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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무너지는 기준선

by 라비니야

일요일 오전, 침대 머리맡 햇빛이 느리게 번졌다. 눈을 떴다. 거울이 먼저 나를 봤다. 새로 심은 식물의 잎처럼, 눈썹 앞머리가 다시 한 번 흐릿했다.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사람도 그렇다. 조금 피곤하면 흩어진다. 나는 그 흩어짐을 유난히 잘 본다.

카톡 알림. 서주였다.
오늘 우리 집 앞 카페에서 오후 티타임 어때?
나는 *좋아요.*라고 답했다.
밖으로 나가기 전 화장을 할지 말지 망설였다. 오늘만큼은 내 얼굴을 믿어보고 싶었다. 자외선 차단제만 바르고 나섰다.

“오~ 분위기 더 좋아졌는데?”
서주는 내 얼굴을 오래 보았다.
“눈썹 말고… 뭐가 변한 것 같아.”
“뭐가요?”
“네가 좀… 네 편을 드는 얼굴이 됐어.”
그 말은 조금 따뜻했다.

서주는 늘 나보다 한 발 앞서서 버티는 사람.
“사람들이 뭐라 그러든, 이미지가 어떻든, 회사에서 버티는 얼굴은 결국 자기 표정이어야 해.”
“표정도 훈련이 되나요?”
“당연하지. 근데 그 훈련, 체력 엄청 들어.”
서주의 말에 내 눈썹이 묵직해졌다. 붙여 만든 강함으로 버티는 체력은 더 빨리 닳는다.

커피가 식기 전에 서주는 회사 얘기를 꺼냈다.
“너 요즘 팀장하고 톤이 잘 맞아 보이더라.”
“그냥, 어쩌다 보니…”
“어쩌다? 어쩌다가 제일 힘들어. 계획은 없는데 역할은 생기거든.”
나는 웃었다. 맞는 말이었다.

카페 유리창 너머로 봄바람이 스쳤다.
서주는 진지하게 나를 봤다.
“자영아. 네가 너한테 정직했으면 좋겠어. 남이 보기 좋은 얼굴 말고.”
정직이라. 화장을 지우는 게 정직일까? 붙인 눈썹을 지워내는 게 정직일까? 아니면 흔들리는 내 마음을 그냥 인정하는 게 정직일까? 어떤 정직을 말하는지 알 수 없어서,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범석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어제 전시 좋았습니다. 다음 주에 또 같이 보실래요?
나는 스크롤을 멈췄다. 그는 늘 적당한 거리에서 온도를 유지한다.
네, 시간 괜찮아요.
짧은 대답. 내 온도도 적당했다.

집에 도착해 세면대 앞에 섰다.
왼쪽 눈썹 앞머리에 작은 틈.
사람 마음이 그 틈으로 슬며시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나는 결심했다. 내일은 리터치 받으러 간다. 유통기한이라 불러도 상관없다. 나는 지금 그 강함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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