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첫 붓질

좋은 장비가 중요한 이유

by Helen

요즘은 1일 1드로잉은커녕 겨우 1주 1 드로잉 하는 중이다. 젠탱글을 그릴 때만 해도 드로잉북과 펜만 있으면 됐는데, 일상의 물건을 그리는 단계로 진도가 나가자 붓과 물통, 색연필(혹은 물감)이 필요해졌다.


준비물이 몇 가지 늘었을 뿐인데 선뜻 드로잉북을 펼치지 못한다. 잘 그리지도 못하는 처지에 너무 좋은 드로잉북을 쓰는 건 사치인 것 같아 얼마 전 다이소에서 쌈지 막 한 스케치북을 하나 샀는데 그게 의욕을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가 된 듯하다. ‘종이가 거기서 거기지’ 하고 만만하게 봤건만, 초보자인 내가 봐도 종이 질의 차이는 확연했다. 결국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좋을 적당한 핑곗거리를 만들어버린 셈이다.


나처럼 툭하면 하다 마는 작심삼일러에게는 좋은 장비를 갖추는 것도 꽤 중요한 동기부여 요인이다. 집 앞 산책을 나갈 때도 무릎이 튀어나온 츄리닝에 목이 늘어난 티셔츠보다는, 유명 메이커까지는 아니더라도 색이 화사하고 핏이 예쁜 옷을 입으면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진다. 그런 걸 보면, 뭐든지 실제 내 실력보다 대략 두 배쯤 괜찮은 수준의 장비를 갖춰야 기분도 나고, 할 맛도 나고, 지속성도 생긴다.


각설하고—1년 전쯤 Faber-Castell의 물감 겸용 색연필을 당근마켓에서 구입했다. 그동안에는 색연필 용도로만 가끔 끄적거렸을 뿐, 붓과 물을 써서 물감 용도로 써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선 색연필로 칠한 뒤, 물을 묻힌 붓으로 쓱싹쓱싹 하니 정말 물감처럼 색이 번져 나간다.



신기하다! 재미있다! 예쁘다!


그 짧은 감탄의 순간이 지나고, 또다시 드로잉북을 덮은 지 일주일이 흘렀다. 다음은 조금 더 어려운 유리병인데… 어쩌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상과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