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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성찰집

글쓰기와 마음

자주 쓸 때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by 가가책방

글을 쓰는 날이 이어지면 마음이 너그러워졌다.

며칠씩 잠을 못 자거나, 끼니때를 놓쳐 허기질 때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처럼 글을 쓰지 않으면 마음이 날카로워지는 것이다. 크게 의미 있는 글이 아니어도, 다만 그날을 돌아보는 간단한 일기나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던 순간으로 돌아가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나아졌다. 혼자 쓰고 혼자 보는 글조차 온기가 오래 남았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므로, 어떤 이익을 위해 골몰하는 일이 아니므로 세상에 무해하면서 내게는 몹시 이로웠다. 내게 글쓰기가 그렇다. 먹은 만큼 내보내는 우리 몸의 일처럼, 보고 듣고 생각한 만큼 적어야 균형이 맞는 것이다.

사람마다 자신의 균형을 잡아가는 방법이 다르더라.

누구는 달리고, 누구는 힘을 쓰고 근육을 기른다. 누구는 겨루고 누구는 두드린다. 낯설기만 하던 악기에 푹 빠지기도 하고, 처음 듣는 노래를 수십 번씩 반복해서 듣기도 한다. 어떤 이는 새로 나온 영화나 시리즈를 즐기고 다른 이는 철 지난 예능프로그램을 정주행 한다. 같을 수 없고 같아야 할 이유도 없는 우리의 다름이 이렇게 드러난다.

얼마만일까, 식당에서 공깃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어제와 같은 메뉴를 주문하기 멋쩍어 김치찌개를 주문했는데 뚝배기가 2인분 사이즈다. 전에는 절제한다고 밥 한 공기와 먹었는데 이번에는 유난히 반찬이 많이 남아서 한 공기를 더 먹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밥 두 공기를 먹는 게 무슨 대수인가.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조차 참고 또 참았다. 탄수화물을 너무 많이 먹으면 안 좋아서라거나 살이 찔까 걱정해서 같은 자잘한 이유를 무수히 늘어놓을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배우들이 나오는 방송을 보며 천천히 먹었다. 팔팔 끓어서 큰 뚝배기 밖으로 붉은 국물을 튀어대던 김치찌개가 미지근하게 식도록 천천히.

그러다 문득 여기서 밥 두 공기를 먹고 앉아있는 나는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끼에 열 가지 요리를 먹을 수 없어서 하나를 고르는 것처럼 한 번에 두 곳에서 살 수 없으므로 한 곳을 선택해 머무는 것이다. 보거나 보지 않는 것도 그렇다. 넷플릭스나 예능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다. 다른 걸 더 재밌다고 느낄 뿐이다. 무엇을 하느냐, 무엇을 먹느냐, 무엇을 보느냐, 어디에 사느냐가 다 더 좋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대결구도에 서 있지 않다. 다만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리 하는 것이다.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게 되는 거다.'


이렇듯,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좋게 보려고 하는 게 아닌데도 내 마음과 기분에 좋은 걸 떠올리게 된다. 비판하려고, 불평하려고 쓰려던 글은 가라앉고 우연이 분명한 기쁨을 기록하게 된다.

흔히 화는 불로 비유한다. 화가 난다는 건 뭔가가 불탄다는 의미다. 화는 감정인데 우리 밖에 있는 뭔가가 불탈 리 없으므로 우리 안에 있는 뭔가가 타는 거다. 불은 빛만 내놓는가, 열도 낸다. 뜨겁다. 안에서 뜨거운 게 타는데 다칠까 다치지 않을까. 매일 뭔가를 집어 들고 만지는 손도 불에 닿으면 데어서 상처를 입는데 연하디 연한 마음, 우리 안의 무언가가 크게 다칠 거라는 건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다. 화가 얼마나 지속되는가, 어디를 향하는가 잘 살펴봐야만 한다. 나와 가족과 친구와 선량한 이웃을 다치게 하는 화는 돌아와서 나를 다치게 할 테니까.

글쓰기와 화가 무슨 상관일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글은 화를 불쏘시개로 쓴다. 혹은 화는 재료를 만드는 과정으로 마치 먹의 재료가 되는 재를 얻기 위해 필요할 뿐이다. 엄격하게 관리되거나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원하지 않는 마음과 주변을 불사르지 않게 한다. 불길이 너무 커지기 전에 불쏘시개를 빼내는 일이 되기도 한다. 연필을 만드는 데는 나무도 흑연도 필요하기에 화를 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 뭔가를 쓰는 재료로 필요한 것이다.


아, 너무 갔나.

너무 너그러워진 모양이다. 뭔가 억지스럽다.

억지스레 좋은 생각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너그러워졌다고 생각해 버리자.

자, 글쓰기가 이렇게 유용하다.

쓸수록 너그러워졌다.

KakaoTalk_20250820_132718806_01.jpg 공주 원도심 대통길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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