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어차피 내려올 산, 왜 올라가는 건데?"
학창 시절 등산이나 가자고 말을 꺼냈다가, 어느 친구가 했던 질문의 답을 찾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답이 있으실까요?
최근 이 질문을 떠올리게 한 일이 있습니다.
《KBS 다큐멘터리 3일 특별판, 어바웃타임: 10년 전으로의 여행》입니다.
2015년 안동역에서 우연히 만난, 다큐 3일 촬영자와 대학생, 이렇게 세 사람이 "10년 뒤, 2025년 8월 15일, 같은 시간 7시 48분, 같은 장소 안동역 앞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습니다. 거창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약속이었습니다. 지나가듯, 심각한 의미를 담은 것도 아닙니다. 20살의 인생에서 10년 뒤를 기약한다는 것은 얼마나 막연한가요.
그리고, 10년 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습니다. 안동역은 이미 폐쇄되었고, 그 역을 다니던 무궁화호 기차도 없어졌습니다. '내일로'라는 이름의 '기간한정 기차 자유이용권'은 마치 꼭 '청춘'을 닮았고, 그러한 20대 청춘도요. 나 자신도 세상도 많이 변했지만, 10년 전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많은 이들이 기대하였습니다.
그리고, 10년 뒤, 그날, 2025년 8월 15일. 정말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낯설어진 플랫폼 위에서 함께 나눈 말은 단순했습니다.
10년간 잘
살아줘서 고맙다.
이 약속은, 이 만남은 어떻게 이토록 '낭만'적인가요. 사소한 약속 같지만, 그것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조차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부여잡고 싶은 우리의 '가치' 증명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삶의 의미란, 결국 이런 어설프지만 지켜낸 약속, 덧없지만 서로를 확인하는 순간 속에서 드러나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이 약속은 저에게는 아이러니하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을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소설 《설국(雪国)》은 1930년대 일본의 외딴 온천 마을을 배경으로 한 유부남 지식인과 게이샤의 덧없는 사랑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고전입니다. 자연과 인간의 비애를 담담하게 관조하는 순수 문학으로, 가와바타는 이 작품을 대표작으로 196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설국》의 주인공 시마무라(島村)는 도쿄에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무위도식하며, 실제로는 본 적도 없는 서양 무용을 비평하며 비생산적이고 관념적인 활동에 몰두합니다. 그는 삶의 현장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관조'하는 태도를 취하며, 온천 마을에서 만난 게이샤 고마코(駒子)의 열정적인 사랑을 '헛수고'로 치부합니다. 그는 시종일관 고마코(駒子)와 요코(葉子)에 대하여 감정적 관여를 회피함으로써 자신의 허무를 방어하는 폐쇄적인 존재입니다.
시대를 달리 했을 뿐, 소설 《상실의 시대》에서 와타나베와 데칼코마니를 이룹니다. 와타나베는 친구 기즈키의 죽음, 나오코의 상실, 미도리와의 관계 속에서 방황했죠. "죽음이 삶의 한 부분"임을 끊임없이 되뇌면서도, 스스로는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채 '부유'합니다. 시마무라와 와타나베 두 사람 모두 사랑과 삶의 순간 앞에서 전적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어떤 거리감 속에서 허무를 받아들입니다. 삶에 대한 ‘행위’보다 ‘응시’와 ‘머뭇거림’이 앞서는 태도를 보입니다.
삶에 대한 ‘행위’보다
‘응시’와 ‘머뭇거림’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본다면 시마무라의 허무는 '자기 동일성'과 '내재성'에 갇힌 폐쇄적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이 본 적도 없는 서양 무용을 비평하는 것처럼, 거리를 두고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 객체화하며 거리를 둡니다. 시마무라는 시종일관 고마코와 요코의 삶과 연결되기를 거부합니다. 그렇게, 현실의 고통과 책임을 회피하고, 자신의 안전한 내재성 속에서만 머물려합니다.
