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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구름 Jun 30. 2022

헤어질 결심, 마침내 박찬욱

column review

Intro

거장이라는 수식어는 한두 번의 성공으로 부여되지 않는다. 나는 6년 동안 박찬욱이라는 이름을 잊었던 것 같다. 그리고 <헤어질 결심>을 본 순간 내가 한국영화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들을 모두 찾았다. 마침내.


마침내 미장센

이 분야에 있어서 박찬욱의 능력은 진작에 한반도의 수준을 벗어났다. 꽤 괜찮은 영화미술은 디테일이 살아있다. 하지만 정말 좋은 영화미술은 디테일이 보이지 않는다. 디테일조차 너무 당연해서 그것이 곧 화면이 되어버리니까. 박찬욱이 공간을 창조하고 가지고 노는 방식은 이미 경이로운 수준이다. 소품과 의상은 서사를 밀고 나가고 화면을 채우는 색상은 분위기를 압도한다. 심지어 모든 것은 대단히 한국적인 동시에 대단히 이국적이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그래서 대단하다. 영화라는 콘텐츠는 애당초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야만 온전하다. 그리고 박찬욱은 그걸 완벽하게 해냈다.

미장센


마침내 연출

나는 영화를 보면서 '저 장면은 어떻게 찍었을까', '저 구도를 잡으려면 힘들었겠다.' 같은 생각들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헤어질 결심>을 보면서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빨려 들듯 집중하느라 바빴으니까. 138분 동안 영화가 보여주는 화면은 단 한순간도 버릴 장면이 없다. 그렇다고 박찬욱이 마냥 유려한 화면과 흐름만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꽤나 많은 장면은 실험적이고 예상하지 못한 편집점으로 가득하다. 처음에는 이것들이 부담스럽다고 느껴지다가도 중반쯤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리듬을 탄다. 그리고 즐기게 된다. 칸에서 '감독상'을 준 이유는 매우 타당한 것 같다.

연출


마침내 박해일

탕웨이의 매력이 이 영화를 휘감으리란 건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생각 외로 영화를 끌고 가는 건 박해일이다. 개성이 흐린 얼굴에 선과 악이 공존하는 표정을 지닌 박해일은 서사의 특이점에서 드러내야 할 표정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이렇다 할 캐릭터 빌드업 과정도 없이 관객들이 장해준 반장의 생각에 올라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다. 휘몰아치는 미장센과 제멋대로 뛰노는 연출 사이에서 박해일의 꼿꼿한 발걸음은 듬직하다 못해 푸근하다. 숨 쉬는 것만으로 관객들의 심장을 움켜쥐는 탕웨이의 매력은 박해일이 차분하게 만들어내는 관을 따라서 관객들의 폐 속 깊숙이 들어온다.

박해일


마침내 박찬욱

결론적으로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이 왜 거장인지를 증명하는 영화다. 그의 영화에는 자신감이 넘친다. 기존에 잘했던 것은 보란 듯 해내고 지금껏 보지 못했던 것도 거침없이 그려낸다. 그러면서도 이 모든 것이 길을 잃거나 애매하게 머물지 않고 힘 있게 어우러진다. <헤어질 결심>을 보고 좋은 영화란 이런 것이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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