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 일하는 친구 다라를 만나고 오다
얼마 전 신문을 읽다가 친구가 쓴 기사를 발견했다. 전공의 파업으로 병원 응급실 뺑뺑이를 돌아야 했던 환자와 가족 이야기였다. 심각한 병이 아니었는데도 환자는 병원 10곳에서 진료를 거부당해 사망하고 말았다. 처음엔 친구가 쓴 줄 몰랐다가 기사 바이라인에서 낯익은 다라의 이름을 발견했다. 취재원을 일일이 찾아가 정성스럽게 인터뷰했을 것 같았다.
'응급실 뺑뺑이'로 사망 아버지, 집·자동차도 경매로 넘어갔다 | 한국일보
10여 년 전 우리는 같은 캠퍼스에서 취업 준비생 시기를 보냈다. 함께 기자 시험도 보러 다녔다. 나는 잡지사 에디터로 사회 첫발을 내디뎠다. 다라는 경제지 기자가 됐고 몇 년 뒤엔 종합 일간지로 옮겼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선 다라가 기자상을 받았다는 소식도 봤다. 축하하면서 기사도 잘 봤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연락하니 친구가 반갑게 맞아줬다. 광화문의 한 경양식 식당에서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함박스테이크를, 나는 크림커리라이스를 주문했다. 친구는 내가 봤던 기사에 관해 이야기했다.
“읽는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느끼도록 일상성을 주려고 했어. 취재원에게 사건 당일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지. 아주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와 사진들을 모으는 거야.”
내 생각에 좋은 기사는 작든 크든 변화를 끌어내는 기사다. 아니면 마음 아픈 사람의 고통을 위로해 주는 기사다. 친구는 기자로 일하면서 좋은 기사들을 썼다. 연차가 이만큼 쌓였으니 자랑해도 괜찮을 텐데, 예전처럼 여전히 친구는 겸손하게 말했다.
“내가 뭘 쓰고 있는지 모르겠어.
내가 쓴 기사가 이대로 나가도 될까?”
일하면서 친구도 나와 비슷한 불안을 느꼈던 걸까? 일하는 동안엔 나도 자주 비슷한 생각을 했다. 이대로 나가도 괜찮을까? 읽을 가치가 있을까? 아니면 재미라도 있을까? 볼 가치가 있는 영상일까? 몇 달 전, 고객사와 소통하며 콘텐츠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잘되고 있는 건가?’ 하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속 시원한 피드백을 받기도 어렵다. 우선 마감이나 해치우자는 심정이 된다.
요즘 드는 생각은 이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자. 내 능력을 뛰어넘어 재밌거나 완벽하게 만들려는 욕심은 내려놓자. 그 욕심이 오히려 일의 진척과 성취를 가로막는다.
“옛날에는 내가 나를 과대평가했던 것 같아. 일로 만나는 사람들, 취재원들과의 관계도 정말 잘 맺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많이 애썼던 것 같아.”
‘과대평가’라는 다라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 나도 일을 잘하고 싶어서 얼마나 무리했던가! 밤을 새워도 일의 결과물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일도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잘하려고 노력할수록 엇나가는 것만 같았다. 부족하고 서투른 나 자신을 인정할 수 없는 불안한 상태, 이게 과대평가이자 자만이었다. 지금은 나도 달라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게 된다. 내가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끔 살리고, 못하는 것은 남에게 맡기거나 도움을 구하겠다고 마음먹는다.
힘들어도 기자 일을 계속하게 되는 원동력은 뭘까? 친구가 덧붙였다.
“기사 쓰고 나서 가장 신날 때는 내 기사가
이 사람의 인생에 물길을 만들었다고 느낄 때야.”
함께 공부했던 친구의 기사를 신문에서 보면 반가우면서도 자극이 된다. 앞으로 우리 이렇게 10년 더, 20년 더 꾸준히 하다 보면 계속 진화하겠지? 친구와 더불어 나도 나날이 훈련하며 매일 새로워지고 싶다.
다라가 추천하는 다라의 기사
"당신 탓이 아냐" 아내의 말에 남편은 10년 만에 울음을 터뜨렸다
다라가 가장 시간을 많이 들인 기사다. 취재 당시 인터뷰 대상을 섭외하기 위해, 제주부터 시작하는 416km 도보행진에 참여하며 사람들과 함께 걸었고 설득했다. 그러나 다라는 인터뷰 때문에 인터뷰 대상자가 상처받지 않길 바랐다. 심리 상담 기법 도입을 고민했고, 회사에 “이 취재 안 하는 게 낫겠다.”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다라에겐 당시엔 겁도 나고 쓰기 싫었던 기사였지만, 지금은 종종 다시 읽으면서 눈물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