삶에 대한 '연결'보다
'자기 동일성'과 '내재성'
'섬'처럼 타인과 진정으로 연결되기를 거부하는 태도가 바로 그의 허무의 근원이자, 외로움을 낳는 비극적인 원인이죠.
눈 덮인 산간 마을의 풍경처럼,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관계는 아름답지만 차갑게 스러집니다. 겨울 동안 눈은 소리 없이 내리고, 쌓이고, 녹아 사라집니다.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사랑 또한 그렇게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작품의 배경인 설국 역시 봄이 오면 사라지는 덧없음의 상징하는 것이겠죠. 어쩌면 유한한 우리의 인생처럼요.
그 동시에, 소설 《설국(雪国)》은 그 순간의 '설국'의 아름다움을 눈부시게 그려 냅니다. 오히려 유한하기 때문에 더욱 강렬하게 가슴에 남습니다. 봄 한철 열렬히 떨어지는 벚꽃처럼요. 만약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렇게 아름답지 않을 겁니다. 우리의 인생도 유한하기 때문에, 지금이 더 절실하고, 순간의 아름다움이 더 빛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저자 가와바타는 말없이 묻습니다.
영원히 남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왜 사랑하고 왜 열정을 불태우는가?
유한하기에 더 아름다운 우리 인생에서
그리고, 저에게는 그 답이 《KBS 다큐멘터리 3일 특별판, 어바웃타임: 10년 전으로의 여행》에 녹아 있었습니다. 약속, 그 사소한 온기를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붙잡는 우리에게, 그것이 아주 잠깐, 아주 작은 '온기'라 하더라도, 그것에 함께 '울고' '웃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란 것, 우리 삶에 주어진 시간이 하루가 되든 백 년이 되든, 인생이라는 설국에서 머무는 시간 동안 그 시간을 최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채우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라서 아닐까요. 그 '사랑'과 '열정'역시 '설국'에 불과하더라도, 우리 인생 자체가 그러하니까요. 그 '설국'은 '허무'가 아니라 '아름다움'이라고. '인생'은 언젠가 사라지기에 '아름다운' 거라고.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스포일러 있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이하 《에에올》)는 이러한 허무에 대해서 다른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에에올》은, 미국에서 코인 세탁소를 운영하는 평범한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기상천외한 멀티버스 액션 서사로 풀어냅니다. B급 영화의 감성과 빠른 장면 전환으로 처음에는 다소 정신없죠. 영화 속 멀티버스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무한함은 오히려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봄이 오면 사라지는 설국과는 반대의 세계인 듯 동일한 세계 이겠지요.
엄마 에블린에게 딸 조이는 말합니다.
If you can be
anything, anywhere, at any time,
then nothing matters
어디서든 무엇이든 될 수 있다면,
결국 아무 의미도 없는 거야.
이 선언은 철저한 허무주의입니다.
이러한 허무주의는 조부 투파키(Jobu Tupaki)라는 파괴적인 캐릭터로 의인화됩니다. 그녀는 무수히 많은 평행 세계, 즉 멀티버스를 '동시에' 경험하는 능력을 얻게 되면서 모든 것의 무의미함에 도달하게 됩니다. 돈, 명예, 사랑, 성공, 실패 등 모든 가능한 현실을 한꺼번에 마주한 그녀에게 모든 가치는 부질없어집니다.
마치 인터넷이 연결된 책상에 앉아 모든 경험을 다 해본(?) 다음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모르는, 오늘날 많은 청년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인터넷을 통해 지나치게 많은 정보가 과부하되지만, 그 무엇도 진정으로 해보지 않았으며, 끝없이 마주해야 하는 선택으로 인한 피로감, 그리고 무수한 세계 속 그 무엇도 되지 못한 자기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을 말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제가 다니는 학교, 제 전공으로,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 봐도, 저는 별로인 인생이에요."
조부 투파키의 허무주의는 삶의 무의미함을 인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파괴'로 이어집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존재의 극단적인 고통들이, 영화에서는 '베이글 모양의 블랙홀'이 되어 만들어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파괴하려 합니다. 아마도, 이러한 허무주의가 단지 개인적인 관조에 머무르지 않고, 그들의 세상을 파괴하는 무기가 된다는 것을 전달합니다. 그게 설령 자신을 파괴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더라두요.
