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를 안아줬더라면...
나는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없다. 아니, 어쩌면 사랑이 무엇인지조차 모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첫사랑을 이야기할 때 눈빛이 반짝이고, 그 시절의 설렘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지만, 내겐 그런 기억이 없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나와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 시절의 나는 사랑보다는 피아노와의 싸움에 온 마음을 쏟았기 때문이다.
24살까지 나는 오직 피아노에만 매달렸다. 피아노는 내 유일한 꿈이었고, 목표였고, 가난했던 내 집안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길 중 하나였다.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았기에, 나는 피아노를 통해 무언가를 이루고 싶었고, 이루어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때의 나에게 사랑이나 우정은 사치였다. 연습이 우선이었고, 완벽한 연주를 위해서는 다른 감정은 밀쳐둬야 했다.
그렇게 나는 연습실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어 사랑을 나누는 일보다는, 손끝의 감각을 더 섬세하게 만들기 위해 악보에 집중했다. 사람들은 젊은 날의 추억과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런 기억이 없다. 그 시절 나의 추억은 피아노 건반 위에만 존재했다.
때로는 생각한다. 왜 나는 그렇게 추억 없이 살았을까?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청춘의 소중한 감정들을 놓친 것에 대해 후회가 밀려오기도 한다. 내가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어 사랑을 경험했더라면, 내 인생은 조금 더 풍성했을까? 그때 누군가가 내 곁에 있었다면, 내가 조금 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 집은 가난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피아노에 집중하는 것뿐이었다. 사랑은 나중의 일로 미뤄둬야 했고, 나는 오로지 목표만을 바라보며 살았다. 그렇게 사랑과 우정, 그리고 소중한 감정들은 그 시절 나에게서 점점 멀어졌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사랑도, 우정도 때가 있다는 것을. 놓친 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때 나 자신에게 조금 더 여유를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인생에는 피아노처럼 중요한 것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면, 조금 더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받아들이며 따뜻한 기억을 쌓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그저 피아노에만 몰두했고, 다른 감정들은 밀쳐내며 살았다.
지금도 가끔 그때를 돌아본다. 그때 나를 안아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아니 내가 나 자신을 안아줄 수 있었다면, 내 인생은 조금 더 따뜻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이제는 그때의 나를 이해하려 한다. 나는 그때 최선을 다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을 했으니까. 그리고 이제는 그때 놓쳤던 것들을 천천히 찾아가고 있다. 첫사랑의 기억은 없지만, 지금은 그때 알지 못했던 감정들을 배워가는 중이다.
지금 나는 그때 놓쳤던 것들에 대해 후회하고, 그 아쉬움이 가슴 한편에 남아 있지만, 그 또한 내 인생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려 한다. 나는 사랑을 배우지 못한 채 20대를 보냈지만, 이제는 조금씩 그 감정을 찾아가고 있다. 어쩌면 나에게 사랑은 조금 늦게 찾아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나는 그 감정들을 배우고 느끼고 싶다.
그때 나를 안아줬더라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까? 그 질문은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나 자신을 안아주려 한다. 그 시절의 아쉬움 속에서도,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을 받아들이고, 그로 인해 더 깊어진 나 자신을 이해하려 한다. 후회가 가슴 한편에 남아 있지만, 그마저도 나의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