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일기 #3
다음날, 햇살이 만개한 늦은 오후에 나는 또다시 카페 무늬를 찾았다.
"저 또 왔어요."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전날에도 계셨던, 내일 또 오라고 말씀해주신 남자분이 나를 알아보고는 반갑게 맞아 주셨다. 아무래도 잠깐 일을 도와주거나, 직원은 아닌 것 같아서 혹시 무늬를 같이 운영하고 계시냐고 여쭤보니 자랑스러운 듯이 말씀하셨다. "나도 사장이에요"라고.
"지난 오월에 왔을 때는 몰랐어요. 그때는 여자 사장님밖에 안 계셨거든요."
"맞아요. 그때는 제가 없었어요."
아마도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었던 같다. 이어진 이야기의 대부분은 내가 전날 여자 사장님께 수줍게 건네드린 사진 이야기로 채워졌다.
"어제는 너무 바빠서 사진을 뒤늦게 자세히 봤는데 사진이 너무 예뻤어요!"
"지금까지 본 사진 중 최고예요!
두 분은 내가 드린 사진을 카페 입구 쪽 벽과 장식용 유리문에 붙여 놓으셨는데, 어디에 붙여야 사진이 잘 보일까 고심하셨다고 했다. 남자 사장님은 영상과 패션 관련 일을 하셨는데, 자기는 사진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내가 빛을 정말 잘 다루는 것 같다고, 인물 사진을 좀 더 배워서 전문적으로 사진 찍는 일을 해도 될 것 같다고 끊임없는 칭찬을 해주셨고, 여자 사장님은 그 말들에 추임새를 덧붙이시면서 칭찬에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기분 좋게 바라봐주셨다.
나는 내가 드린 사진을 카페에 붙여 놓으신 것도 감동이었는데, 진심이 가득 느껴지는 칭찬을 해주셔서 너무 고마웠고 행복하기까지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칭찬을 받은 건 오랜만이었다. 퇴사 전후로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었는데, 자존감이 조금씩 회복되는 걸 느꼈다. 내가 힘들어 하고 있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이 아니라,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해주는 칭찬이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더 진심으로 다가왔다. 나는 다시 '내'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모습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과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이 있다. 제주에 있는 동안 나는 내가 좋아하는 모습으로만 있을 수 있었다. 긍정적이고, 밝고, 쑥스러운 듯 늘 웃고 있는. 기다리는 버스가 한참 동안 오지 않거나, 가려던 곳이 문을 닫았거나, 가끔 길을 헤맬 때에도.
그리고 그럴 수 있었던 건 제주에서의 시작을 카페 무늬에서 했기 때문에. 사진 찍는 날 위해 청귤라떼에 청귤이 예쁘게 안 떠 있자 다시 청귤을 예쁘게 올려 주시고, 사진이 고맙다며 과일 등 먹을 것을 따로 내어주시고, 쑥스러워하는 날 위해 때로는 웃으며 가만히 지켜봐 주신 무늬 사장님 두 분의 좋은 분위기가, 그 따뜻함이 나에게까지 스며들어서라고 생각한다. 나를 '나'로 바라봐주고 나를 '나'로 있게 해주어 감사했다.
제주에서, 그리고 무늬에서 나는 참 '나'로 있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