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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춘 손을 움직이게 하려면?

by Helen

매거진을 하나 만들어 놓고 앞으로 이런 글을 연재하겠노라 호기롭게 선포글(?)을 게시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 뒤로 이상하게 글이 안 써진다. 내 글을 간절히 기다리는 독자도 없을 텐데 혼자서 책임감 느끼는 이상한 성격이라 생각하며 끙끙대던 중 코칭 연습 상대를 연결시켜 주는 단톡방에서 고객 역할을 찾는 코치님을 발견했다. 마침 원하는 시간도 딱 맞아서 바로 손들고 나섰다. "제가 고객 역할 할게요!"


KPC 시험을 준비 중인 분이라 딱 30분만 하고 끝낼 것을 기대했지만, 왜 그러셨을까? 그 코치님은 무려 1시간 넘게 질문을 이어가셨다. 중간에 화장실 가고 싶어서 죽겠는 걸 꾹 참..... 1시간 동안의 코칭 대화 후 생각이 조금 정리된 느낌이 있었던 걸 보면, 글이 안 써져서 갑갑했던 나에게 진짜 필요했던 것은 대화 상대 그 자체였는지도 모르겠다. 프리랜서는 늘 외롭다.


그 코치님과의 대화 중 기억에 남는 부분을 메모해 본다.


[코치]

"전에는 업무 분야의 전문서적을 쓰셨다고 했는데 왜 지금은 에세이가 쓰고 싶으신 건가요?"


[나]

(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질문이다....)

"지난번에 책을 내 봐서 아는데요, 전문서적은 저자의 인지도가 있거나 훌륭한 경력을 가지고 있어야 출판사에서 반겨하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아무리 현장을 잘 알고 있고 책 속에 업무 노하우를 마구 방출한다 해도 그런 배경이나 권위가 없으면 출간도 어렵고 출간이 되어도 잘 안 팔릴 거예요."


[나]

"에세이는 사실 업무 관련 이야기를 쓰는 것보다 더 어려워요. 업무 관련 내용은 머릿속에 프로세스와 논리가 잡혀 있어서 암묵지를 꺼내 글로 잘 정리만 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에세이는 일상생활 속에서 관찰을 해야 하고 안테나에 잡히는 글감을 순간적으로 기억하거나 기록해야 하고, 그런 다음에 그 소재에 나의 감성을 어떻게 입힐지, 또 독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지 등 생각할 것이 진짜 많아요. 그래서 더 힘든 것 같아요. 나와 같은 업무를 하는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즐거운 일이기는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감성과 위트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에세이를 써야 필력이 좋아질 것 같아요. 저는 글을 잘 쓰고 싶거든요. 지금은 겨우 뜻만 전달하는 글을 쓰지만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기대가 있어요."

(그랬구나... 내가 이래서 에세이가 쓰고 싶었던 거구나~)




오늘 아침, 코칭 중 내가 했던 많은 이야기를 되새김질하면서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을 던져 보았다. 일명 셀프코칭.


[내 안의 코치]

"그런데 너한테 글을 잘 쓴다는 건 어떤 거야?"

(어제의 코치님이 이 질문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내 안의 나]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글을 쓰는 거야"

(옹?? 무슨 말이지? 내가 답해놓고도 어리둥절)


[내 안의 나]

"전생에 죄가 많은 사람이 작가가 된다고 하는 말이 있지. 남들이 보기에는 후딱후딱 써내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사실 알고 보면 다들 어렵게 글을 쓰는 거야. 그걸 알면서도 글 좀 써볼까 생각했을 때 바로 줄줄줄줄 써서 결과물을 내놓는 모습을 상상하곤 해. 글을 그렇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업무 관련 메일을 쓸 때 그랬거든. 매번 수신자도 내용도 달랐지만 수백 번도 더 해온 일이라 그냥 쓱싹쓱싹... 아무리 길어봐야 30분도 안 걸렸지. 지금 쓰고자 하는 글도 그냥 그렇게 쓸 수 있으면 좋겠어. 그렇게 써도 기본 이상의 품질이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다음에는 여러 질문이 올 수 있을 것 같다.


"직장에서 메일을 쓰는 거랑 지금 Brunch에 글을 쓰는 거랑 뭐가 달라?"

"네가 생각하는 품질 좋은 글은 어떤 글이야?"

"지금 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해?

.

.

.


[내 안의 코치 + 내 안의 나]

"그런데 말이야... 이런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얼른 첫 단락, 첫 문장이라도 써봐야 하는 거 아니니? 왜 계속 다른 글만 쓰고 있어?"

(팩폭!)


코치는 가끔 뼈 때리는 말도 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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