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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이 사라진 세계

Gravity

by 소소한마음씨

우리는 삶이 안전하고 예측 가능하기를 바랍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익숙한 풍경,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은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이지요.


하지만 그 믿음은 늘 살얼음 같습니다.

인생 찰나이고,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 준비되지 않은 시점 우리 재난은 찾아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깊고 아픈 재난은, 아마도, 사랑하는 이를 잃는 일일 것입니다.


예고 없이 다가와 삶을 돌이킬 수 없게 산산이 부수고, 통제할 수도, 피할 수도 없이, 우리 존재 전체를 무너뜨리는 사건.

그 앞에 서 있는 분들의 아픔을 마주할 때면, 마음은 무겁고 조심스러워집니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찾아야 했습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상실은 불현듯 찾아와, 평범했던 일상의 균열을 강제합니다.


영화 《그래비티》(Gravity, 2013)는 바로 그 균열의 순간을 압도적으로 그려냅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모든 것이 산산이 흩어지는 경험을 우주라는 무대에 옮겨놓고 그 속에서 다시 삶의 무게를 회복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영화 《그래비티》 스포일러 있습니다.


movie_image.jpg?type=w640_2 그래비티, 알폰소 쿠아론
What do you like about being up here?
우주에 있어서 제일 좋은 게 뭐야?

The silence.
고요한 거요.


고요재난우주, 우리의 인생, 생존 기록


처음 볼 때 이 영화는 우주 재난 생존기처럼 보입니다. 허블 우주망원경 수리를 위해 파견된 라이언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와 베테랑 우주비행사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는 임무 수행 중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인공위성 폭발의 여파를 맞습니다. 수많은 파편들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 우주왕복선을 파괴하고, 동료들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스톤 박사는 광활한 우주 속에 홀로 표류하게 되고, 처음에는 맷의 도움으로, 나중에는 오직 자신의 생존 의지만이 그녀를 지탱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우주 재난 생존기가 아니라, 상실을 겪어내는 한 사람의 인생 생존기 자체로 바라보게 되면, 영화의 진정한 무대는 외부의 우주가 아니라, 상처 입은 한 영혼의 내면이며, 층층이 쌓인 인생에 대한 상징들로 이루어집니다.


라이언은 이미 지구에서 4살 딸을 잃은 어머니였습니다. 이후, 대화 없는 라디오를 들으며 목적지 없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행위를 반복하며 삶에서 부유하였고, 자신내면으로 숨어들었습니다. 마치 중력이 없는 우주 공간처럼. 그렇게 딸을 잃은 슬픔 속에서 타인과 소통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고립시켜야 했습니다.


I get it, it's nice up here.
그래, 여기 멋진 건 나도 알아

There's nobody up here that can hurt you.
여기선 자네 상처 줄 사람 아무도 없어

It's safe.
안전하지

사람이 없어서, 안전하지


예고 없이 찾아오고, 통제할 수 없으며, 현재를 산산조각 내는 사고.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평범했던 일상의 한가운데로 불쑥 들이닥쳐 모든 것을 무너뜨리며, 삶을 "사고 이전과 이후로" 갈라버리절대적 균열. 라이언에게 딸의 죽음이 그러했고 우주에서 맞닥뜨린 재난 또한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우리에게도 예상치 못한 순간 발생합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시작된 위성 폭발이 연쇄적으로 그녀를 덮쳤듯, 4살 딸의 죽음도 그녀 삶의 중심을 산산조각 냈습니다. 두 사건은 서로 다른 차원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성격의 재앙이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사랑하는 이를 잃을 때, 삶은 단숨에 균열을 맞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는 우주의 한 구석으로 아무것도 기대할 것 없이, 관성력에 의해 우주의 한 모퉁이로 내팽개쳐지게 됩니다. 붙잡을 것조차, 스스로는 멈출 수 조차 없는 무중력의 세계로 내팽개쳐지게 됩니다. 아무것도 없는 우주는, 타인과 거리를 두며, 안전하다고 믿어왔던 곳은, 사실 내면의 황량함과 고독을 끝없이 반향 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우리를 붙잡는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붙잡혀 살아갑니다. 물리학은 그것을 '중력(Gravity)'이라 부르죠.

중력
= 우리를 붙잡는 보이지 않는 힘

단순히 물체를 지구에 끌어당기는 힘을 넘어, 우리가 땅에 발을 딛고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삶의 무게이자 근거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중력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눈에 보지 않는 힘만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숨 쉬게 해 줄 공기도 없다는 것, 그리고, 공기가 없으니 관성력에 의해 무한대의 우주로 내팽개치게 되는 장면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도 이러한 것이 있죠.


우리 인생에서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이를 잃는다는 것은 곧 그 중력이 사라지는 경험과 같습니다. 발 밑의 땅이 꺼지고, 모든 것이 떠밀려 가는 듯한 무중력의 상태.


