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써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언젠가 왜 비슷한 주제의 글에만 맴돌고 있는지 고민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이 주제를 넘기면 다른 주제는 언제쯤 찾아올까 싶어서 애가 타곤 했다. 그러던 중 책에서 발견한 이야기이다. 시인 어너 무어는 아버지의 회고록을 출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우리가 자신의 이야기를 선택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우리를 선택하는 거죠.
그 이야기들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째서인지 약해지고 맙니다."
나는 내가 쓰는 주제를 두려워했고, 언제나 그것의 진실이나 솔직함이 어디까지여야 하나 고민했다. 그런 주제를 풀어내면 내 속에 깊이 감춰져 있는 우울감이나 낮은 자존감, 설명할 수 없는 불만 같은 것들이 아주 지루할 정도로 느린 화면처럼 펼쳐지는 것 같았다.
상담을 받으며 '굴러들어 온 돌'이라는 말로 정체성을 표현한 적이 있다. 어린 시절 울음이 그치지 않던 아이를 낯선 곳에 내려두고 떠났던 일화를 웃으며 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나는 깨달을수록 같이 웃지 못했다. 그 때문인지 나의 표현이나 욕구가 무시될 때마다 여전히 어린 시절의 힘없는 어린아이가 되어 짜증과 불만을 가득 품곤 한다. 아마도 '굴러들어 온 돌'이란 말도 나의 억울함이나 불만을 그렇게나마 토해내고 싶어서 만든 단어였을 거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어딘가에 토로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내어 놓은 글이 누군가에게 공감할만한 이야기가 되거나, 나의 마음을 이해해 준다고 느꼈을 때 큰 위안이 되니까. 입시를 준비하면서 이승우의 [생애 이면]이라는 책을 읽었다. 책에서 주인공은 기구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는데, 그것이 소설가의 자전적인 글이었음을 알게 됐을 때 나는 머리를 맞은 것처럼 충격을 먹었다. '작가는 나보다 더한 고통을 겪었고, 그러한 고통을 감추지 않고 이렇게 글로 써낼 수도 있구나.'라는 점에서 뜻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그 후로 나는 글쓰기에서 나의 고통이 좋은 재료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렇게 여기면 조금은 위안이 됐다. 삶에서 슬픈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이건 언젠가 글로 쓰기 위함일 거야'라며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적고 난 뒤, 고르고 고른 단어와 문장, 글로 남겨진 고통을 보면 발가벗은 느낌이 들어 지우기도 여러 번이었다. 글쓰기에 좋은 재료라고 애써 위안했지만, 그 고통이 내 것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무엇이 되었건 자신의 주제를 두려워하는 작가는 실체 없는 것에 사로잡혀 얼어붙은, 약해진 피조물이다."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중에서 대니 샤피로 지음
무언가에 대해 계속해서 쓰게 되는 것은 비단 나뿐 아니라 수많은 작가들의 경험이었다.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의 이야기가 주요 주제이다. 글에서 누군가의 삶의 일부분을 등장시키는 것은 결국 내가 선택하고 편집한 것이기에 해당 인물의 허락을 구해야 하는 건 아닐지 고민스러울 때가 있다.
언젠가는 시나리오를 아버지에게 보여드린 적이 있었다. 당시 대학에서 선망하던 영화감독의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그 수업에서 합평을 받는 과제물이었다. 시나리오 속 인물에는 두식이라는 아버지와 닮은 인물이 나오고 홀로 키우고 있는 아들이 나온다. 당시에 인력사무소에 나가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반영된 인물이었다. 언제나 가족을 뒤로한 채 한량처럼 바깥 생활을 하던 아버지를 찾아 나선 아들이 어느 날 인력 사무소에서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서로가 부자지간인지도 모른 채, 그날 번 일당으로 포장마차에서 술을 거나하게 마시는데 그때 아들이 아버지를 향한 분노를 토해내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는 그 지문을 읽고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인력 사무소가 등장하는 장면이 꽤 그럴듯하다고 얘기하셨다.
당시에 나는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에게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무슨 마음으로 그 글을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나의 마음을 대변하고 싶어서였을까. 아버지에게 솔직해지고 싶어서였을까.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재닛 맬컴(Janet Malcolm)은 "이 분야의 일이란 절도범, 무장강도 노릇이고, 당신의 어머니에게 기쁨을 주지 않는다."라고 했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내가 글쓰기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할 때도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지’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의 글쓰기를 지지해주셨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아버지는 내 인생을 주제로 글을 쓸 때마다 결코 빼낼 수 없는 조연일 것이다. 그만큼 내 삶에 중요한 사람이므로 이토록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상담 선생님은 스스로를 '굴러들어 온 돌'처럼 느낀다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돌은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누빌 수 있다며 나 역시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말씀했다. 이곳저곳을 굴러다닐 수 있는 것이 타인으로 하여금 내쳐지는 것이 아닌 주체적으로 움직이고 유영하는 돌로 본다는 관점이 내게 위안이 되었다.
우습게도 '굴러들어 온 돌'이란 단어를 꺼내고 난 며칠 후, 친척으로부터 장식용 돌을 선물 받았다. 상담에서 선물 받은 돌 얘기를 꺼냈을 때, 선생님과 나는 서로를 마주 보고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다. 그것만으로도 속이 좀 시원해졌다. 더 이상 내게 '돌'이 서글프게 와닿지 않아서일 거다. 지금도 그 돌은 내 방구석에 놓여있다.(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때로는 삶의 주요한 인물들과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거나, 함께해도 진실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글 속에서만큼은 자유롭게 유영한다. 그들을 다시 만나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고, 묻고 싶었던 질문들을 꺼내기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