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니 보이는 것들
2018년 4월 15일.
인천에 사는 엄마가 나의 산후조리를 해 주러 제주도로 오셨다. 조리원에 짧게 들어갔다 오기는 했지만 출산 후 100일은 무거운 것도 들지 말고 조심해야 하는 시기라고 한다. 여자가 출산을 하고, 산후조리를 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몸이 지칠 대로 지쳐 있던 나는 산후조리가 절실했다.
내가 제주도가 아닌 인천에 계속 있었다면 나의 엄마와 아빠를 더 자주 뵐 수 있었을 텐데, 멀리 사니 그게 참 좋지 않았다. 우리 엄마 역시 멀리 제주로 시집간 딸을 늘 그리워하셨다. 곁에 있었다면 힘들 때 더 많이 곁에 있어줄 텐데 그러지 못해 안타까워하셨다. 그러다 이번에 딸 산후조리를 해 주러 오신 것이다.
나는 서준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준 건 아니다. 나도 엄마가 보고 싶고, 사무치게 그리운 날이 있다. 특히나 나는 결혼 전, 엄마와 둘도 없는 친구처럼 지냈던 터라 아이를 낳고 나니 엄마 생각이 더 많이 났다.
우리 엄마는 아들 둘에 딸, 삼남매를 키운 육아의 달인이었다. 내 위로 연년생인 오빠와 그리고 나와 같은 날 태어난 오빠(?)라기엔 어색한 쌍둥이가 있다. 부유하지 않은 환경에서, 그렇다고 다정하지도 않은 남편과 살며, 아이 셋을 키우며 우리 엄마는 눈물 콧물 다 빼며 힘들게 살아오셨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나처럼 산후조리를 해 줄 친정엄마도 없었기에 엄마는 더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친정 식구들이 조용히 잘 살았다면 좋았을 텐데 엄마의 친정 식구들은 바람 잘 날 없이 엄마를 마음고생시켜서 우리 엄마는 한시도 편할 날이 없이 바삐 살아왔다.
평일에는 혼자 된 남동생과 친정아버지, 조카 셋이 사는 집에 수시로 들락거리며 청소와 반찬 챙기기에 바빴고, 주말에 아빠가 회사에 가는 날에는 당신 아버지에게 따순 밥을 해 드린다고 늘 우리 집에 초대했다. 처갓집 식구가 집에 드나드는 걸 극도로 싫어하던 아빠 몰래 이렇게 해야 했기에 아빠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가슴이 조여왔다. 아빠가 오기 전에 외할아버지랑 사촌동생이 집으로 가야 하는데 외할아버지는 아빠 퇴근 시간이 거의 다가올 때까지 집에 가지 않고 뜨거운 커피를 아주 천천히 마셨다. 어떨 때는 내가 나서서 "할아버지. 좀 빨리 드시면 안 돼요?"라고 말한 적도 있다.
어린 시절, 나는 엄마가 외할아버지 댁 일을 다 책임지고, 아빠 몰래 집에 부르는 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어느 날인가 엄마에게 비수를 꽂는 말을 하고 말았다.
"다른 애들은 주말에 엄마 아빠랑 다 놀러간다는데 우린 이게 뭐야? 왜 만날 외할아버지랑 ㅇㅇ(고종 사촌)이를 부르는 거야? 나도 놀이공원도 가고 싶고, 엄마랑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싶어. 왜 사지 멀쩡한 삼촌 놔두고 엄마가 이 고생을 다 하는 거야? 아빠 몰래 이럴 때마다 내가 심장이 두근거려서 미치겠어."
어린 마음에 참다참다 불만을 털어놓은 날, 엄마는 내게 그저 미안하다고만 하셨다. 지금 와 돌이켜보면 엄마는 그날, 나 몰래 많이도 울었을 것이다.
엄마는 나의 아이, 서준이를 보고 너무 작고 여려 보인다며 마음 아파하셨다. 하루 종일, 두 시간 간격으로 유축해서 젖병에 담아 행여나 서준이가 서맥이 오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다른 사람에게 수유를 맡기지도 못하고 혼자서 모유를 먹이는 내 모습을 보며 엄마는 눈물을 글썽이셨다. 엄마가 되고 보니 나의 어머니의 눈물의 이유를 더 깊이 알 것 같았다. 나는 내 아들 걱정이, 엄마는 당신 딸 걱정이 컸던 거다.
엄마는 나와 함께하는 11일 동안, 서준이의 첫 목욕도 함께해 주고, 소아과 검진도 함께 다녀와 주고, 바운서도 사 주고, 서준이와 함께 긴 시간을 보내며 외손자 바보가 되어 가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