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을 걷다
냉면과 군만두로 배를 채운 뒤 뒤늦게 시그널 3,4화를 보고 일어섰다.
봄이 왔음을 알고 옷차림이 가벼워진 4월 중순으로 가는 오늘에서야 드디어 무거운 외투를 벗고 가벼이 운동을 하러 나섰다.
출발하자마자 보인 집 앞의 앙상나던 나무 끝에는 연두색 작은 이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쌀쌀하긴 해도 봄비라는 영양분이 내려서 그런지 그 어느 때보다 힘이 느껴진다.
그렇게 걸어가는 길길마다 서 있는 나무에 이젠 모두 연두색이 점점으로 칠해졌다.
겨우내 움츠러든 몸을 펴면서 돋아나는 새싹들을 보면 흡사 귀여운 반려동물을 보는 마냥 탄성과 함께 손이 다가간다. 연둣빛 어린싹의 기운에서 우주의 강한 에너지를 느끼기도 한다. 세상의 어느 색보다 가장 순수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색이 바로 봄비 맞고 펼쳐지는 어린잎들의 색이다. 가로등 불 받아 더 야리야리하게 보이는 어린잎들을 보며 노랑에 초록을 조금 더해 색을 만들까 초록 조금에 노랑을 왕창 더해 색을 만들까 고민해보지만 늘 그렇듯 머릿속으로만 그리고 그 길을 걸어간다.
하나둘씩 꽃망울이 맺히는가 싶더니 어느새 팝콘 같은 벚꽃이 여기저기 피었다. 진해의 벚꽃도 만개하면 커다란 솜뭉치를 나뭇가지 가득 붙여놓은 느낌인데 여기 벚나무도 그러하여 잠시 고향에 온듯한 착각도 해본다.
자정을 향해가는 늦은 밤이라 사람 대신 간판의 네온사진이 가득하다. 강남과 같은 번화가가 아닌지라 도로도 가끔 집으로 행하는 차만이 불빛을 채운다.
마산에서 장복터널 지나가기 전 오른편에 무리를 지어 빼꼼 고개를 내밀던 그때의 개나리가 생각난다. 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 벚꽃보다 먼저 가득 피어 벚꽃보다 더 눈길을 잡던 그 노란 개나리는 그다음 해 가지치기를 당한 후 노란 꽃잎 대신 초록잎를 먼저 피워내 아쉬워했었다. 매년 샛노란 개나리를 떠올리며 장복터널을 지나가는데 그때만큼의 감동을 없어서 항상 그때의 개나리를 소환해 그저 머리로 덧씌운 이미지를 심장으로 보낸다.
노란 꽃 연분홍 꽃 하얀 꽃이 피는 봄이 오는 이 길목에 내 마음도 색색이 물든다.
그렇게 걸어가다 발견한 빛의 자국들. 가로등 불 아래 솔잎이 만들어낸 라인을 보며 나만의 패턴 앨범에 넣어본다.
밤이 아니었으면 보지 못했을 패턴과 한적한 거리, 그리고 봄이지만 쉬이 자리를 내어놓지 않은 겨울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1시간의 밤 산책. 이 산책으로 부른 위의 운동을 돕고, 폐에 봄소식을 가득 담아 넣어주고, 그리고 사랑을 건강하게 키웠다.
매일 다른 계절의 순간을 느낄 수 있는 밤 산책으로 순간순간 건강해지려고 한다. 물론 내 몸에 가득 찬 겨울의 살들도 함께 비우기 위해서. 비운만큼 채울 수 있지 않던가. 이젠 비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