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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행간 산책

2025_10 한줄평 : 한구절

by 해란

# 2025년 10월 독서 목록

1.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2. 『도넛을 나누는 기분』 *재독
3. 『나는 동물』
4. 『사람을 안다는 것』
5. 『다정의 온도』
6. 『우는 나와 우는 우는』
7.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
8. 『미래의 손』
9. 『절창』
10.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 이기호,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문학동네(2025)

한줄평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애견 연대기.


한구절

나는 그때까지도 계속 고통스럽게 울고 있는 이시봉에게로 달려갔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생각조차 필요 없는 일. 저절로 그렇게 되는 일. (p. 463)



# 김소형 외, 『도넛을 나누는 기분』 창비(2025)

한줄평

미처 하지 못한 말 대신

차마 묻지 못한 말 대신

이어폰 한쪽, 도넛 반쪽을 내밀던 그 시절 그 마음.


한구절

이상하다

나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게

(유계영, 「말할 수 없는 슬픔」 부분)


º 김소형, 김현, 민구, 박소란, 박준, 서윤후, 성다영, 신미나, 양안다, 유계영, 유병록, 유희경, 임경섭, 임지은, 전욱진, 조온윤, 최지은, 최현우, 한여진, 황인찬



# 홍은전, 『나는 동물』 봄날의책(2023)

한줄평

살기 위해 도살장을 탈출해 도심을 가로지르는 소처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인간이 넘어야 할 선이 있음을.


한구절

어떤 앎은 나에게 들어와 차곡차곡 쌓이고 어떤 앎은 내가 쌓아온 세계를 한 방에 무너뜨린다. 전자는 나를 성장시키고 후자는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간다. (p. 243)



# 데이비드 브룩스, 이경식 옮김, 『사람을 안다는 것』 웅진지식하우스(2024)

한줄평

사람을 안다는 것, 드러누운 이를 무턱대고 일으켜 세우지 않고 곁에 드러누워 보는 것.


한구절

“사람들은 멀쩡한 어른이 땅바닥에 누워 있는 모습을 바라보기 불편해서 나를 서둘러 일으켜 세우려는 것 같다. 그러나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누군가가 내 곁에 드러눕는 것이다.” (p. 225)



# 정다연, 『다정의 온도』 현대문학(2024)

한줄평

들키기 싫지만 털어놓고 싶은 얼룩의 이야기를 알아채고 보듬어 주는 다정한 온기.


한구절

밤이가 있기에 때때로 비가 오는 날 외투 입은 나의 몸은 우산이 되기도 하고 더운 날 작은 그늘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사랑은 한 존재의 몸을 창의적으로 뒤바꾸고, 기꺼이 사용하게 만들며, 그로 말미암아 세상과 새롭게 만나게 한다. 무릎에 오른 밤이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며 혹여나 균형을 잃고 쓰러지지는 않을까 몸을 잡아주던 일. 손가락 끝에 동그랗게 맺히던 힘과 반대로 활짝 편 손이 만들어내던 부드러운 차양. 그 오목한 감촉들은 평평한 일상을 지탱하는 밤이와 나만 알고 있는 잔잔한 무늬일 테다. (p. 218)



# 하은빈, 『우는 나와 우는 우는』 동녘(2025)

한줄평

비장애중심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키운 처염한 사랑의 방백, 눈부시게 불완전한.


한구절

마음은 매일 내다 버려도 매일 새로 생겨났다. 새 마음은 새로이 아팠다. 상해가는 물복숭아 같았다. 누래지고 흐물흐물해지는 그것을 만지면 분명히 과즙으로 손이 끈적끈적해지리라는 것을 아는데도, 달콤한 냄새가 너무 강하게 나서 자꾸만 다시 열어보고 상처 난 데를 들여다보고 괜히 꾹 눌러도 보았다. (p. 213)



# 차도하,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 위즈덤하우스(2021)

한줄평

서럽도록 용감한 슬라임 지향인의 서글프게 비범한 자기 고백.


한구절

시간을 버리고 싶다. 어서 늙어버리고 싶다. 어서 늙어서 내게 닥쳐올 모든 일을 겪어버리고 싶다. 내가 당할 폭력과 내가 휘두르게 될 폭력을, 얼른 해버리고 싶다.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나와 함께해준 사람의 손을 잡고, 산책을 하고 싶다. 다정한 노부부가 되어. 시간을 버리고 싶은 젊은 누군가 우리를 보았을 때 아, 나도 늙으면 저런 사랑을 하고 싶다, 어서 늙어버리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고 싶다. (p. 224)



# 차도하, 『미래의 손』 봄날의책(2024)

한줄평

여기 있지만 이곳에 속하지 못해 상상 속으로 자리를 찾아나선 이와 눈이 딱 마주쳤다.


한구절

미래에게 줄 간식들을

과거에게 다 써버리면서

(「현재는 이렇게 지나간다」 부분)



# 구병모, 『절창』 문학동네(2025)

한줄평

오독의 창槍에 베여 난 상처라는 창窓 너머에서 아득히 명멸하는 사랑의 절창絕唱.


한구절

그런데 그렇게 책을 읽고 공부한 시간이, 그 사치가 아가씨를 살게 했다고는 볼 수 없는 걸까요. 타인의 상처를 읽어야만 했던 아가씨에게 책이란 그것을 그냥 넘겨 보는 것만으로도 한 존재를 덮는 궁륭이 되어주지 않았을까요. (p. 206)



# 한여진,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문학동네(2023)

한줄평

안팎으로 총성이 그치지 않아도 두부는 평화롭게 구워지는 이상한 흐름 속에서 홀로 살아남은 죄, 매달 매일 매 순간 초기화되는 흰 노트.


한구절

모든 것이 끝나도

어떤 마음은 계속 깊어진다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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