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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붓질

쿠션과 군고구마 봉투 사이 그 어딘가...

by Helen
『1일 1 드로잉』의 다음 페이지에는 쿠션 그림이 있었다. 머그잔이나 모히또에 비하면 선도 단순하고 색도 거의 없어서 별 거 아니다 싶어서 바로 도전했는데...



보시다시피 군고구마나 붕어빵을 담을 때 쓰는 종이봉투가 되어 버렸다.


억지로 “쿠션이에요”라고 우길 수는 있겠지만 아무도 살 것 같지 않고, 만약 저런 쿠션이 카페 의자에 놓여 있다면 나라도 그 자리를 피해 다른 자리에 앉고 싶어질 것 같은 꾀죄죄한 쿠션이다.


문제의 시작은 지우개였다. 책에 ‘간단히 스케치 후에 채색하라’는 문장이 있어서 책상 서랍을 뒤져 샤프와 지우개를 겨우 찾아냈다. 그런데 그 지우개 꼴이 말이 아니었다. 한때는 새하얗던 녀석이 어떤 세월을 겪었는지 표면 전체가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그래도 뭐, 지우개면 됐지.” 쉽게 생각하고 샤프로 그린 밑그림을 지우려는 순간— 지우개를 덮고 있던 검댕이가 하얀 종이 위에 번지기 시작했다. 망했다! 결국, 그 지우개는 조용히 쓰레기통으로. 역시 뭐든 깔끔한 놈을 써야 한다.


다음 난관은 질감의 표현이었다. 쿠션의 모서리를 조금만 더 신경 써서 그렸다면 푹신한 느낌이 살았을 텐데, 직선으로 ‘찍찍’ 그어버렸더니 군고구마 봉투가 되어버렸다. 늘 덜렁대는 게 문제다. 다음에는 좀 더 차분하게 그려보자!


마지막 문제는 색연필로 그리는 타이밍과 물을 묻히는 타이밍의 선정이었다. 내가 쓰는 색연필은 색연필 겸용 물감이다. 색연필로 칠한 후 붓에 물을 묻혀서 칠한 부분에 바르면 색이 예쁘게 번진다. 그런데 대충 다 색칠했다고 생각하고 물을 칠해놓고는 “아차, 색을 더 넣어야지” 하고 덧칠하려니 색이 먹히질 않는다. 엉망이다. 그나마 마지막에 응용해서 그린 우리 집 쿠션은 약간 마음에 드니 그걸로 위안을 삼는다.


슬쩍 페이지를 넘겨 본다. 다음 그림은 '철제 의자'다. 덧셈, 뺄셈 겨우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방정식을 배우게 될 것 같은 불길한 기분이 든다. 그래도 쫄지 말자! 전시회에 내놓을 그림 그리는 것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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