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어주는 시간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주인공 히라야마가 매일같이 찾는 장소는 커다란 나무가 있는 공원이다. 나무 앞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와 우유로 소박한 점심을 먹으며 *코모레비(こもれび: 나뭇잎 사이에 비치는 햇살)를 사진으로 남기곤 한다. 무표정하고 대사조차 거의 없는 히라야마는 코모레비를 만날 때면 미소를 머금는다.
20대 후반, 직장 생활을 하며 점심시간마다 도망치듯 산책을 나갔다. 샌드위치나 주먹밥 같이 속을 달랠만한 간단한 음식을 싸들고 홀로 쉴만한 장소를 찾아 헤맸다. 교회 앞의 작은 야외 공간, 아파트 사이에 있는 공원, 빌라촌 중심부에 숨겨진 작은 정자와 같은 곳들이었다. 그곳에 앉아 잠시 고개를 숙이고 깊은 한숨을 내쉬면 발아래로 여지없이 수많은 나뭇잎 그림자가 춤을 추듯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침묵한채 홀로 있는 시간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겨 혼자 하는 여행을 시작했다. 남해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배차간격이 20분이 넘는 버스를 기다리며, 큰 바위에 걸터앉아 낯선 자연과 풍경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혼자 하는 여행에서는 누군가를 상대하는 에너지를 멈추고, 다시 스스로를 바라보고 맞출 수 있었다. 내가 먹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 언제든지 원할 때 쉼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점심시간마다 도망치듯 밖에 나와 걷던 시간이 나에겐 잠시나마 본연의 나를 되찾는 시간이었다.
작가들 가운데는 자연을 사랑하고 영감을 얻으며 글을 쓰는 이들도 있다. 그중 내가 좋아하는 시인인 메리올리버는 [긴 호흡]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연계 그리고 글의 세계인 문학. 이 둘은 내가 고난의 장소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문이 되었다. 첫 번째 축복인 자연계에서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자연은 아름다움과 흥미로움, 신비로 가득했고 행운과 불운은 있었지만 남용은 없었다. (중략) 바깥의 들판이나 책 속 깊은 곳에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신비가 최악의 아픔을 겪은 마음에 고귀함을 되찾아줄 수 있음을 깨달았다."
기독교에서는 신앙이 회복될 때 자연의 아름다움도 세심하게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자연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곧 그것을 창조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과 같다고 보는 것이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나 풀벌레 소리, 숲 속에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이 곁에 다가왔을 때, 알지 못할 풀향이나 젖은 흙냄새가 풍겨왔을 때 나는 줄곧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작년 1월, 필리핀 보홀 여행에서 생에 첫 스쿠버 다이빙을 하게 되었다. 장비를 착용하고 주의해야 할 점과 수신호를 익힌 뒤 바다에 입수했다. 장비를 통해 호흡을 시작했지만, 막상 바닷속에 들어가니 가슴이 답답하고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는 곧장 가이드에게 엄지 손가락을 추켜올리고 다시 수면 위로 올라가고 싶다는 표시를 했다. 수면 위로 떠서 하늘을 바라봤다. 내 주위에 있던 두 명의 필리핀 가이드는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소리쳤다. 내가 왜 수면 위로 올라온 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바닷가 위의 커다란 바위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던 대장은 가이드들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나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뒤로도 여러 번 호흡을 가다듬고 마침내 들어가겠다는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 뒤로 나는 아무 문제 없이 가이드의 손에 이끌려 바닷속으로 점점 깊이 들어갔다. 바닷속에는 수많은 물고기와 산호 그리고 무수한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조각된 해상 절벽이 보였다. 처음보는 아름다운 광경에 황홀함을 느꼈다.
나는 새로운 세계 속으로 내려가기 전의 두려움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잠시 물 밖에서 호흡을 가다듬는 동안 기다려준 대장의 눈빛 역시도.
글을 쓰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낀다.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분명 내 속에서 꺼내는 것이기에 어색할 것이 없는 것이지만 꺼내고 보면 한없이 낯설고 두렵기까지 하다.(시작하지 못한 빈 화면이나 빈 종이보다는 아니겠지만)
무언가를 쓸만한 이야기를 찾는 과정은 새로운 세계로 내려가듯 막막하고 두렵지만, 이야기하고자 했던 세계에 뒷받침이 될 나만의 호흡을 발견하게 될 때는 무척이나 황홀하고 자유롭다. 호흡을 찾는 것은 홀로 떠난 여행이나 믿고 기다려주던 눈빛을 만나는 것,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시 깨닫는 것만큼이나 스스로를 되찾는 자양분이 된다.
글을 쓰며 나 외엔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오랜 어둠이 지나고 나면 비로소 빛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쓰여진 글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나뭇잎 사이에 비추는 햇살이거나 기다려주는 눈빛이 되어주길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