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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오늘 하루,
'인생근육' 잘 먹었다

정당한 이름

by 소소한마음씨
오늘 운동, __ 잘 먹었다.


이두, 삼두, 어깨, 광배, 상체, 하체


헬스를 해본 분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말입니다. 운동을 하며, 내가 원했던 부위에 자극이 제대로 들어갔고, 땀 흘린 보람이 있다는 뜻이죠.


그 짧은 한마디에, 고통을 감내한 뿌듯함과 성장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완전히 탈진하고 피곤해진 근육을 두드리며, 말하는 거죠.

와! 오늘 잘 먹었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말을 하루 전체에도 써보면 어떨까? 운동이 아닌, 고단한 삶을 살아낸 하루에도 “오늘, 잘 먹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고단한 하루의 피로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내 '인생근육'이 자극된 날’로 기억할 수 있다면, 보람 있지 않을까요?


피곤한 하루에 의미를 더하는 방법


정신과 외래에서 자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는 / 이번 주는
어떠셨나요?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문득 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봅니다. 많은 분들이 그렇듯, 저 역시, 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대부분의 하루가 비슷해 보이고, 매번 고단한 일상의 반복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이제 조금 다른 이야기를 엮어 나가면 어떨까요?


우리가 겪는 피로와 고통이, 나에게 중요한 무언가를 향한 움직임이라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경험이 될 수 있다고 말이죠.


예를 들어,

직장에서 탈진할 정도로 고생한 날도,

아이에게 감정을 다 써버린 하루도,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무너진 순간도,


그 하루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연결되어 있었다면, 그 피로는 단순한 소진이 아니라 잘 살아낸 하루의 증거가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오늘 하루,
'인생근육' 잘 먹었다.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을지 몰라도, 마음 어딘가는 분명히 자극되고, 찢기고, 다시 회복하려는 힘이 일어난 하루.


그런 하루를 이렇게 불러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도 '인생근육' 한 군데는 제대로 자극됐네.”

“오늘 하루, '마음근육' 잘 찢었다.”

“오늘 하루, '가치'에 제대로 펌핑 들어갔네.” (가치 : 내게 중요한 것)

“이번 주, '멘탈' 근육통 뿌듯하네.”

"오늘 회사생활 제대로 데드리프트 했다."

"와, 수학공부 3세트 오졌다." (오졌다 : 마음에 흡족하게 흐뭇하다, 허술한데 없이 알차다, 굉장하다, 엄청나다, 대단하다)

"오늘 사회생활/자존감 '중량' 쳤다"


고단함 속에서도 ‘성장’이 있었음을 인정하는 태도, 피로에도 ‘가치’라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는 해석. 이건 단순한 말장난이거나 자기 위로가 아닙니다. 그날의 '수고'에 '정당한 이름'을 붙여주는 방식입니다.


정신과의사로서


이런 언어의 전환은, ACT에서 말하는 인지적 탈융합(cognitive defusion)의 한 방식입니다.


우리는 종종 "너무 피곤하다", "아무것도 못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을 깎아내리고 하루를 깡그리 지워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같은 하루를

오늘도 내 (가치)에 무게를 실었구나.


라 말하면, 그 하루는 단단한 의미를 가진 경험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이것은 회피가 아니라, 삶에 대한 헌신적인 자세입니다.

jjalbang_image_1.png?type=w966 똑같은 상황에서 '정당하게' 이름 붙여주기



당신의 오늘은 어땠나요?


혹시 오늘, 너무 피곤해서 "아무것도 안 한 것 같다"라고 느껴지시나요?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 하루,
인생근육 잘 먹었다.

고단했지만,
그만큼 제대로 살아낸 하루였다.


그 말 한마디가 당신의 하루를 지워버리지 않고, 더 깊고 단단한 삶으로 붙잡아줄 겁니다.


'피로'는 오늘 당신이
'의미 있는 무언가'를 향해
움직였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오늘의 고단함을, 잘 자극된 '삶의 근육통'으로 받아들여보세요. 분명 내일은 오늘보다 더 단단해진 당신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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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렇게 제대로 '인생운동' 했다면, 잘 먹고 잘 자야겠지요?

근손실 오지 않도록, 잘 먹고, 잘 자고, 술 드시지 마시고, 내일은 또 어떤 부위를 조져 볼까 기대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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