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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욱 Dec 05. 2016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Scene in the cinema - 건축학개론, 제주 서연의 집

영화 속에 나온 장소로 직접 향해서 그 장면 속에 들어가 보는 것은 내 작은 취미 중의 하나다. 나는 그렇게 파리의 골목을 돌아다녔고, 비엔나의 밤거리를 헤맸다. 오랫동안 혼자 머릿속에서 온갖 상상을 한 끝에 마주한 장소는 대체로는 그대로였지만, 세세하겐 달라져있었다. 먼 거리를 날아 도착한 공간에선 영화 속 주인공들이 당장이라도 나올 것 같았지만, 그곳에서 마주하는 것은 오직 텅 빈 거리뿐이었다. 영화의 장면은 오직 영화 안에서만 생명을 가질 수 있었다. 시간이 할퀴고 지나간 장소 위엔 크고 작은 변화가 남았다. 언제나 거리를 헤매다 도착한 영화 속의 장소들은 내가 봤던 그 모습과는 약간, 혹은 많이 달라져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장소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일은 오랫동안 머릿속으로만 생각해왔던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그곳을 실제로 마주했을 때 어떤 감정일지는 오직 도착해서 내 두 눈에 담아야만 알 수 있었다. 그 일은, 마치 첫사랑을 마주하는 과정과 비슷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영화의 촬영 장소를 찾아가는 일은 '첫사랑을 다시 보면 실망한다'는 오래된 구절의 답습이자, 내 이 작은 취미와 가장 맞닿아있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 이 영화의 촬영 장소를 생각하면 가고 싶지만 두 눈으로 보고 싶지 않은 묘한 두 가지의 양가적인 감정이 공존했다.

이용주 감독의 2012년작, '건축학개론'과, '카페 서연의 집'에 대한 이야기다.


제주도에는 '서연의 집'이라는 카페가 있다. 건축학개론의 극 중 서연이 건축가가 된 승민에게 자신에게 집을 지어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켜달라며 찾아와 지은 집. 영화 촬영이 끝난 뒤, 영화사 명필름은 이곳을 시나리오 작업공간으로 쓰려했으나 계획을 바꾸어 이 공간을 갤러리 카페로 만들었고, 일반인들에게 공개했다. 그 뒤로 이 곳엔 건축학개론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 영화를 보며 어쩌면 건축의 과정은 사랑의 과정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래를 상상하며 설계도를 그리고 집을 지을 적절한 재료를 찾고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려 하나의 완성된 집을 만들어나가는 일. 내가 봤거나 겪은 모든 사랑은 하나의 집을 만드는 건축의 과정과 닮아있었다. 그리고 만약 사랑의 과정을 건축에 비유할 수 있다면, 서연과 승민의 사랑은 개론 수준에 그치는 미숙한 스무살의 그 무엇이었다. 어쩌면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의 제목은, 건축학도였던 감독이 느낀 사랑과 건축의 공통점을 담은 의도는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극 중에서 서연과 승민은 이어지지 않는다. 둘은 서로를 향한 오해의 칼날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그렇게 멀어진다. 그리고 그건 이루어지지 않은 세상의 모든 사랑이 지닌 속성이기도 하다.


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란 오해, 그에겐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녀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오해, 그에게 내가 필요할 거란 오해, 그가 지금 외로울 거란 오해, 그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사랑을 이룬 이들은 어쨌든 서로를 좋은 쪽으로 이해한 사람들이라고, 스무 살의 나는 생각했었다.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오해로 인해 멀어졌고, 그 과정을 겪는 서툴고 미숙하기만 한 주인공들은 그 시절 즈음 우리의 모습도 비슷했다. 사람들은 그래서 이 영화를 첫사랑을 닮은 영화라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의 사랑은 시기를 막론하고 항상 그런 모습이었다. 모든 사랑은 결국 그 사람과 하는 첫사랑이기에, 서툴고 미숙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 오해를 어떻게 풀어나가고, 이를 통해 서로를 다시 이해할 수 있는가가 바로 스무 살 무렵의 사랑과 그 이후의 사랑들이 가진 가장 큰 차이점일 테다. 이해. 그 시절과 지금의 우리 사이에 놓인 단어는 어쩌면 이 단어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영화는, 첫사랑은 닮은 영화라기보다는 우리의 미숙했던, 그리고 미숙한 모든 사랑을 닮은 영화이기도 하다.

