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열둘
엘라이자는 자신만의 삶을 가지고 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달걀을 삶고, 달걀을 삶는 동안 목욕을 하며 자신만의 쾌락을 즐긴다. 그날 입을 옷과 구두를 신중히 고르고, 삶은 달걀을 챙겨 출근한다. 출근길엔 옆방에 사는 자일스에게 들려 안부를 묻고, 직접 만든 샌드위치를 전해주기도 한다. 출근해서는 직장 동료이자 친구인 젤다와 함께 비밀연구소의 이곳저곳을 청소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자일스와 TV 영화를 보거나 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충분히 자기 자신의 삶을 살고 있지만, 그녀의 삶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온갖 시선을 받아야 했던 그녀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비밀연구소에서 일하게 된 것도 어쩌면 그런 맥락에서였을지도 모른다.
날 바라보는 눈빛을 보면 내가 불완전한 존재라는 걸 모르는 눈빛이에요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니까요
그런 그녀가 한 생명체를 만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인간도 아니고, 신도 아닌 것 같은 그 생명체를 다른 사람들은 '괴물'이라 부르지만, 그녀는 그가 괴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엘라이자는 다르다는 이유로 온갖 시선을 받아야 하는, 그것도 낯선 곳에서 받아야 하는 그 존재의 마음이 어떨지 아마 알고 있었으리라. 그래서 자신만큼은 다른 이들과 같은 시선으로 그 생명체를 바라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엘라이자의 따듯한 시선은 결국 그 낯선 존재의 마음을 열게 한다. 처음은 삶은 달걀 ,그 다음에는 따듯한 시선, 그 다음에는 음악... 인간은 아니지만 지능과 언어능력이 있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그 생명체는 엘라이자로부터 배운 것들로 엘라이자와 소통하기 시작하고, 그들은 서로를 향한 따듯한 감정을 쌓아간다.
네가 그가 필요하다면
내가 도와줄게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존재를 만나면서, 엘라이자는 조금씩 변화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던 엘라이자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행동하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세상은 넓어진다. 그리고 그런 그녀 곁에는 그녀의 세상을 지켜주는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 또한 언제나 낯선 시선을 느껴야 하고,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아야 하는 사회적 약자들이지만, 사랑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줄 줄 알고,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더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할 줄 아는, 누구보다 마음이 따듯하고 강한 친구들이다.
만약, 우리가 처음 보는 모양의 낯선 존재와 직접 맞닥뜨린다면, 엘라이자처럼 따듯한 시선을 그 존재에게 보낼 수 있을까? 낯선 존재를 사랑한다는 친구를 말리기는 커녕 응원할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낯설고 차가운 시선으로 그 존재를 바라보고, 그와 같은 시선으로 자신의 친구를 바라봤을지도 모른다. 낯선 존재는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니까.
그대의 모양 무엇인지 알 수 없네
내 곁에는 온통 그대뿐
그대의 존재는 사랑으로 내 눈을 채우고
내 마음을 겸허하게 만드네
그대가 모든 곳에 존재하기에
우리는 우리와 조금만 달라도 다른 시선으로 낯선 존재를 대하며 우리도 모르게 그 존재에게 간접적으로 상처를 주거나 혹은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폭력이라는 수단을 사용해 직접적으로 상처를 주기도 한다. 영화에서는 낯선 존재를 극단적인 모습으로 표현했지만, 우리에게 낯선 존재는 처음 보는 생명체 뿐만이 아니다.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고 우리와 다른 차림새를 하고 있고... 모순되는 말이지만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흔하게 낯선 존재들이 있다.
영화는 낯선 존재를 사랑하는 엘라이자의 모습을 통해 낯선 존재를 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비춘다. 우리는 우리가 인간답길 원하고,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엘라이자 같은 사람이길, 혹은 자일스나 젤다와 같은 사람이길 원하지만, 우리 주변의 낯선 존재와 그런 존재를 대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실제로는 스트릭랜드일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와 반대편에 있는 엘라이자와 낯선 존재의 사랑이 믿기지 않고, 더욱 환상 같아 보이는 것이다. 우리가 엘라이자와 같은 쪽에 서 있었다면, 우리는 이 영화에 이렇게 큰 감동을 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것 낯설지 않고 당연한 것이었을 테니까.
우리가 아무것도 안하면 우리도 인간이 아니에요
인간만이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줄 모르는 불완전한 이들이 많기에 우리는 제대로 된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 '인간답다'라는 표현을 쓰는지도 모른다. 많은 인간이 등장하는 영화이지만, 가장 인간답게 행동하는 엘라이자와 자일스 그리고 젤다를 보며 인간답게 행동하고, 인간답게 사랑하고 싶어진다.
모든 편견에 맞서는 영화, 불완전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완전한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 그래서 인간다워져야 하는 우리가 꼭 봐야 하는 영화. 이 영화를 보는 모든 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인간다워지기를, 그래서 환상 같은 아름다운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오기를 바란다.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
이미지 출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