Do you know why I actually built the bagel?
It wasn't to destroy everything.
It was to destroy myself.
세상을 파괴하기 위해 베이글을 만든 게 아니야.
나를 파괴하려고 만든 거지
'너'와 '나의 세상'은 연결되어 있는걸
그러기에, 그 상징이 Everything bagel 일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단 한번뿐인, 특별하고도 평범했던 '당신의 세계(Il mondo)' 베이글이 아니라, 참깨, 소금, 마늘, 양파, 양귀비 씨 등 세상의 모든 토핑을 담은, 그 모든 것을 담은 허무, 그리고 그것은 모든 가능성의 종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허무의 블랙홀이 됩니다. #에브리씽베이글
"A bagel. I got bored one day. So I put EVERYTHING on a bagel. All of my hopes and dreams. My old report cards. Every breed of dog. Every last personal ad on craigslist. Sesame. Poppy seed. Salt. And it collapsed in on itself. When you really put everything on a bagel, it becomes this. The truth."
"어느 날 심심해서 베이글에 모든 걸 올렸지. 내 모든 꿈과 희망, 옛날 성적표, 개의 모든 품종, 인터넷 구애 광고, 참깨, 양귀비 씨, 소금. 그랬더니 알아서 붕괴하더라고. 세상 모든 걸 베이글에 올리면 이게 되거든. 진실."
"진실이 뭔데?"
Nothing matters.
전부 부질없다.
남아 있던 토핑들을 죄다 올려, 이도저도 아닌 에브리씽 베이글은, 모든 물감을 풀어 넣은 미술시간 물통의 색상처럼,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의 삶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더하는 것과도 같죠. 모든 것을 더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그 모든 것이 되는 허무를, 그 허무에 담긴 이 시대의 '절망'과 '비극'을 설파하죠.
"선생님 솔직히 말해서, 제가 지금부터 성공할 가능성이 있나요?"
"열심히 해봤자 하류인생인데, 열심히 하고 싶지도 않아요."
조부 투파키의 '허무주의' 설법은 제 진료실에서도 이어집니다.
"It feels nice doesn't it? If nothing matters, then all of the pain and guilt that you have for making nothing of your life, it goes away too. Sucked into a bagel."
"기분 좋지 않아? 만약 모든 것이 부질없다면, 아무것도 이뤄낸 것 없다 생각한 삶의 고통과 죄책감도, 다 사라지는 거니까. 베이글 속으로 빨려 들어갈 뿐."
"I wasn’t looking for you so I could kill you. I was just looking for someone who could see what I see, feel what I feel."
"내가 널 죽이려고 찾은 건 아니야. 나는 내가 보는 걸 같이 봐줄 사람, 내가 느끼는 걸 같이 느껴줄 사람을 원해."
그리고, 저는 마치 조부투파키에게 설득당한 에블린처럼, 환자분들의 '에브리씽 베이글'을 함께 쳐다보게 되기도 하죠.
그러나 남편 웨이먼드는 달랐습니다. 영화 초반, 에블린은 남편을 '세상 물정 모르는 엉뚱하고 철없는' 나약한 사람으로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무능함에 지쳐 이혼서류를 내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남편의 유머와 다정함이 세상과 맞서 싸우는 유일한 방법이자, 궁극적으로 우주를 구할 수 있는 무기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When I choose to see the good side of things, I'm not being naive. It is strategic and necessary. It's how I learned to survive through everything."
"내가 무언가의 좋은 부분만 보기로 선택한 것은, 순진해서가 아니야. 그게 전략적이고 필수적이 어서지. 이 방법이야말로 '모든 것'을 통하여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깨달은 것이야."
"I know you see yourself as a fighter. Well, I see myself as one too. This is how I fight."
"당신은 자신을 투사로 보고 있죠.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바로 내가 싸우는 방식입니다"
This is how I fight.
