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칼협
새벽, 훈련장의 공기는 얇은 칼 끝처럼 차갑습니다. 특수부대원의 얼굴에는 미소보다 '한계'와 '책임'의 그늘이 먼저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들의 하루는 그저 '버티면 끝난다'가 아니라, '어떻게든 반드시 해낸다'에 가깝습니다.
그들은 왜 이런 고통을 감내할까요?
단지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라면,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희미합니다. 혹시, 그들에게도 이렇게 물어보실 겁니까?
누칼협?
누가 칼 들고 협박함?
그거 왜 함?
그들은 '자신'을 지키고, '곁'을 지키고, 끝내 '우리'를 지키기 위해 훈련장을 다시 오릅니다. 돌덩이 같이 무거운 군장을 메고, 무쇠로된 총을 들고, 밤을 새워 경계를 하고, 자신을 극한까지 몰고 가는 훈련을 받습니다. 그들의 선택은 영웅심이 아니라, '서로의 안전이 서로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공기'처럼 당연해서 아무도 감사하지 않는 '안전'이라는 필수적 요소를 달성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라는 섬은 없다
우리는 흔히 각자의 성취를 '나의 힘'만으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아침의 한 잔 커피만 생각해도,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수만 개의 손길이 깃들어 있습니다. 농부의 새벽, 항만 노무자의 땀, 세관의 검수, 물류 기사님의 운전, 점원의 환대, 그리고 전력, 통신, 도로, 치안, 보건의 '보이지 않는 기반 시설'이, 그 과정에서 자신이 하는 일이 이렇게 향기로울 수 있는지도 모르는 많은 이들의 땀냄새가, 모든 단계에서, 겹겹이 받쳐 줍니다.
아마도, 그래서 더 향기로운 것이겠죠.
'연결은 선택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누군가가 밤을 지켜 준 덕분에 우리의 아침이 평온해지고, 누군가가 배운 것을 가르친 덕분에 또 다른 누군가가 더 멀리 갑니다. 건설 노동자가 흘린 땀방울 위에 지어진 건물 속에서 우리는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과학연구가 제가 하는 오늘의 치료를 도와줍니다. 저와 버텨낸 환자분의 하루가 누군가의 안전과 평온을 지켜줍니다.
한 사람이 무너졌을 때
다른 사람이 내민 손길 하나가,
결국 '우리라는 구조물'을
무너지지 않게 합니다.
18개월의 시간, '개인의 자유'를 '공동의 안전'으로 바꾸는 일
"사회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내어준 적이 있습니까?"
저에게 이 질문은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만큼은 머뭇거림 없이 '병역과 봉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 시간은 '청춘의 속도를 늦추고, 가능성의 방향을 잠시 접어 두는 결단'입니다. 해야 할 것들이 무수히 많은, 준비해야 할 것들이 널려있는 한국사회에서 그 시간은 각자에게는 '멈춤'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 '멈춤'이 만든 것은 공백이 아니라 '공공의 안전이라는 채움'이었습니다.
이 고리는
군인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소방관의 출동은 누군가의 내일 일터를 지키고, 경찰관의 순찰은 밤길의 용기를 지키며, 의료인의 당직은 생명이라는 마지막 선을 지킵니다. 교사의 수업은 다가올 세대의 머릿속에 '국가의 미래 산업과 문화의 씨앗'을 뿌립니다. 제가 돌보는 것은 환자분이겠지만, 그 가족의 생계를 돌보게 되기도 합니다. 교사는 시험 점수보다 더 오래가는 삶의 습관을 심습니다. 운전기사는 단순히 목적지를 찍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무사히 데려다주는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사무직의 문서 하나가 거래처의 신뢰를 만들고, 조직의 생존을 돕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당신을 돕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방식으로
우리를 돕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타인을 위한 노동이
곧 나를 지키는 구조
'돈 때문에 일한다'는 말이 틀린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급여의 뒤에는 누군가의 안전, 편안함, 배움, 희망이 함께 들어 있다는 걸 기억한다면,
내 일이 조금은 더 자랑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대하는 피곤한 누군가에게 조금은 더 감사할 수 있습니다.
튼튼한 국방 → 안전한 투자와 생산 → 일자리
우수한 교육 → 숙련된 연구자, 기술자 → 수출과 혁신
신속한 구조 → 손실 최소화 → 지역경제 회복력
성실한 납세, 법 준수 → 사회적 신뢰·인프라 확충 → 생활의 편익과 안정
이건 도덕 교과서적인 미화가 아니라, '우리 삶을 지탱하는 실재하는 작동구조'입니다. 우리가 '나의 이익'이라고 부르는 많은 것들은, 사실 '우리의 신뢰'에서 비롯됩니다.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타인을 향한 친절과 책임, 규범 준수는 따뜻한 마음씨만이 아니라 '사회 운영의 하드웨어'에 가깝습니다.
위기 때 더 또렷해지는 연결의 윤곽
평상시에 보이지 않던 연결은 '위기' 속에서 윤곽을 드러냅니다. 재난의 현장에서, 감염병의 병동에서, 대규모 사고의 밤에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즉시성’과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지속성'이 겹쳐, 사회는 가까스로 균형을 되찾습니다. 우리가 다음 날 다시 문을 열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선가 '내가 맡은 자리'를 끝까지 지킨 '이름 없는 사람들' 덕분이었습니다.
잊고 있었던 중요한 사실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 자신을 돕는 길'은, 먼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도움은 대개 직선이 아니라 '우회로'를 통해 돌아옵니다.
내가 도운 A가 아니라, A가 도운 B, B가 도운 C를 거쳐, 언젠가 내 아이의 선생님, 내 부모의 간호사, 내 동료의 협력업체로 '형태를 바꿔' 내게 닿습니다. 이것이 '사회적 선순환'이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반대로 말씀드려 볼까요? 오늘 당신이 '갑질'한 누군가가 내일은 '당신의 갑'이 됩니다.
오늘 당장 이어 붙일 수 있는 작은 연결들
1. 감사 표현하기: 고맙다는 말을 마음에만 두지 말고, 문자, 메모, 후기에 남기기.
2. 규범의 일상화: 작은 법규, 에티켓(줄 서기, 소음, 분리배출)을 습관처럼, 신뢰의 바닥을 깔아 줍니다.
3. 역할의 재명명: '먹고살기 위해 일한다'에서 '누군가를 지키는 일을 한다'로 내 일을 다시 불러 보기.
4. 현장 존중: 군인, 소방, 경찰, 의료, 교육, 돌봄, 청소, 물류 등 '현장 노동'에 대한 언어와 태도를 바꾸기.
5. 조금만 친절하기: 사회적 회복력은 여기서 자랍니다.
'연결'이 것은 그저 낭만적인 단어가 아닙니다. '책임과 신뢰'라는 단단한 결로 우리를 엮고, 그 결이 촘촘할수록 위기에도 부러지지 않습니다.
당신이 오늘 베푼 작은 친절과 성실은, 내일 '누군가의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누군가에 표현한 '감사'는 다른 누군가가 직장에서 하루를 더 버텨내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누군가'가 바로 '당신'이 됩니다.
그러니 오늘, 이 거대한 순환에 작은 톱니 하나를 얹어봅시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우리의 하루는 수많은 이름 없는 손길 위에 서 있습니다. 그 고리를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 건, 거창한 헌신보다 작은 친절과 진심 어린 감사입니다.
그렇게 이어진 신뢰는, 결국 당신이 다시 기대 설 수 있는 안전망이 됩니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땀 흘리는 당신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