라이언이 우주에서 겪는 표류는 곧, 상실을 경험한 이들이 겪는 내적 표류와 다르지 않습니다. 딸을 잃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저 부유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과 같습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디에도 기댈 수 없는 표류의 시간.


외부 목소리내면목소리

광활한 우주공간의 절망 속에서 라이언을 붙잡아준 것은 동료 우주비행사 맷이었습니다. 홀로 내팽개쳐진 라이언과 유일하게 로 이어졌고,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한 없이 밀려나가는 그녀를 붙잡았고, 을 향해 다시 나아가는 연결이 되었습니다.


침묵에 빠진 라이언과 달리 맷은 수다스러웠습니다. 그는 유머를 잃지 않았고, 위기의 순간마다 라이언을 구원합니다. 그 핵심은 끊임없는 대화였습니다. 상실 속에서도 우리가 여전히 타인의 목소리에 의해 붙잡혀 있음을 보여줍니다. 끝없이 대화를 시도하는, 이러한 수다스러움이, 상실에 빠진 자에게 타인의 목소리가 얼마나 중요한 '중력'인지 보여주는 장면이지요.


그러나 맷은 끝내 그녀 곁을 떠나고, 라이언은 홀로 남겨집니다.


맷이 있었을 때는 그의 존재와 목소리가 고통을 분산시켰지만, 그가 사라지며, 혼자 고통을 감내하게 됩니다. 희망을 잃고, 죽음을 선택하려는 순간, 맷이 환영처럼 다시 나타나 그녀를 일깨웁니다. 그녀를 꾸짖으며, 살기 위한 방법을 알려줍니다.


하지만 곧 그것이 맷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깨어난 목소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아마도, 상실을 살아낸다는 것은 누군가 대신 나를 구원해 주는 일이 아니라, 내 삶을 위해 진정으로 노력해 주었던 누군가를 떠올리는 일이며, 그것은 결국 자기 안에서 '다시 삶을 선택하는 목소리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것은 누군가의 기도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응원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스스로, 그것이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인간다운 회복의 길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회복의 과정에서 외부의 도움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고통을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회복은 언제나 외부의 기적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에서 되살아나는 작은 의지에서 시작됩니다.


상징, 불안과 함께 삶 속으로.

영화는 중간중간, 불과 물을 대조하여 보여줍니다.


우주정거장을 폭발시키고, 귀환 과정에서 그녀의 우주선은 불길에 휩싸이고, 지구로 귀환하여서도, 끝없이 그녀를 쫓아다닙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삶에 수반되는 고통, 그리고, 그녀가 두려워하는 그녀의 감정들 일 겁니다.


= 고통의 감정 그 자체

국제 우주 정거장에서, 대기권으로 진입하는 텐궁 우주정거장도, 지구로 진입하는 귀환선 안에서도, 라이언은 '불'과 마주 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의 감정 그 자체였습니다. 살기 위해 머무르는 공간을 파괴하고, 삶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도 우리를 위협합니다. 숨 쉴 수 없게 만들고, 뜨거움으로 모든 것을 불사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소화기를 이용한 장면들은 여러 가지 의미로 읽힙니다.


처음에는 우주 정거장의 불을 끄기 위해서 사용했던 소화기는 무중력 상황에서, 반작용으로 오히려 라이언을 다치게 만듭니다. 불은 끄지도 못하고 다치기만 합니다. 반대로, 우주 정거장으로 향해 소화기를 이용할 때에는 라이언을 목적지에 도착하게 도와줍니다. 불을 끄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려고 할 때 도움이 됩니다. 즉, 고통스러운 감정을 없애려 하는 것은 의미가 없음을, 대신 우리가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연료로, 우리의 노력이 쓰여야 함을 의미합니다.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


당신의 노력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그러기에, 삶의 의지를 되찾은 라이언은 중국 우주정거장 '텐공'으로 이동해 지구 귀환을 시도하는 장면은 특별합니다. 이미 대기권으로 진입하게 되는 텐공 우주선은 강렬한 불꽃으로 뒤덮입니다. 그리고, 라이언은 그 불꽃 속으로 뛰어듭니다. 고통의 감정을 피하거나 없애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함을, 그래야 우리는 살아낼 수 있다고 영화는 말합니다.


Ryan, you're gonna have to learn to let go.

라이언, 보내야 하는 법도 배워야 해


충분히 슬퍼하면서


귀환선이 대기권에 진입할 때 불꽃에 휩싸입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상실의 고통을 정면으로 통과하는 행위임을, 상실은 우리를 소멸시킬 수도 있지만, 동시에 우리를 살아내게 하고 새롭게 태어나게 하기도 합니다. 불은 파괴와 정화를 동시에 상징합니다.


