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가 인지행동 치료 앱을 만들게 된 이유
스터디 카페로 매일 출퇴근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때의 나를 딱 한 단어로 표현하면 '가라앉은' 상태. 하던 일은 잘 풀리지 않고, 인간관계에서 오는 현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막막함. 특별히 큰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전반적으로 의욕이 없는 느낌. 내 인생이 별로 기대가 안 되는 그런 상태.
그 스터디 카페에 나처럼 매일 출근 도장 찍는 한 분이 계셨다. 5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 디자이너분. 작은 모니터를 직접 들고 오셔서 매일 ppt 디자인을 하고 계셨는데. 나는 그분을 보면서 이상한 질문을 하나 떠올렸다.
저 모습이 내가 원하는 미래일까.
원하는 공간에서, 원하는 시간에,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는 일을 한다.
어쩌면 이 조건에는 딱 들어맞을지도 모르는데.
이상하게도 내가 원하는 미래상에 가깝지는 않은 것 같았다.
사주를 믿는 타입은 아니라서 팔자와 인복에 대한 답답함을 그쪽으로 해소할 수도 없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심리 상담 쪽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심리 상담은 20대 때부터 여러 번 시도했다. 대학교에서 무료로 받았던 적도 있고, 100만원 예산을 들고 갔다가 1회기만에 실망해서 포기한 적도 있고, 정신 건강 병원을 예약만 해두고 막상 그 시기가 되니 못 간 적도 있다. (정신과 약을 처방받기 위해서는 최소 3주 전 예약해야 된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았다.)
여하튼 나는 심리 상담을 제대로 받기 위해 필요하다는 그 '라포 쌓기 구간'을 매번 못 넘겼다.
최소 3회기, 30만 원 이상은 써야 진짜 시작이라는데.
INTP라서 그런 건지, 상담사분이 "그러셨군요... 많이 힘드셨겠어요"를 반복하실 때 오히려 불편해진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건 좋은데, '그러셨군요'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지는 않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정확한 이유와 분석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렇게 만난 인지행동 상담은 달랐다. 처음으로 5회기까지 간 상담이었다.
끌렸던 문구가 있었다.
"반복되는 부정적인 사고 패턴을 찾아드립니다. 공감이 아닌 행동 변화를 유도합니다."
이걸 보는 순간 뭔가 내 맘에 딱 걸렸다.
지금의 내 상태는 생판 처음 겪는 당황스러운 놀라움이 아니라, 매 시기, 반복되고 있는 패턴이라는 기시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신청했다.
인지행동치료(CBT, Cognitive Behavioral Therapy)는 생각, 감정, 행동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어떤 상황이 생겼을 때 내가 자동으로 떠올리는 생각, 즉 자동적 사고가 있고,
그 생각이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준다.
CBT는 자동적 사고에서 왜곡된 부분을 찾아내고,
더 현실적인 생각으로 바꾸는 훈련이다.
공감받는 것보다 내 사고 패턴을 직접 보는 게 목적이랄까.
상담 기간 중에 기록 과제가 있었다.
특정 상황 → 그때 든 생각 → 감정 → 그 생각이 얼마나 사실인지 → 더 균형 잡힌 생각은 무엇인지.
이 프레임으로 써 내려가다 보면, 쓰고 나서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경험을 했다.
온라인이라 이동 시간이 없다는 것도 나한테는 꽤 중요한 포인트였다.
그런데 5회기에서 멈췄다.
상담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결국 '사람'이다.
선생님이 마음에 들긴 했다. 그런데 가끔 본인 자녀 이야기가 나오거나, 자기계발 어조로 흘러갈 때 거리감이 생겼다. 내 이야기를 하러 갔는데 선생님 이야기를 더 많이 듣는 세션도 왕왕 있었고.
결국 그 상담에서 가장 실질적으로 도움이 됐던 건 기록법 자체였다. 과제로 했던 게 습관처럼 조금 잡혀 있었고, 나는 그걸 이후에도 노션으로 계속 혼자 해왔다.
인지행동치료 기록을 도와주는 앱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은 솔직히 그때는 잘 안 들었다. 그냥 노션에 했으니까. 노션이 완벽한 대안이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닌데 ㅎㅎ.
도메인을 꽤 심사숙고했다. 결국 심리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 도메인이라면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
여러 일을 시도하고, 그만 두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지속 가능성'이 되었다.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골라야 한다는 것. 내가 실제로 필요했고, 직접 써본 경험이 있고, 더 잘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도메인. 그게 인지행동치료 기록 앱이었다.
결심한 지 3개월 만에 런칭했다.
그런데 너무 슬프게도, 쓰는 분들이 없었다.
정확히는 내 가설보다 훨씬 적었다. 지표를 체크할 때마다 슬펐다. 그래도 거기서 멈추진 않았다. 피드백을 받고, 원인을 분석하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가설을 세우고, 다시 만들고. 그렇게 30번 이상의 배포를 했다.
그 과정에서 앱이 꽤 많이 달라졌다.
처음엔 단순한 인지 행동 치료 기록 도구였는데, 지금은 AI 심리 분석 앱에 가까워졌다. 감정과 생각을 기록하면 AI가 자동으로 인지 왜곡 패턴을 분석해주고, 거기에 맞는 액션 플랜을 제시해주는 흐름이다. 단순 일기가 아니라, 내 사고의 패턴을 보여주는 것. 그게 결국 내가 처음 인지행동치료에서 가장 유용하다고 느꼈던 부분이기도 하니까.
피봇은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씩 세상에 알려보려고 한다. 마인드플래닛이라는 앱이다.
심리 상담이 맞지 않아서, 비용이 부담돼서, 혹은 그냥 혼자 조용히 감정과 기분을 정리하고 싶은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다. 앱을 통해, 그리고 콘텐츠를 통해.
다음 글에서는 인지행동치료가 실제로 어떤 건지,
기록법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더 자세히 써볼 예정이다.
마인드 플래닛 앱이 궁금하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