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일기 #2
아주 어렸을 때 가족끼리 왔던 것을 빼면 이번이 세 번째 제주. 열흘이라는 기간 중 나는 절반을 월정리에서 지내기로 했다. 그 이유는 제주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페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 오월에 왔었을 때 나는 친구와 함께 카페 무늬를 찾았었다. 충분한 햇빛, 맛있는 음료, 좋아하는 음악, 친절한 사장님, 방해받지 않는 시간. 창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이 커튼의, 유리잔의, 화분의 그림자로 카페 이곳저곳에 예쁜 무늬를 만들고 있던 것처럼, 그날의 기억이 내 기억에 선명하고 예쁜 무늬로 남아 있다. 모든 게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완전한 순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바다를 잠깐 보고, 나는 카페 무늬로 향했다. 바다는 보이지 않지만, 바다와 멀리 있지는 않은 카페 무늬가 보이자 나는 전날 지쳤던 마음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공간이, 공간이 주는 기억이 지닌 힘이 이런 걸까?
드르륵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안녕하세요" 하고 수줍게 인사를 건넸다. 계산대에는 처음 보는 남자분이 서 계셨다. 그리고 그 뒤에는 지난번에 왔을 때 따듯하게 대해주신 여자 사장님이 주방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계셨다. 나는 카페 안쪽에 자리를 잡고, 지난번에 왔을 때 마셨던 자몽 라떼를 주문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글을 조금 써 볼 생각으로 가지고 간 노트북을 열었다. 노트북이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지 않아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어보려고 다시 계산대에 갔는데, 마침 주방에서 나오던 여자 사장님이 나를 발견하곤 "어? 어어...!"라며 나를 알아봐 주셨다. 그리곤 인사를 너무도 반갑게 해주셨다. 나도 반갑게 인사를 드리곤 자리로 돌아와 지난번에 카페 무늬에 왔을 때 찍었던 필름 사진을 가방에서 꺼내 수줍게 드렸다.
지난 봄, 카페 무늬에 다녀온 뒤에 올린 사진 몇 장으로 카페 사장님과 인친이 되었다. 그리고 제주에 오기 얼마 전에 올렸던 필름 사진 몇 장을 보고 카페 무늬 사장님이 너무 예뻐서 자꾸 보게 된다는 댓글을 남겨주셨고, 나는 다음에 가게 되면 그 사진들을 인화해서 들고 간다고 답했었다. 나는 무척 기뻤다. 내가 좋아하는 곳의,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해주었으니까. 사실, 그날 찍은 사진은 누가 찍어도 잘 나올 수밖에 없었을 텐데. 예쁜 공간에 햇살이 충분하게 들어와서 너무 좋은 순간이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그 댓글은 당장 제주로 날아가고 싶은 마음을 들게 했다.
카페 무늬에서 찍은 사진 중 인스타그램에 올리지 않은 다른 사진 몇 장이 더 있었다. 그중에는 사장님을 찍은 사진도 있었는데, 사장님이 너무 멋진 분인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러 찍은 것이었다. 허락받고 찍은 게 아니라 왠지 공개적으로 올리면 안 될 것 같아 혼자 가지고만 있었는데, 이번에 드릴 수 있게 되어 기뻤다. 나는 카페 무늬를 담은 사진 말고도 월정리 바람개비 사진과 세화에서 찍은 바다 윤슬 사진도 함께 드렸다. 사장님이 너무 고맙고 예쁘다며 칭찬을 자꾸자꾸 해주셔서 나는 몸 둘 바를 몰랐지만, 기분은 정말 정말 좋았다.
자몽라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사장님이 아침은 먹었냐며 물어오시며 과일을 내어 주셨다. 점심때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고, 나는 자몽라떼 말고는 먹은 게 없던 참이었다. 고마운 마음이 든 나는 잘 먹겠다는 인사를 건네곤, 내어주신 과일을 맛있게 먹었다. 역시 사장님은 처음 느꼈던 것처럼 참 따듯하신 분이라고 생각하면서.
카페 무늬가 더 좋아졌다. 그냥 좋아서, 너무 좋아서, 단지 좋아서 다시 간 거였는데, 이렇게 환대 받을지 몰랐다. 알아보실지도 몰랐다. 덕분에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고, 편안했고,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