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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왕국은 없다

거의 모든 여왕개미는 왕국을 이루지 못한다

by 가가책방

지난 5월 20일에 여왕개미 한 마리가 내 목을 물었다. 따끔하고 슬슬 간지럽던 여왕개미의 존재감은 허술하게 만들어 둔 담쟁이덩굴 화분을 파고 들어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이날 어느 정도의 기대와 호기심을 담아 '여왕개미 한 마리에서 시작하는 개미 왕국 관찰일기'라는 글을 시작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 이 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여왕개미가 알을 낳으면 부화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찾아보려다 그만두기를 여러 차례. 언제부턴가 들여다보는 게 뜸해져서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7월 말이 되면서 '이제 그만 인정할 때가 된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느낌으로도 왕국이 성장하기 시작했다면 한 달이면 일개미가 깨어나서 돌아다녀도 열 마리는 넘게 돌아다녀야 할 것 같았다. 화분 어디에도 작은 구멍은 뚫리지 않았다. 여전히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무더위 탓일까 생각해 봐도 더위 때문이라면 아마 여왕개미가 죽을 이유로 적당해 보였다.

8월이 되었다. 오래 미루어둔 5월 20일의 여왕개미에게 사망선고를 내린다. 그날 여왕개미는 왕국을 시작하려 했다기보다 자기 무덤을 파고 들어간 셈이 아닐까 하는 인간적 사고를 기준으로.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려면 몇 억대 일에 달하는 확률을 이겨내야 한다는데, 개미 왕국의 성장 여부도 비슷하지 않을까. 매년 5월 결혼비행에 나서는 여왕개미와 수개미들이 모두 자기 왕국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지구는 이미 개미가 지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화분에서 시작됐을지 모를 개미왕국에게 사망선고를 내리면서 화분에 물을 더 자주 줄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 혹시라도 식물을 위해 쏟아주는 물이 개미왕국을 멸망시키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제법 컸다. 오늘 보니 제법 잎을 틔웠던 담쟁이가 모두 말라 붙어있다. 개미왕국도 없고, 담쟁이의 삶도 없는 기이한 화분에 어디서 왔는지 팥이 하나 자라고 있고 올해도 나팔꽃이 적응력과 생명력을 자랑하며 웃자라있다.


이렇게 개미 왕국 관찰기는 끝이 났다.

세상에 다만 존재하는 것조차 이렇게 간단하지 않다. 혼자 아무리 애쓰고 시도해도 안 되는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참 나이 들었음에도 여전히 배우기 힘들고 인정하기 싫은 실패를 받아들인다. 다음엔 뭘 관찰해 볼까. 세상에서 눈 돌리지 않는 연습은 효과가 있다. 기대하고 실망하게 하며 성공하고 실패하면서 삶 속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여왕개미가 성공했어도 괴로웠을 것이다. 매번 물을 줄 때마다 시련을 안기는 신처럼 굴었을지도 몰랐다. 물을 아껴 주면서 구원자처럼 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실패다.


찾아보자. 분명 의미는 있다.

KakaoTalk_20250801_190542288.jpg 무더위에 타는 화분들_물이나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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