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서 만남은 심야 김밥천국에서 깊어진다
멀리서 고마웠던 동료들이 여기서 다시 고맙다 춘천발 상봉행 막차는 마지막에 도착 고마운 마음은 전기신호에서 잠시 깜빡이면서 멀어지고 심야의 가을 역전에서 꿈뻑꿈뻑 택시의 미등은 나란히 나란히 졸고 나는 서걱서걱 도로를 걷는다
가을이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거리가 머릿속에서 듬성이고 사라졌던 풍경이 여기에 펼쳐지고 멀리에 서성이던 너도 나에게 온다.
걷는다 걸어 30분인 내 방을 향한 두 발과 몇 해전 당신들과 함께 했던 시절이 동시상영 감각이 하염없다.
밤 10시면 불을 끄시는 김밥천국이 어째서 밝다.
“김밥 200줄 예약이야, 김밥은 미리 싸놓으면 안돼, 힘들어도 아침 예약은 심야에 말아야 해” 아주머니의 말씀이 신기하게 마음을 때린다
“염치없지만, 라면 하나 김밥 한 줄, 주실 수 있으세요?” 입에 발린 염치가 불구된다
“앉아 앉아, 염치는 무슨 우리집 단골인데” 오래된 테이블과 의자에서 아늑하다
모락모락 안경 두 알에 김이 서리고 매콤한 라면 냄새 매끈한 김밥에 고소한 참기름 향 젓가락에서 두 손을 맞잡고 탱고를 추고.
게가 눈을 감추고 번개에 콩을 볶고 아주머니의 손놀림은 123번째 김밥에서 129번째까지의 김밥을 완성하시는 사이 덩그러니 내 앞에 빈 그릇이 고요하다.
불현듯,
텅빈 라면 그릇에 당신들이 들어서고 우리가 웃고 떠들던 시간이 쌓인다 우리의 추억이 가득찬다 고마움이 퍼져 나간다 내 속에 뜨끈한 무엇은 라면 국물만은 아닐 것이라는 마음 가을에서 만남은 심야 김밥천국에서 깊어진다.
가을이었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