에 극장에서도 불빛을 밝히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으니 아예 눈치 없이 불빛을 밝혀도 되는 상영관을 만들자? 영화관 안에서도 스마트폰 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상영관?


메가박스 '반딧불만없음 프로젝트' 페이지 중에서

2) 과연 '이유 없는 반딧불이는 없'나


문제는 정말 이유 없는 반딧불이는 없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저 말풍선에 담긴 말들이 진지하게 기획 의도를 담아 쓴 표현이 아니라 농담에 지나지 않기를 바란다. 저 다섯 가지 모두 아주 간단하고 완벽한 해결책이 있기 때문이다.


"너무 민폐인 걸 알지만 부장님이 급하다고 그러셔서..." -> 네, 잠깐 나가서 받으세요.

"영화보면서 인별도 보고 싶어 나 도파민 중독인가?" -> 네, 영화는 집에서 보세요.

"아빠!!!! 영화 보는 중이라니까 왜 계속 전화해 ㅠㅠㅠ" -> 네, 비행기 모드로 설정하거나 전원을 끄세요.

"난 그냥 어둠이 무서워요~" -> 네, 영화는 밝은 집에서 보세요.

"오늘 이벤트데이라 빡겜 해야 하는데..." -> 네, 게임에 집중하시고 영화관에 오지 마세요.


방해금지모드를 뚫고 연이어 걸려 오는 업무 관련 전화라든가, 나 역시 불가피한 이유로 휴대전화 화면을 잠시라도 봐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럴 때 해야 할 것은? 그 '잠시'를 해결하기 위해 상영관을 잠시 나가는 것이다. 내 필요나 이유보다 더 중요한 건 같은 상영관에 함께 있는 다른 사람들의 관람 환경을 해치지 않는 것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 사회인의 기본이다. 나 하고 싶은 대로만 하지 않을 줄 아는 것. 공공장소의 기본이다. 이걸 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으면서까지 문화와 인프라를 누릴 자격이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이걸 흔히 말하는 소위 '시체관극'처럼 여기면 곤란하다) 주변에 피해를 덜 끼치기 위해 노력하고, 몰랐던 당대 사회문화적인 에티켓이 있다면 받아들이면 된다. 반성, 성찰, 개선, 이런 말들이 곧 인간의 일일 테니까.


메가박스 '반딧불만없음 프로젝트' 페이지 중에서

3) 제대로 운영이 가능할까


영화관에 주기적으로 가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각 지점에 눈에 띄게 인력이 줄었다. 어지간한 상영관은 바코드를 찍는 등 자율 입장 방식을 택하고 있다. 여기서 당연히 걸리는 점은 "촬영, 녹화 및 플래시 사용은 금지되며 적발 시 퇴장 조치 될 수 있습니다"라는 대목. 일반 상영관에도 버젓이 폰을 꺼내 스크린을 찍는 사람들이 있는데 [반딧불만] 상영관에서는 그런 사람이 없을까? 있다면 잘 단속, 관리될 수 있을까?


메가박스 앱에서 본 해당 포맷의 예매 화면


연장선에서 드는 의문은 해당 상영포맷을 예매하는 과정에서 [반딧불만] 상영관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무런 안내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메가박스 웹이나 앱에서 직접 이벤트 페이지에 들어가 이 글 맨 위에 링크한 곳을 들어가 보지 않는 한. 어떤 의미로 가볍게 영화를 예매하고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의 성실도를 너무 믿는 게 아닐는지 싶기도 한 것인데, 분명 이 상영관이 조명을 켜놓고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하는 상영관인지 자체를 그 상영관에 입장해 영화가 시작하기 전까지 알아차리지 못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왜 영화가 시작했는데 조명이 다 안 꺼지냐고 직원을 찾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오늘따라 왜 이리 관크가 많지' 싶을 것이다. 적어도 파일럿 형태로 특수한 상영을 편성, 운영하고자 한다면 해당 상영관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 이벤트 페이지에만 게시할 게 아니라 예매 단계에서부터 직접 확인하고 선택할 수 있게끔 해야 하는데 이건 사용자 경험 관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테스트를 하려면 그 테스트를 정확히 이해하고 직접 원해서 참여한 사람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데 마치 예전 PC방에서의 '게임의 폭력성' 실험마냥 대충 안내해놓고 어느날 문득 그 상영관을 찾아온 관객을 실험대상 삼는 꼴이다.



