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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Jul 22. 2024

기다림의 시간

해야만 하는 일을 마주할 때

30대를 넘기기 전 운전면허증을 따야겠다고 다짐한 지도 여러 해가 흘렀다. 퇴사를 하고 이 시기가 아니면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예감하고서 벼루던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했다. 그 과정이 참 녹록지 않았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눈앞에 펼쳐지는 모습과 행동은 마음과 달랐다. 장내기능 시험 3수, 도로 주행시험 3수 만에 어렵사리 운전면허증을 따게 됐다.


뒷바퀴가 연석에 닿아 실격하거나 가속 구간에서 브레이크를 조절 못해 실격하는 등 3번째 기능 시험 일정을 다시 잡으며 또 시험에 떨어질 두려움에 운전 연수까지 추가로 등록했고, 가까스로 통과했다. 기능 시험에서 이토록 어려웠으니 도로 주행만큼은 한 번에 따고 싶었으나 그 또한 바람일 뿐이었다. 장마로 인해 시험 일정을 미뤄두고, 여유 있게 코스를 외우고 남편의 특훈과 예비 합격자란 인정에도 불구하고 좌회전 시 미숙한 핸들링, 신호 위반 등으로 두 번의 실격을 받았다.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계속 탈락하는 과정에서 수도 없이 자책하고 좌절하는 시간이 흘러갔다.


드디어 3번째 도로주행 시험 날, 그간 두 번째 순서로 시험을 보다가 이번에는 첫 순서였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지'라는 심정으로 임했다. 코스도 자신 있던 코스가 나왔다. 큰 문제없이 학원 코앞까지 무사히 가닿던 차, 차선을 변경하느라 미처 놓친 마지막 신호등에서 감독관분이 나 대신 급 브레이크를 밟으셨다. 겉으로 내색은 못하고 속으로 '망했네. 또 실격인 건가.' 싶었는데 감독관 분은 아무런 말씀 없이 헛기침을 하고는 그대로 진행하게 했다. 83점으로 합격 통보를 받고, 감독관님께 감사 인사를 언제 따로 드리지 싶었는데, 끝나고 면허시험 응시표를 돌려주시며 "마지막에... 알죠?"라고 말씀했다. "네 알죠. 알죠.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드리니, "거의 다 와서 떨어지면 너무 아깝잖아."라고 격려해 주셨다.

집에 돌아와 양치를 하면서도 감독관님이 브레이크를 밟아준 순간이 떠올라 큭큭- 웃음이 났다.


'아... 면허 따기 참 어려웠다.'

한 달하고 일주일의 시간 동안 교육과 시험, 불합격, 연이은 재도전의 나날이었다. 처음 실패에는 다음이라는 용기를 내기 쉬웠어도 두세 번이 반복되니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기가 제일 어려웠다. 운전면허 학원에 가보니 20대 초반의 앳된 친구들이 많이 보였다. 괜스레 나이 때문에 이토록 면허 따기가 어려운가 싶어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운전면허 시험에 도전하며 마치 타임루프 같이 끝나지 않을 듯한 두려움과 버티는 과정을 겪다 보니 인생도 비슷하게 흘러간다 싶었다. 예상치 못한 일들로 좌절하고, 뒤쳐지고, 결국 홀로 버티어야 하는 과정들이 그랬다. 시험 때마다 '운전면허는 개인전이에요. 누구랑 비교할 것도 없고, 떨어지더라도 내가 아직 준비가 안 됐구나라고 겸손히 받아들이시고 다시 도전하세요.'라고 말씀하시던 강사분의 말씀이 기억난다.

- 그래 맞아. 누구랑 비교할 길 없는 개인전이지- 그러나 그 과정은 협조전이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원망스러운 때도 있지만, 때때로 도움의 손길도 있었다. 차가 플라스틱 중앙분리대를 스쳐 지나가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괜찮아-를 연발하던 남편과 위기의 순간 브레이크를 대신 밟아주던 강사분까지. 인생이 이토록 풀리지 않는 순간에도 내게 협조해 주는 존재들이 있구나 싶다.


인생에도 브레이크를 밟고 싶은 순간이 있다.

다시 돌아가면 절대 하지 말아야지 하곤, 비슷한 순간이 찾아왔을 때 미리부터 거리를 두지만 결정적일 때 무서운 꿈처럼 브레이크가 밟아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

나에겐 이별의 순간이 그렇다. 어머니를 먼저 보내고, 홀로 남은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들어가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을 보내고 보니, 이제는 퇴원하여 홀로 병원에 가는 아버지가 다행스럽다가도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같이 여겨진다. 아버지와 이별하는 순간이 예감될 때마다, 언젠가 후회할 순간을 만들지 않기 위해 주저할 때마다, 브레이크를 밟을 시간이 주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요양병원에서 퇴원한 아버지가 외래로 투석을 받으시던 중, 갑자기 찾아온 배탈에 병원을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셨다. 투석환자에게 배탈증세는 위험할 수도 있어서 늦게라도 병원에 오라는 의사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이번만큼은 쉬고 싶다며 고집을 피우셨다. 나는 만약에라도 심각한 상황이 되어 다시 중환자실에 가게 될지라도 오늘 투석을 받지 않겠냐고 물었고, 그럼에도 안 가겠다고 말하는 아버지를 향해 그럼 그러셔라. 나도 전전긍긍하며 고통스럽고 싶지 않다고 소리쳤다. 겁이 나면 큰 소리로 위기를 넘기려는 모습이 똑 닮은 아버지와 내가 서로를 향해 부딪혔다.


나는 씩씩대며 아버지 집에서 나와 돌아오는 동안 죽을 주문 했고, 한참 뒤 아버지는 죽을 맛있게 먹었다고 고맙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문득 아버지도 나를 위해 브레이크를 밟아주던 사람이었텐데 싶어서. 나는 그토록 겁 없이 든든했던 시간을 기억하며 버틴다. 종종 다리에 힘이 풀리는 아버지가 걷는 길마다 돌부리가 없었으면,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낡은 의자라도 놓여있길 바라며 기도하면서.


기다림의 시간은 고달프다. 그러나 불확실함 속에서 견디는 능력을 쌓다 보면 발견하는 선물이 있다. 당연한 것도, 원래 내 것도 아닌 누군가로부터 온 도움의 손길. 나에겐 위기의 순간, 감독관이 대신 밟아준 브레이크가 그랬다. 홀로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에도 여지없이 떠오를 것이다. 오늘 주어진 기다림도 그러한 것을 떠올리며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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