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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하라는 신호

그날 드뷔시가 말해준 것

by 노르키

수유하며 들으려고 라디오를 틀었다. 마침 드뷔시의 아라베스크 1번이 흘렀다. 며칠 전에도 연습했던 곡이다. 연주는 이스라엘계 미국인 메나헴 프레슬러. 처음 그의 연주를 들었다. '이 사람은 여기에서 힘을 빼는구나.'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치는구나.' 마치 내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하필 지금 이 순간 이 음악이 나온 것처럼, 나는 선물을 받은 기분을 느꼈다.


이 곡을 선물이라 느낀 이유는 요즘 내가 이 곡을 연습하고 있어서다. 아라베스크는 유명한 곡이니 언제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도 나는 라디오에서 틀어준 노래를 마치 계시처럼 느꼈다. 수능날 아침 라디오에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나왔을 때도, 최종면접을 마친 뒤에 엄마 꿈에 할머니가 나와 “우리 손녀는 된다!”라고 했을 때도, 내가 존경하는 사람의 큰 축복을 받는 태몽을 꿨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어서 우연히 들은 음악과 꾼 꿈을 좋은 징조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지금 뭔가를 하고 있다면, 내가 지금 하는 일을 귀하다고 느낀다면... 내게 계속하라고 권유하는 좋은 징조는 여기저기에서 불쑥 나타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는 늘 무언가를 하고 있다. 설거지, 청소, 수유, 요리, 직장 생활, 독서, 영화 보기, 등산, 기분 좋게 숨 쉬기, 산 아래에 내려와 도토리묵 먹기. 자신이 하는 일을 하찮게 여겨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라며 스스로 오해하거나 내리 깎을 뿐이다. 특히 내가 하는 집안일과 육아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 아닌가!

내가 계속 해온 일을 귀하게 여긴다면 곳곳에서 계시를 발견할 수 있다. 나는 계속 쓸 것이다. 나를 표현하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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