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서고 싶은 마음
베란다 창문으로 무더운 날씨에 한껏 풀이 죽은 채 축 쳐진 잎사귀가 보인다. 우리 집에서 물이 필요할 때마다 보채듯 힘껏 잎사귀를 내리는 식물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구아바 나무와 스파티 필름. 그 모습을 볼 때면 나는 늘 아차-싶어서 물을 한껏 충분히 준다. 화분 아래로 물이 흐를 때까지. 많이 먹고 다시 힘을 내라고. 물을 머금은 식물은 기특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고개를 들고 잔잔한 바람에 인사하듯 잎을 흔든다.
한동안 나는 내가 힘든 기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직장과 결혼 생활을 통해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시간 동안 나의 모습을 신경 쓰게 되면서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있는 힘껏 축 쳐져 있는 내 모습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나에 대해서 알아간다는 것은 성숙해지는 모습인 것 같지만, 어떤 면으로는 스스로의 찌질한 구석을 자세히 뜯어보는 일이다. 나의 부족함, 약함에 집중하다 보면 왜 이토록 나약한 걸까 싶어 진다. 하지만 이렇게 구석구석을 훑어보고 나서야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도와줄만한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구체적으로 요구하기도 하고, 하루종일 축 쳐져 있지 않고도 스스로를 격려하거나 다스리는 방법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남편과 처음 사귀게 되었을 때 나는 혈액암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었다. 1년 가까이 항암을 받는 동안 수차례 병원을 드나들었지만 누군가가 병원에 함께 와주길, 기다려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랬던 내게 남편은 병원에서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치료를 받는 동안 얼마나 마음이 채워질 수 있는지 알게 해 주었다. 오랫동안 아파서 무뎌진 구석은 치료를 받고 나서야 치료가 필요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을 받고 나서야 내가 사랑이 고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듯이.
상담을 받고 다시 글을 쓰게 되면서 두 가지 모두 나의 생각과 마음을 들여다보고 들어주는 과정이란 점에서 비슷하다고 느꼈다. 나의 생각과 마음을 끄집어내 글을 쓰고, 다 쓴 글에서 내게 필요한 것을 발견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때론 그렇게 끄집어내는 것 자체가 필요했다는 것도. 더 나아가 누군가에게도 나와 같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됐다.
축 쳐진 잎사귀를 보고 급히 물을 줄 때면 다시 잎사귀가 올라오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에 휩싸일 때가 있다. 삶에서 불안정할 때면 떠올리는 두려움과 비슷하다.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 이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러가고 영영 돌이켜지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시간을 견디고 나면 괴로움이나 헛헛함이 사라지고 다시 배가 고프고, 힘껏 걷고 싶어질 때가 온다. 그 시간을 기다리는 방법 중에 하나 알게 된 점이 있다면 회복하기 위해서는 오래도록 덮고 있던 구석을 꺼내어 봐야 한다는 점이다. 부끄럽고 어색할지라도 그 마음을 알아차렸을 때 비로소 필요한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을 함께 견디어 줄 사람에게도 솔직해질 수 있다.
추신. 오늘도 나의 글을 가장 먼저 읽어주는 당신에게 감사를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