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로 되새기는 것들
나는 사랑에 관해 불안해하고 확신이 없으며 어려워한다. 조금이라도 일방적이 되거나 아쉬움이 느껴지면 금세 아까워하고 마음이 작아질 때가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많은 양보와 불안, 기적이 존재하는지 몰랐을 적에도 남는 것은 미움보다는 사랑이었다.
한동안 아버지를 두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아버지가 자신보다 나를 먼저 위해준 적이 있었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의 몸이 약해질수록 일방적인 이해와 요구에 지쳐갔다.
한 때는 엄마에 대한 아쉬운 사랑을 대신해서 아버지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이 상실의 불안을 잠재우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힘이 빠질 때마다 엄마의 사랑에 기대고 있었다. 그 사랑은 내가 아무런 이유 없이 받은 사랑이었으니까. 그 사랑이 아직 내 마음에 채워져 있으니 받지 못해도 사랑을 전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라 여겼다.
어제는 오랜만에 엄마가 계신 추모관에 다녀왔다. 사진 속 엄마의 얼굴을 아주 오랜만에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느덧 엄마를 떠나보낸 스무 살의 내가 이제는 남편과 함께 엄마 앞에 서 있었다. 그간 여자로서, 어른으로서, 하나둘씩 해결해나갈 적마다 엄마에게 격려받고 싶던 순간이 있었다. 엄마가 나 때문에 하지 못했다는 운전면허를 따던 순간에도, 엄마와는 달리 홀로 할 수 있는 경험이 늘어날수록 스스로가 자랑스럽기도, 그렇게 하지 못한 엄마가 안타깝기도 했다. 어제도 비슷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의 사진 앞에서 살갑게 말을 걸었다.
"어머님. ㅇㅇ가 이제 면허를 따서 운전해요. 대학원에도 갔어요.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고 있어요.
제가 어머님한테 ㅇㅇ에 대해 이를 것이 아주 많아요. 나중에 만나면 맛있는 밥 해주세요."
나는 옆에 서 있는 남편을 바라보며 엄마가 아버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마지막에 떠나는 그 순간까지 그토록 외로웠을까? 어린 시절에 보았던, 엄마가 그토록 서글프게 눈물짓는 밤은 없지 않았을까 싶었다.
나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고 여기며 속으로 읊조렸다.
"엄마 덕분이야."
내 안에 누군가를 사랑할 힘이 남아있는 것은 내가 받은 사랑 때문이고, 그 사랑으로 인해 약해지는 순간에도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이라고.
최근 대학원 수업에서 들은 바로는 아이가 정서 조절 능력을 키우는 가장 큰 핵심은 양육자의 ‘공감’이라고 했다. 보통 아이가 태어나서 2~3년 동안 부모로 인해 활성화되는 것이 정서 조절 능력이라고 한다. 그 능력은 부모의 공감에 달려있다. 만약 이 부분에 어려움을 겪게 되어 정서가 극에 가 있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심하게 떼를 쓰거나,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것과 같이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래서 정서 조절이 필요한 아이들을 치료할 때는 다시 시간을 들여 찬찬히 아이에게 공감으로 다가가며 아이가 정서 조절을 할 수 있는 힘을 키우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것만으로도 견딜 힘을 키울 수 있다. 나는 그것이 곧 살아갈 힘과 마찬가지라고 본다. 공감은 사랑이 우선돼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세상에서 나를 유일하게 이해해 준다고 느꼈던 존재가 사라지고, 나는 한동안 세상을 잃고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내가 다시 세상에 정착한 순간은 나를 위한 사랑을 기억하고 다시 발견하기 시작하던 때부터다. 하지만 언제나 쉽게 나약해져서 사랑이 필요한 순간마다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만은 없었다. 사랑할 힘을 소진하고 억울함이 몰려오는 순간마다 내게 필요한 이해를 구하기 위해, 다시 글쓰기로 되돌아간다. 근래에는 모닝 페이지와 브런치에 올리는 글을 통해 나의 생각을 글로 옮겨적고 있다. 그 행위와 과정에서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알아간다. 그 시간 동안 내 근간을 이루는 사랑의 경험 또한 글을 통해 떠올리고 기억할 수 있었다. 달뜨고 지지부진한 글을 쓰는 것이 어감처럼 느리고 답답하지만은 않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 시간은 때때로 원망도, 꽉 막히도록 작아진 마음도 풀어준다.
앞으로도 글을 쓰고 있을 나를 위해, 그리고 그런 시간을 걷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밤이다.
다툼은 아무 힘이 없고
사랑만 남을 것을 알면서도,
아직도 못난 마음으로
외로운 밤을 지새우고 있는 나.
비가 내리고 꽃잎 떨어지면
사랑은 다시 내게로.
- 박지윤 '꽃잎' 가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