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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Feb 28. 2022

도착예정인 버스 정보가 없습니다

도마산 초등학교 버스 정류장

저녁 7시 40분. 벽초지 수목원 근처 도마산 초등학교 버스 정류장.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고, 가로등은 드문드문 켜져있는 아주 조용한 곳에 우리 둘만 서 있었다. 반대편 정류장의 버스는 그간 몇 대가 지나갔다. 버스 도착정보를 알려주는 기계의 빨간 버튼을 눌러보았다. 기적처럼, 1대의 버스가 20번째 전 정거장에서 출발했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7시간 전, 우리는 인천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소셜커머스에서 저렴하게 파는 불빛축제 티켓의 유효기간은 2월 29일이었다. 미루고 미루다 겨우 날짜에 맞춰 갈 수 있게 되었다. 4년 만에 한 번 오는 덤으로 생긴 날에 버스여행을 하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 


가는 길에도 버스를 갈아타고, 또 타고, 수도 없이 많은 도로를 달려왔다. 사람도 별로 없는 데다가 전날 내린 눈이 하얗게 새어있었다. 얼마만에 밟는 눈이야, 하면서 이리저리 발자국을 새기고 신이 나 사진을 찍었다. 해가 지고 여기저기 켜지는 전구에 아이들마냥 좋아하며 뛰어다녔다. 그러다 문득, 시계를 봤다. 늦어도 8시 전에는 버스를 타야만 한다. 67번 버스는 1시간에 1대만 다니는 버스. 그리고 그 버스를 타야 금촌역에 한 번에 빠져나갈 수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수목원에서 나섰고, 도마산 초등학교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혹시나 운행이 종료된 건 아닌가, 지도를 찾아보다 버스회사에 전화하기에 이르렀다. 사투리를 쓰시는 아저씨는 7시 45분에 버스가 지나갈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에 마음이 놓여 간이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빨간버튼을 눌렀고 7시 30분쯤 '도착예정인 버스 정보가 없습니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부랴부랴 난리가 난 사람처럼 듣고 있던 노래도 끄고, 지도를 다시 뒤져봐도 운행 중인 버스가 없다는 말만 둥둥 떠다녔다. 다시 운행회사에 전화하니 아저씨는 곧 갈 거란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버스는 보이지 않았고 집엔 어떻게 가야하나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반대편에서 61번 버스가 서더니 기사님께서 왜 거기 서있느냐고 물어오셨다. 어차피 버스는 돌아가는 거라며 얼른 타라고 하셨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일단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는 우리 둘뿐이었고, 기사님은 이제 그쪽으로는 버스가 다니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탄 버스는 길을 돌아 역 방향으로 가는 노선이었다. 8시가 안 된 시각이라 버스가 끊겼을 거란 생각은 하질 않았는데. 시간에 상관없이 깜깜한 밤 낯선 거리에서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잃으니 속수무책으로 두려워졌다. 정거장을 하나씩 거칠 때마다 사람들이 올라타고 불빛이 눈앞에 보일 때쯤에야 안심할 수 있었다. 익숙한 곳으로 돌아갈 수 있구나, 집으로 갈 수 있구나. 


매일매일 어떤 버스가 올지 모르고 살아간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버스가 없습니다, 라는 안내방송을 듣게 될 수도 있다. 누구도 안심할 수가 없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이 버스가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고, 우리를 태우지 않고 가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순간에도 희망은 있다. 길 건너편으로 돌아가는 버스가 올 수도 있고 다른 목적지까지 우리를 태워다줄 새로운 버스를 발견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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