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 패스 #3
파키스탄에서 시카고로 이민 온 쿠마일의 꿈은 코미디언이다. 우버 택시기사로 일하며 틈틈이 스탠드업 무대에 오르는 그는 주로 자신이 태어난 곳, 파키스탄에 대한 이야기를 코미디로 펼쳐 보인다. 하지만, 1,4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고, 미국 야구보다 크리켓이 핫한 파키스탄 이야기에 관객들은 웃어주기는 커녕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한 파키스탄에 대한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꾸준히 펼치던 쿠마일은 여느 때와 같이 관객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여기 파키스탄 사람 없나요?"
평소라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을 말. 쿠마일의 질문은 관객의 대답을 바라고 한 게 아닌, 단지 극의 흐름을 위한 하나의 장치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질문에 그녀, 에밀리가 호응을 보낸다. 무대 위 코미디언에게 말을 걸며 극에 끼어드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그녀를 보는 쿠마일의 입가엔 미소가 떠오른다. 단지 응원하기 위한 호응이었을 뿐이라고 말하는 그녀가 쿠마일은 왠지 모르게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단지 이 말을 하고 싶었어
내가 당신에게 푹 빠졌다고
무대에서 내려온 쿠마일은 친구와 함께 있는 에밀리에게 말을 걸고,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은 함께 밤을 보내게 된다. 유머러스하고, 자상한 쿠마일이 에밀리도 싫지 않다. 그러나 사랑에 상처가 있는 에밀리는 다시 사랑하는 게 두려워, 그가 다가오는 것을 경계한다. 하지만 운명 같은 우연이 계속 되고 결국 두 사람은 필연적으로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서로 사랑하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파키스탄과 미국의 거리만큼 다른 문화의 차이가 두 사람의 관계를 멀게 만들기 시작한다. 미국으로 이민 와 살고 있지만, 파키스탄의 정통을 고수하며 파키스탄 사람과의 정략결혼을 강요하는 쿠마일의 부모님은 가족 식사 시간에 우연을 가장해 쿠마일에게 선자리를 마련하고, 쿠마일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그 자리를 피하지 않는다.
우리 둘의 미래를 생각해본 적은 있어?
그러던 어느 날, 에밀리는 쿠마일의 방에서 비밀스러운 상자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지금까지 쿠마일과 맞선 본 여자들의 사진을 보게 된다. 다시 사랑하는 게 두려웠지만, 쿠마일에게 푹 빠져 결혼까지 생각했던 에밀리는 크게 상처 받아 쿠마일에게 이별을 말하고, 에밀리를 사랑하지만 정량결혼을 강요하는 가족을 버릴 수 없는 쿠마일은 그런 에밀리는 붙잡지 않는다.
쿠마일은 에밀리와 헤어진 이후에도 여느 때와 같이 우버 택시를 몰고, 이따금 코미디 무대에 오르고, 여전히 부모님의 강요에 못이겨 파키스탄 사람과 맞선을 보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괜찮은 파키스탄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과 결혼하면 된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던 쿠마일.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에밀리의 친구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에밀리가 병원에 입원해 있고,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소식이 담긴. 괜찮은 줄 알았던 쿠마일의 심장이 덜컹 내려 앉는다. 자기도 모르게 여전히 에밀리를 그리워하고 있던 쿠마일은 그녀가 있는 병원까지 한달음에 달려가고, 그곳에서 에밀리의 병을 검사하고 치료하기 위해 그녀를 혼수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상황은 점점 안 좋아지고, 그녀가 영영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지만, 쿠마일은 에밀리의 곁을 지키기로 한다. 그렇게 에밀리가 혼수상태로 입원해 있던 14일 동안, 쿠마일은 에밀의 곁을 지키며 그녀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되고, 그로 인해 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며 느꼈던 혼란스러웠던 자신의 정체성도 점차 제대로 찾아가기 시작한다.
괜찮아요
우리 테러리스트 아니에요
영화 제목이 왜 <빅 식>, 큰 아픔일까 생각했다. 에밀리가 혼수상태로 누워 있었기 때문에? 그건 표면적인 장면일 뿐, 영화 제목이 의미하고 있는 '빅 식'은 좀 더 내밀한 무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쿠마일이 느끼는 개인적인 아픔은 다른 누군가에겐 별 것 아닌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방인과 현지인 사이의 미묘한 경계에 사는 그에겐 코미디로 승화시키기엔 어쩌면 너무 커다란 아픔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개인적인 아픔은 사실 요즘 우리 사회가 겪는 큰 아픔이기도 하다. 피부색, 언어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와 다른 사람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끊임없는 충돌을 일으키고 있고, 그중에서도 무슬림에 대한 혐오는 극심해져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각종 사회 문제를 일으키며 가장 핫한 이슈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으니까.
영화 속 쿠마일의 코미디 무대를 보며 '우린 정말 파키스탄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의 코미디는 영화 속 관객들에게는 웃음을 주지만, 영화 밖 관객들에게는 무슬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스스로 돌아보게 해 씁쓸함을 남기게 한다. 그래도 그 씁쓸함 속에 희망이 있다고 느끼는 건, 어디에서 태어났든, 어떤 피부색이든,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든 그 모든 걸 사랑이라는 형태로 감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치 에밀리가 쿠마일을 사랑했던 것처럼, 쿠마일이 에밀리를 사랑했던 것처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아픔이야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다름 아닌 바로 에밀리의 엄마 베스이지 않을까 싶다. 에밀리처럼 사랑이 넘치는 그녀는 누구보다 에밀리를 사랑해서, 에밀리에게 상처를 준 쿠마일을 누구보다 강력히 거부하지만, 파키스탄 사람인 쿠마일을 향한 비난에는 그 누구보다 그의 편에 서서 싸워준다. 다른 피부색, 다른 언어, 다른 문화를 가진 데다 어리기까지 한 쿠마일과 자신의 다름이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에밀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같은 위치에서 쿠마일과 마주 보며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는 베스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아픔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행복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이 영화는 어쩌면 그저 그런 뻔한 사랑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영화라고 느껴지는 건 바로 이 이야기가 쿠마일 역을 맡은 쿠마일 난지아니의 실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아름답고 또 감동적인 이야기이지 않을까. 편견과 오해를 넘어선 진정한 사랑이 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아름다운 영화를 꼭 한 번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시사회 관람 후 적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담은 리뷰.
이미지 출처: 영화 <빅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