사실 이 영화에서 나를 더 움직였던 것은 둘의 사랑이야기뿐 아니라 모든 것이 서툴기만 한 인물들의 이야기들이었다. 서연도 승민도, 그리고 이 영화의 숨은 주인공인 납득이도, 승민의 엄마도 전부 서툴기만 하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 그 이야기들에 공감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적으로 잘 만들고 작품성이 좋은 영화들의 기준이라는 걸 누가 정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영화의 이야기에 개인이 공감한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 잘 만들어진 좋은 영화일 테다. 평론가들에겐 그저 그런 로맨스 영화로 분류될 이 영화가 많은 대중들의 기억 속에 깊게 박혀있는 것은, 어쩌면 기교적인 만듦새나 내용적인 깊이보다 투박하면서도 공감 가는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에는 더 쉽게 가 닿을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금 증명해준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납득이가 키스를 묘사하는 그 명장면은 논외로..) 다름 아니라 극 중 어른이 된 서연(한가인)이 승민(엄태웅)과 함께 술을 마시는 장면이었다.


매운탕.. 이름 이상하지 않냐? 알이 들어가면 알탕이고, 갈비가 들어가면 갈비탕인데, 얜 그냥 매운탕. 탕인데 그냥 맵다, 그게 끝이잖아. 안에 뭐가 들어가도 다 매운탕.. 마음에 안 들어.

그냥.. 나 사는 게 매운탕 같아서.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고, 그냥 맵기만 하네...


술에 취해 저런 대사를 내뱉은 뒤 욕과 함께 절규하는 서연의 모습은 승민과, 스무 살 이후로 나이를 먹어버린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첫사랑을 만나서 실망하는 이유는 상대의 변한 모습보다도, 변해버린 내 모습에 대한 실망일지도 모른다. 첫사랑의 신화는 세월이 흘러 변해버린 우리의 모습을 인정하기 싫어한 우리가 만들어낸 일그러진 환상은 아닐까.

서연의 집은 이미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져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유명한 장소가 되었지만, 만약 이 곳이 실제 가정집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관광객이 몰리는 제주도에서 서연의 집이 있는 서귀포의 위미리는 아직 그다지 유명해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리고 만약 이 곳에 실제로 서연이 살았다면 그녀가 아버지와 함께 바라보며 살았을 바다는 마치 세상의 가장자리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세상의 끝에 바다가 있다면, 그 바다는 모래사장이 없는 거친 바다일 것이라고 멋대로 상상하곤 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곳은 내가 생각한 세상의 가장자리와 가장 닮아있었다. 서연의 집 앞에 놓인 위미리의 바닷가는 화산섬인 제주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 있었다. 바닷가엔 구멍 뚫린 울퉁불퉁한 현무암 지대가 넓게 펼쳐져있었고, 그 위엔 이끼인지 풀인지 모를 것들이 자라났다. 바닷물은 그 바위틈에서 잔잔한 물결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건 쓸쓸한 마음으로 제주도에 내려와 살기로 마음먹은 서연이 바라보며 살았을 바다로는 알맞은 곳이었다. 어쩌면 서연은 복잡한 서울에서 내려와 사람이 없는, 어딘가에 존재하리라 믿는 세상의 끝으로 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실제 서연의 집은 사람이 북적이는 곳이었지만, 그 앞에 놓인 바다만은 주인공 서연이 가고 싶어 했을 그 세상의 끝을 닮아있었다.

한편, 보통 이런 식으로 영화 촬영지가 되어 유명세를 타는 곳은 그 곳의 조악한 디자인과(집채만한 스틸컷과 함께 안내되는 올인, 대장금 등등의 촬영지 표지판은 볼 때마다 떼어내고 싶다.)비싼 음식때문에 방문한 뒤에 보통 실망하게 마련인데 카페 서연의 집은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내부에 마련된 영화 소품들의 보존상태도 좋았고 사람들이 많이 오는 만큼 망가지기 쉬웠을텐데도 내부 인테리어도 깔끔하게 유지가 잘 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다지 기대하지 않아서였는지 카페에서 파는 커피의 맛도 나쁘지 않았을뿐더러, 그리 비싸지도 않았다. 또한, 생각만큼 많이 붐비지도 않았다. 아마 주변에 유명한 관광지가 없는 탓도 컸을테다.


1층에서 음료를 사들고 2층에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었다. 나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영화에 나왔던 장면을 담았다. 2층의 모습은 영화 속에 나왔던 모습 거의 그대로였다. 잔디밭에 한번 누워보고 싶었지만, 들어갈 수 없게 되어있어 겉에서 보는 것 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개봉했을 당시 영화 건축학개론의 포스터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있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이 구절은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이자, 우리 모두가 첫사랑을 생각하면 느끼는 그 말랑말랑한 감정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그땐 말할 수 없었지만 다 늦은 지금에 와서야 말하게되는 '사실 나 너 좋아했었어'와 같은 과거형 문장들. 어쩌면 세상엔 이루어지지 않을때라야 비로소 더 아름답게 기억되는 것들도 있는 법일지 모른다. 비록 그 아름다움이 후회와 미련으로 채색된 것이라 할 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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