Please, be kind, especially
when we don’t know
what’s going on.
부디, 친절하게 대해 주십시오,
특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가 모를 때에는.
이게 바로 내가 싸우는 방식입니다.
남편 웨이먼드의 이 대사는 영화 전체의 주제인 '허무주의를 넘어서는 다정함'과 연결됩니다. 좀 더 확장하자면, 허무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가 다소 어리숙해 보이더라도, 자신과 주변 사람에게 다정하게 대해야 한다는 걸 말해주요. 우리가 무수히 고민하는, 어떤 선택이나 가능성보다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행하는 작은 행동들이 더 중요하고 의미 있다는 것이, 다정함과 사랑이야말로, 무의미와 혼돈에 맞서는 유일한 저항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You could be anything, anywhere. Why not go somewhere your daughter is more than just this?
Here, all we get are a few specks of time where any of this actually makes any sense."
“엄마는 어디서든 뭐든 될 수 있어. 왜 더 나은 무언가가 될 수 있는 곳에 가지 않는 거야?
여기서는, 이 모든 게 정말로 의미가 있는 순간은 몇 번 안 돼.”
그리고, 결국 에블린은 깨닫습니다. 그리고, 딸에게 말해줍니다.
Then I will cherish
these few specks of time.
그럼 난 그 몇 안 되는 순간을
소중히 여길 거야.
너와 함께 하는 순간을
"Then I will cherish these few specks of time."
“그럼 난 그 몇 안 되는 순간을 소중히 여길 거야.”
그저, 곁에 머물게 될 뿐이라도.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해도,
나는 너와 함께 할게.
그게 소중한 순간이니까.
이 고백은 허무를 지우지 않습니다.
그러나, 허무 속에서도 우리는 '연결'될 수 있습니다.
허무 속에서도 '다정함'으로 나와 세상을 대하는 것, '관계'와 '사랑'으로 살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의 존재 자체를 확인시켜줍니다. 시마무라는 해내지는 못했지만, 고마코와 와타나베는 노력했던 그것. 함께하기. 그리고, 모든 것(Everything)이 모든 곳에서(Everywhere) 모두 한꺼번에(All At Once)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서로가 함께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음을.
지금처럼 머무르고 싶은 이유는 소중한 이들과 함께하는 가치가 있기 때문이죠.
허무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산 정상에 올라도, 결국 우리는 빈손으로 내려옵니다. "어차피 내려올 텐데. 어차피 끝나고 사라질 것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냐."며 입구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돌아온다면, 그 여정은 시작조차 되지 못합니다. 우리 인생 역시 그렇겠죠. 결국 우리 인생도, 유한하고, 빈손으로 돌아가겠죠. 그 사실 앞에서 우리는 '허무'를 느낍니다. 그 허무는 아무것도 없는 '無'가 아니라, 떨어지는 벚꽃처럼, 그리고 '설국'처럼, 지금의 이 순간이 빛날 수 있게 해주는 배경 일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저의 삶 역시 결국 빈손으로 끝나겠지만, 그 여정에서 나눈 '온기'들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가족의 일원으로, 동료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제가 해야 할 역할들을 묵묵히 수행하며 지켰던 가치들과 약간의 온기들이, 10년을 기다려 지켜낸 짧은 약속처럼,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낭만'이 될지도 모릅니다.
허무는 우리의 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허무 덕분에 우리는 순간의 빛을 더 간절히 붙잡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느 한쪽만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흩날리는 꽃잎을, 녹아내리는 눈을, 사라지는 순간을 가만히 바라보아야 하고, 또 때로는 혼돈 속에서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현실에 발을 딛고, 누군과와 관계 맺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용기를 내어서요.
그저 함께 있는 것에 불과하더라도,
그 순간을 소중히 하면서.
� 3줄 요약
유한하기에 순간은 더 아름답다. 《설국》
혼란 속에서 다정함은 우리의 무기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그리고,
어떤 선택이나 가능성보다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행하는
작은 행동들이 더 중요하고 의미 있다.
제발 다정해 주십시오.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