4) 이게 다 싫으면 다른 상영관에 가면 되는가


며칠만 소수 상영관에서 하는 테스트이니 별 다른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딧불만] 포맷으로 상영하는 영화를 보면 <베이비걸>, <위키드>, <퍼스트 라이드>, <8번 출구>가 있다. 각각의 영화들이 얼마나 '암전 된 상영관'에 최적화되어 있는지 그 정도에 대한 논의는 별개로 하고, 이렇게 일부 상영관을 편성하는 일 자체가 결국은 상영 영화의 다양성 혹은 누군가의 선택권에 지장을 준다. 만약 '베이비걸'을 오늘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보고 싶은 관객이, 그가 가능한 시간에는 [반딧불만] 상영 회차밖에 없고 그는 해당 포맷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는 억지로 거기서 관람하길 택하거나 결국 다른 영화를 택하게 될 것이다.


하나 더 당겨 우려하는 건 이런 것이다. 이런 것까지 다 염려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나는 소위 '관크'를 극장이 나서서 장려하진 않더라도 이렇게 하나의 포맷 내지 테스트로 끌어올리는 것 자체를 심히 경계하고 있다. 쩌렁쩌렁하게 에티켓 광고로 거듭 강조해 줘도 부족하다. 집이 아닌 영화관에 시간과 비용을 들여 몰입하러 온 관객들조차, 짐작하건대 옆사람이 아무 움직임도 소리도 내지 말고 시체처럼 있기를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공공장소에서의 기본적인 예의. 최소한의 배려. 이것을 가능하기 어렵게 만드는 조건의 상영 포맷에서 "서로의 관람을 존중하며 즐겨주세요"가 가능할까.



이렇게 비판적으로 쓴 건 영화관이 (내가 집에서는 결코 불가능한 '극장'에서의 영화 관람을 매우 옹호하는 것과 별개로) 무슨 신성한 공간이어서가 아니다. 상술한 것처럼 영화를 관람하는 환경을 만드는 영화관 운영 주체가 영화 관람 경험을 적극적으로 해치는 기획을 테스트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는 풍경이 씁쓸하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관람 문화란 무엇이고 알아보려는 관람 니즈는 무엇인가. 이것은 차라리 고도의 'MEGA LED관 조명 좀 켜놓고 봐도 앞사람 눈뽕 심해도 관람에 지장 없을 만큼 화질 짱짱 좋다'를 위한 바이럴 전략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당연하게도, 이벤트 페이지는 물론 메가박스 공식 소셜미디어 게시물에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https://www.instagram.com/p/DQI_WDIESF6/?img_index=1



영화는 어쩌면 시대를 철저히 역행하는 롱-폼의 콘텐츠일지도 모른다. 여러 평자와 필자들이 말하듯 집이 아니라 극장에 걸음해서 일정 시간 동안 영화를 받아들이는 관람 경험은 수동적이지만은 않은 오히려 적극적인 태도의 집중과 몰입을 요한다. 그것에 최적화된 환경을 만드는 극장에서 반짝 시도에 그칠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시도'를 하는 배경에 적어도 나는 수긍하기는 어렵겠다.



"영화는, 자력自力으로 멈추기 힘들게 돼버린 이 컨베이어 벨트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전통적으로 영화 관람은 한시적으로 이성의 스위치를 끄고 스펙터클에 몸을 맡기는 다소 자존심 상하는 행위로 간주되었지만, 산만함이 만연한 세상에서 상황은 역전된다. 어떤 부류의 영화를 보건, 영화관은 적어도 우리의 뇌에서 정보망의 단자를 뽑고 검색과 스캔을 일시중지하도록 강제한다. 그리하여 노이즈에서 해방시키고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는 인간 본연의 능력을 회복시킨다. 따지고 보면 새로운 소식은 아니다. 태생부터 영화관은 일상에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세상을 주시하고 숙고하는 장소였다. 대상의 이미지뿐 아니라 그것의 지속(삶)을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최초의 예술로서, 영화는 어떤 의미에서 현실보다 더 리얼하거나 현실과는 다른 방식으로 리얼한 세계를 제시한다고 버지니아 울프가 지적한 것이 1926년이다. 그가 쓰기를, "(영화관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포함돼 있지 않은 삶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

프레임 안에 시간의 궤적을 엄격하게 그려가는 영화를 견디기 버겁다면, 내면의 시계에 어떤 결락이나 고장이 발생한 게 아닐까 의심할 수 있는 것이다.”

-김혜리, 『묘사하는 마음』, 마음산책, 2022, 297쪽, 301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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