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욱 Feb 09. 2018

무성의하게 건네는 인사말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친절

어릴 적 엄마는 항상 집을 찾아오는 낯선 타인에게 음료를 권했다. 인터넷 설치기사, 보일러 수리기사, 수도계 점검 기사 등등... 대상은 날마다 달랐다. 엄마는 늘 "이것 좀 마시면서 하세요"라며 오렌지 주스나 보리차 등을 건넸다. 나는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살다 보니 이런 작은 친절을 베푸는 행위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심지어 저 정도는 과한 친절에 속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식당 종업원에게, 편의점 카운터의 직원에게, 살면서 무수히 스쳐가는 서비스 직종의 사람들에게 건네는 별 것 아닌 '감사합니다'의 인사조차도 인색한 사람이 세상엔 가득했으니까. 하대하고, 홀대하며 그들이 조금이라도 늦거나 자기 심기를 건드리는 행위를 할 때면 여지없이 얄팍한 인간성과 천박한 우월감을 드러내는 인간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이 대단히 악한 사람이 아니라 보통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나는 더 소름 끼쳤다. 자기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친절하고 다정한 이들이 저런 낯선 타인에게 건네는 무례함을 볼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정나미가 뚝뚝 떨어지곤 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여지없이 나를 실망시키곤 했다.


때로 사람들은 친절을 베풀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이 행동한다. 상대방보다 우위에 섰다고 생각하는 순간, 별 것 아닌 작은 한마디 조차 인색해지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살면서 무수하게 봤다. 그리고 그들은 내게 묻곤 했다. "네가 왜 감사해?". 사실 나 역시 종업원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건, 진짜로 감사한다는 의미 보단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의미 없는 소리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감사하다고 늘 말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래서 나쁠 것 없으니까.' 그 정도 친절을 베푸는 일이 나에게는 그리 과한 것도, 부담스러운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상대방이 기분이 좋아진다면, 내게 물이라도 한 컵 더 갖다 주지 않겠냐는 기대심리도 있었으니까. 


학창 시절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면서 나 역시 쉴 새 없이 무례한 이들을 많이 목격했다. 지불할 현금을 집어던지는 인간, 묻는 말에도 대꾸 하나 없는 청년, 없는 걸 자꾸 찾아내라는 진상까지. 그럴 때면 나 역시 잔돈을 테이블에 성의 없이 놓고, 퉁명스러운 말투로 맞대응했다. 그것이 그런 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응징이자, 내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이라고, 그때는 생각했으니까.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하기 짝 없는 대응이었지만.


하지만 그런 경험들로 하여금, 나는 믿는다. 내가 베푸는 작은 친절은 절대 내게 해가 될 리 없다고. 나 역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에게 무성의하게 건네던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따위의 인사말에 주책 맞게 감동받곤 했으니까. 최근에는 그런 캠페인도 있지 않았던가. 상담원에게 친절하게 대해 달라는. 자기 자식, 자기 친구, 자기 가족, 자기 애완동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끼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겨우 그런 것 따위로 내가 됨됨이가 바른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본인의 얄팍한 인간성을 모두에게 드러내는 것과 같다. 때로 자기 울타리 안의 무언가를 지키다가, 정작 울타리 밖의 누군가를 상처 입히거나 가장자리로 몰지는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뭐, 그게 상관없다면 더 할 말은 없지만.


오늘도 오후에 집으로 정수기를 점검하는 분이 오셨다. 나는 그분께 주스 한 컵을 건네며 감사하다는 무성의한 인사말을 건넸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친절이었으니까. 서로를 점점 더 고독하게 만드는 건, 결국 이런 의미 없는 말과 몇 푼 되지 않는 주스 한 컵 따위도 건네지 않는 우리가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지독히 연극적인 영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