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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bada Nov 07. 2017

따뜻한 기억으로 남은 제주 카페 무늬 #3

제주 일기 #4


 월정리에서 지내는 동안 무늬를 갈 수 있는 마지막 날. 전날 밤늦게 라면에 와인을 마시며 영화를 본 후유증으로 조금 늦게 일어난 나는 늦은 아침의 월정리 바다를 보고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해 또다시 무늬를 찾았다. 이제는 제법 친근하게 느껴지는 남자 사장님과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고, 나는 우선 자몽 라떼를 주문했다. 전날 먹었던 청귤 라떼도 맛있었고, 다른 음료도 마셔보고 싶었지만, 이곳에 대한 내 기억의 무늬에는 자몽 라떼가 크게 자리하고 있었고, 이제는 그냥 마시는 음료 이상의 의미가 되었으므로, 마지막이니까 서운하고 싶지 않아서 한 선택이었다. 그리고는 첫날부터 먹어보고 싶었던 베트남 샌드위치인 반미를 주문했다.


"혹시 반미 돼요?"

"그럼요. 되죠."


 음식을 만드는 여자 사장님이 보이지 않아, 혹시 지금 반미를 먹을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다행히 된다고 하셨다. 그러고 계산을 하는데 사장님이 음료값을 또 깎아주셨다. 사진값이라며 전날도 음료값을 깎아주셨는데 말이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는데, 다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러 온 것인지 적잖은 사람들이 작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렇지만 부산스럽거나 시끄럽지는 않았다. 무늬는 무늬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무늬답게 만들어 사람들을 아우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여유롭고, 자유롭고, 따뜻하고 그런 분위기. 그래서 무늬에서는 나도 그런 분위기의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은.


 다행히 내가 앉을 자리는 남아 있어, 나는 햇살이 비치는 안쪽 창가로 가 무늬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얼마 후에 사장님이 자몽 라떼를 가져다주시고, 나는 사장님이 깎아준 음료값에 보답하고자 카메라를 꺼내 자몽 라떼를 필름에 열심히 담았다.


"고수와 깻잎 중 뭐가 좋아요?"

"전 둘 다 좋은데"

"반반 돼요. 반반으로 해줄게요."


 사진을 찍고 있는데, 사장님이 다가오더니 고수와 깻잎 중 무엇이 더 좋냐고 물어보셨다. 반미에는 원래 고수가 들어가는데, 고수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고수와 깻잎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만들어 놓으신 듯했다. 사소하고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거기에서도 사장님 두 분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무늬 사장님들이라면 그런 작은 배려도 놓치지 않을 분들이었다. 게다가 고수와 깻잎 둘 다 좋다고 말한 나를 위해 반반으로 해주시겠다니. 그냥 배려도 아니고 정말 센스 있는 배려이지 않은가.



 사실, 베트남 음식이 유행이고, 요즘은 어디를 가나 반미를 먹을 수 있는 만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무늬는 역시 무늬였다. 자몽 라떼에 이어 나온 반미를 한 입 베어 문 순간,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기 때문이다. 깻잎이 올라간 반쪽은 일반적인 반미의 맛과는 조금 달랐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향과 맛으로 반미를 친숙하게 느끼게 하며 누가 먹어도 맛있다고 느낄 맛을 내고 있었다. 바게트 위에 한가득 올려진 깻잎이 고수의 역할을 충분히 대신하고도 남는 느낌이었는데, 특히 깻잎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맛이었다. 깻잎이 올라간 쪽도 그렇게 맛있는데, 고수가 올라간 나머지 반쪽이 맛있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제주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래도 글을 조금 쓰고 싶어서 노트북을 들고 가기도 했고, 카페에 손님들도 꽤 있어서 사장님 두 분과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못했다. 대신 짧은 글 하나를 마무리짓고, 사장님 두 분께 편지도 쓰고 카페에서 나름대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후 나가려는데 사장님 두 분이 아쉬운 얼굴로 나를 붙잡았다.


"왜 벌써 가요"

"다음번엔 우리 더 많이 이야기해요."


 나는 그 말들을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 나도 사실은 사장님 두 분과 좀 더 이런저런 얘길 나누고 싶었는데, 나처럼 두 분도 아쉬워하고 계실 줄은 정말 몰랐다. 게다가 그날은 내가 월정리에 머무르는 동안 무늬를 갈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는데, 그 사실을 나만큼 사장님도 신경쓰고 계셨던 것 같다. 또 두 분은 너무 따뜻한 분들이라서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날 방해하지 않으려고 하셨던 게 분명했다. 나는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3일 동안 찾았던 무늬에서 사장님 두 분과 잠시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다. 다음에 카페 무늬를 다시 가게 된다면 그때는 사장님들과 마주 앉아 오래오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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