= 새로운 탄생

불타는 귀환선을 통해, 마침내 도착한 지구의 물속에 웅크린 채 떠오르는 라이언의 모습은 태아의 자세를 연상케 합니다. 물은, 새로운 탄생을 상징합니다. 자신을 보호하는 우주복을 벗어던지고, 태아처럼 웅크린 자세로 떠오르는 장면은 재탄생의 은유입니다. 불과 물을 모두 거쳐 다시 살아난 그녀는, 힘겹게 땅에 첫 발을 내딛습니다.


자신의 두 발로 일어섭니다. 그 첫걸음은 휘청거리지만, 바로 그 불안정함 속에 진실한 힘이 있습니다. 상실 이후의 삶은 결코 이전과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틀거리며 걷는 그 걸음이야말로 '삶의 무게를 받아들이는 용기'의 시작입니다.


상실 이후에도 살아내야 함을, 다시 숨을 쉬고자 하는 본능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If you decide to go,
then you gotta just get on with it.
가기로 했으면 계속 가야 돼

You gotta plant both your feet on the ground
and start livin' life.
두 발로 딱 버티고서
살아가는 거야

인생을 -


중력관성, 그리고 소리


중력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공중에 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 우리 숨 쉬게 할 공기가 없음을, 그리고 그것은, 소리를 통해서 증명됩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은 관성을 통해 우리를 파괴합니다. 터전을 파괴하고, 우주의 끝까지 우리를 내팽개치게 하죠.


소리 = 생명
관성 = 죽음

소음의 위로, 삶의 복귀


우주에서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것은 끝없는 침묵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주에서도 삶의 순간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녀를 지켜냈습니다. 그리고, 지구로 돌아온 그녀를 맞이한 것은 개 짖는 소리, 개구리울음 같은 '소음'이었습니다. 상실 이후에는 세상의 모든 소리가 때로는 잔인하게 시끄럽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바로 그 복잡한 소리들이 우리가 다시 삶과 연결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고통을 피해 고립된 세계로 도망쳤던 라이언은 이제 소음을 삶의 환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아름다운 '지구'


아마도, 이러한 우주는 단순히 아름다운 배경이 아니라, 상실의 고통이 만들어낸, 그녀 내면의 '고요한 세계'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영화의 시선은 내면의 우주가 아니라 삶의 지구를 향합니다. 우주의 심층부를 들여다보기 위한 허블망원경을 부수면서, 가장 비극적 순간에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일출, 오로라, 푸른 눈동자와 같은 지구의 모습은 소설 '설국'이 그려낸, 지독한 아름다움의 '삶' 그 자체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맷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합니다.


You should see
the sun on the Ganges.

자네 갠지스 강 위에 걸린 해를
꼭 봐야 되는데.

It's amazing.
정말 아름다워.

인생은 -


그러니, 이 순간을,

You need to sip,
not gulp.
그러니 한 모금씩 마셔,
들이키지 말고

Wine, not beer.
와인처럼, 맥주 말고


인생을 한 모금씩, 와인처럼


고립무중력


우리는 사랑하는 이를 잃으면, 마치 중력이 꺼진 세계로 던져집니다. 붙잡아 줄 힘이 사라진 무중력 속에서 모든 것이 붕 뜨고, 고독은 끝없이 메아리칩니다. 그래서 우울을 "중력이 사라진 경험"이라고도 말하지요. 발 디딜 곳이 없어 흔들리고, 삶의 기반이 무너진 상태, 즉, 라이언이 우주에서 겪는 표류는 바로 상실을 통과하는 우리의 내적 표류와 겹칩니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결국 땅을 딛습니다.


무중력에 길든 몸은 휘청거리지만, 바로 그 비틀거림 속에 "다시 삶을 선택하는 의지"가 드러납니다. 이때의 중력은 단순한 물리 법칙이 아니라, 삶의 무게이자 존재의 근거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구심을 잃은 우리는 한동안 표류하지만, 다시 일어나 한 걸음을 내디딜 때 비로소 안정이 돌아옵니다. 우리를 짓누르는 듯 보이던 무게가 사실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토대였다는 것을, 그녀의 걸음이 알려 줍니다.


그래서 라이언 스톤이 마지막에 체감한 것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살아낼 수 있다"는 감각이었습니다. 상실은 지워지지 않지만, 그 무게를 받아들이며 우리는 다시 걸을 수 있습니다. 비틀거리더라도, 그 발걸음 속에서 새로운 삶은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다시 걸을 수 있습니다.

비틀거리더라도.


Beautiful, don't you think?
어때, 아름답지?

What?
뭐가요?

The sunrise.
일출 말이야

That's what I'm gonna miss the most.
저게 제일 그리울 거야.



어떤 상실도 해가 뜨는 것을 멈추게 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다시, 천천히, 한 모금씩 삶을 마십시다. 와인처럼.


그리고, 전해주세요.


And you tell her that I'm not quitting.
엄마는 포기 않을 거라고 전해줘요.

You tell her that I love her, Matt.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도 전해줘요.

살아 내겠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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