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뜨고 지지부진한 나의 글쓰기
글쓰기에 대한 열망과 짝사랑은 꽤 오래되었다.
언젠가는 글 쓰는 삶을 살고 싶어서 글쓰기 워크숍을 찾아다니다가 어느 소설가의 조언에 용기를 얻어 무작정 등단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 시절 최소한의 생계비를 위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남은 시간은 오직 글쓰기에만 집중하며 보내기도 했으나 신춘문예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깨끗하게 떨어졌었다. 미련을 접고 글을 쓰는 능력이 필요한 일터를 찾아 헤매며 타협해 온 나날이었다.
얼마 전 나는 퇴사를 했고,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동안 읽었던 수많은 글쓰기 비법, 작가들이 글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한 흔적을 녹인 에세이에서 쓰고 싶다는 열망만 키워온 나날이 길었다. 이제는 순간순간 아픈 손가락처럼 떠오르는, 쓰고자 하는 열망을 감추지 않고 적어나가보려 한다.
사실 이런 결심을 하고 글을 쓰면, '정말 무언가 달라질까? 내가 써낸 글들 가운데서 조그마한 연결고리나 편집점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수많은 브런치 글 속의 빛나는 소재와 경험에서 내게 눈곱만큼의 독창성이 남아있을까?' 싶지만 무작정 써보려 한다. 더 이상 어떤 준비도, 마음가짐도, 실패도 두려울만한 게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시작한 순간이 내게 주는 힘이 더 클 거라는 걸 확신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무엇을 쓸 수 있을까?
무언가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은 토요일 오전 시간마다 동시를 쓰게 하셨다. 상단이 철제 스프링으로 된 종합장에 시를 적었고 그와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그것을 완성해 가면 어머니는 기뻐하며 한 글자 한 글자를 집중해서 들여다보셨다. 이를테면, 떨어진 낙엽 위에 개미가 걸어가는 모습을 가을날 편지를 쓰는 것과 같다고 표현한 것을 콕- 짚어서 어떻게 이렇게 생각했냐며 칭찬을 하셨다.
나는 그때마다 무엇이라도 된 것처럼 나의 생각과 마음이 존중받는다는 것에 들뜨고 기뻤다.
지금도 내가 느끼는 '힘'이란 나의 생각이 누군가에게 전달되고, 그것을 이해받는 것이다. 그런 순간이 내게 단단한 마음과 힘을 준다고 여긴다. 나이가 먹으며 글을 쓰는 시간이 줄었지만, 그래도 고통스럽거나 강렬했던 순간을 글로 남기는 것이 나에게 어려움을 해소하는 방식이었음을 알게 됐다.
중 · 고등학교에 걸친 지독한 짝사랑에 힘이 들 때도, 아빠의 외도를 알게 됐을 때도, 죽고 싶은 나날이 지나고 나서 밀린 값을 치르듯 글로 풀어낼 때도 나에게 글 쓰는 나날은 힘이 되어주었다.
나는 다시 이 순간들을 글로 풀어내 도움닫기를 해보려 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짚어준 나의 서툰 글자와 단어, 문장에서 힘을 얻었듯이 이제는 스스로 마음을 꺼내보는 용기를 가져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