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리와 벨라 그들처럼
뽀삐, 순희, 장희, 그리고 단추.
지금껏 나와 함께 했던 개들의 이름들이다. 물론 이중에는 이름을 까먹어서 못 적은 아이들도 있다. 종류는 발바리, 요크셔테리어, 포메라니안, 진돗개로 어린 시절부터 쭈욱 함께 했었다.
그중 뽀삐는 이모집에 가려던 강아지를 내가 데리고 와서 키운 강아지로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함께 했다. 뽀삐가 낳은 강아지를 장날에 팔기도 하고, 자란 강아지들과 골목을 뛰어다니기도 하고, 아는 집에 강아지를 보내며 울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산책이라는 건 생각도 못했고, 사료가 아닌 남은 밥이나 잔반찬을 주기도 했으며 목욕은 정말 몇 년에 한두 번 정도 시켰었다. 우리 집 지론이 사람은 사람 집에, 개는 개집에 산다는 거여서 항상 집 밖에서 키웠던 지라 좀 더 둔한 편이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오면서 그들이 주는 무한한 사랑에 가족과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 가족을 잃은 마음으로 슬퍼했고 경건한 마음으로 그들을 땅으로 보냈다.
세월이 흘러 반려견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고 사는 환경 또한 변화되었지만 그래도 변치 않는 것은 그들이 우리에게 보내주는 그 무한한 사랑이다. 가끔은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 충돌이 일어나긴 하지만 그래도 그들의 기본적인 사랑은 항상 변함이 없다.
그런 사랑을 표현한 영화 두 편이 있다. 4번의 개의 생을 살면서 보여주는 사랑과,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여정을 떠난 충성심을 보여주는 베일리 어게인과 어 독스 웨이 홈이다.
베일리 어게인은 사람보다 짧은 개의 생을 나타냄과 동시에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들의 영화 같은 삶을 보여준다. 다양한 종류의 개로 다시 태어나지만 그 상황에 맞게 보여주는 사랑을 보면 사실 경외감이 들기도 한다.
어 독스 웨이 홈은 핏볼이라는 종류 때문에 집을 떠나게 된 벨라에 대한 얘기이다. 한국에서도 대형견이나 투견종에 의한 사건사고들이 종종 발생한다. 그래서 특별히 테리어 종이나 핏볼 종류에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벨라가 살고 있는 덴버에는 외견상 핏볼로 판별될 경우 집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는 법이 있어 벨라가 주인과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지치고 힘든 사람을 위로해주는 개들을 보며 그들에게 온기와 사랑을 얻는 사람들은 어쩌면 행복한 사람일지 모른다.
나처럼 반려동물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의 사람들이 보면 행복해질 영화 두 편.
슬프고 우울한 일이 있었다면 이 두 편의 영화를 보길 추천한다. 아마 영화 보는 내내 입가의 미소를 지울 수 없을 거라 본다.
반려동물의 그 눈망울과 애교에 약해지는 게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