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일기 #1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기까지 몇 개월이나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나는 더 이상 어리지 않았고, 이렇다 할 특별한 기술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경력도 애매했다. 적어도 1년은 버텨야 했다. 버텨야 한다고 매일 아침 다짐을 하며 출근을 했다. '다른 데 가도 똑같아',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회사를 다녀' 그런 생각으로 나는 스스로에게 버팀을 강요하며 회사를 다녔다.
그렇지만 다른 데도 여기와 같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그냥 그렇게 회사에 다닌다고 해서 나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게 맞는 걸까? 그런 의문이 계속 들었다. 이렇게 계속 지내다가는 내가 싫어하는 그들처럼 되어버릴 것 같았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었다.
버티지 않아도 비겁한 건 아니라는 말을 어느 책에선가 읽었다. 나는 내가 사라지기 전에 그만 버티기로 했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제주도행 티켓을 알아보는 거였다. 이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는 걸 집에서도 달가워할 리 없었다. 나는 잠깐뿐이라 할지라도 도망가고 싶었다. 모든 것으로부터. 그래도 앞날에 대한 불안도 있고, 모아 놓은 돈도 얼마 없었기 때문에 그리운 도쿄나 파리에 갈 수는 없었다. 그나마 가장 적은 돈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제주였다. 마침 비행기 티켓도 싸게 나와 있었다.
그렇게 제주에 왔다. 한 달을 살아볼까, 이런저런 고민을 했지만 늘 어중간하고 애매한 나는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열흘이라는 기간 동안 제주에서 지내기로 했다. 별다른 계획은 없었다. 늦잠을 자고, 좋아하는 카페에 가고, 바다를 보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그게 다였다.
첫날은 비행기가 조금 늦게 출발해 조금 늦게 제주에 도착했고, 버스를 놓쳤고, 그래서 숙소에는 예상시간을 훨씬 넘어 도착했고,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는 숙소로 향하는 버스에서 저녁 일정을 계획했고, 그게 뜻대로 되지 않자 초조해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걱정이나 고민도 하지 말고, 제주에 있는 동안 만큼은 그냥 마음 편하게 쉬고 또 놀라는 친구의 말은 무용지물이었다. 하지만 친구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럴 수 없는 성격이라는 것을. 나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불안감에 노트북을 켰고, 이력서를 썼고, 한 군데의 회사에 이력서를 보냈다.
비행기 안에서 한 시간 내내 내가 앉아 있는 의자를 쿵쿵거리며 친 뒷좌석의 어린아이, 와인을 꾹꾹 눌러 담은 캐리어와 노트북과 카메라를 넣어 무거운 배낭, 어디가 바다고 어디가 하늘인지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밤. 사실은 전부 사소한 일들, 당연할 수 있는 일들이었는데, 나는 이미 나를 조금 잃은 후라, 그 모든 게 사소하거나 당연하게 여겨지지가 않았다. 나는 지쳐 있었다.
제주에서 열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 계획을 계획대로 실천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