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후 얼마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새로 맡은 팀은 얼핏 보기엔 평온해 보였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팀원 간 갈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A파트와 B파트의 미묘한 경쟁 구도, 파트 내에서도 세대 간 나뉜 소통 단절, 서로를 향한 무관심과 미묘한 신경전.
겉으론 하나의 팀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조각조각 흩어져 있는 팀이었다.
이런 경우 대부분 팀장의 리더십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의 중 팀원 A와 B의 갈등 상황이 발생했다. A는 다소 공격적인 말투로 B의 의견을 비난했고, B는 즉각 맞받아쳤다. 둘 사이의 긴장감은 회의실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고, 팀장인 나는 분위기를 풀기 위해 무심코 이렇게 말을 건넸다.
"둘 다 각자 입장이 있는 거니까요. 감정적으로 말씀하지 마시고, 그만하시죠."
표면적으로는 상황이 진정된 듯 보였지만, 회의가 끝난 뒤에도 두 사람 사이엔 불편한 기류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불편함은 고스란히 팀 전체의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일로 기분이 상했다.
'팀장이 있는 자리에서 언성을 높이는 건 날 무시는 거 아닌가?'
팀의 기준은 거창한 규칙이 아니라 팀이 지키기로 약속하는 작지만 분명 원칙들이다. 이 기준들이 쌓여야 팀원들도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를 스스로 인지하게 된다.
1. 소통 기준
"우리 팀은 의견을 말할 때 반드시 이유와 대안을 함께 말합니다."
"상대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은 후 의견을 냅니다."
"비난이 아닌, 제안의 언어로 소통합니다."
2. 의사결정 기준
"모든 의견을 모은 뒤, 결정은 팀장이 책임지고 내립니다."
"소수 의견도 기록하되, 결정 이후엔 모두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3. 회의 태도 기준
"회의 중 감정적 언행, 인신공격은 금지합니다."
"반대 의견은 가능하지만, 감정 섞인 언성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참석자 모두가 발언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4. 피드백 기준
"평가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과 '결과' 대해 피드백합니다."
"공개 피드백은 긍정 중심, 개선점은 개별 피드백을 원칙으로 합니다."
이런 기준은 갈등이 생기기 전에 선을 그어주는 예방 장치이며, 문제가 터졌을 때 구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된다.
팀장이 갈등 상황에서 해야 할 말은 "좋게 넘어가자" 거나 "두 사람의 입장 모두 이해해"도 아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기준이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누가 그 기준을 어겼는지, 어떻게 다시 구조화할 수 있을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회의 중 언성이 높아지는 건 우리 팀 기준에 어긋납니다. 다양한 의견 제시는 환영하지만 표현 방식은 모두 지켜주세요."
이런 말은 감정의 개입 없이 객관적으로 문제를 지적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팀장의 리더십도 회복시킨다.
갈등 앞에서 팀장은 감정에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기준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기준이 나를 지켜주고, 팀을 다시 하나로 묶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