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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는언니 Jul 05. 2016

12. 여기가 아닌 어딘가

그들도 마찬가지


나는 종종 보들레르의 시를 떠올리며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꿈꾸곤 한다.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잘 살 것 같은 느낌이다. 어딘가로 옮겨가는 것을 내 영혼은 언제나 환영해 마지 않는다...... 영혼아, 대답해주렴. 리스본에 가서 살면 어떠냐? 그곳은 분명 따뜻할 테니 너도 원기를 되찾을 것이다...... 되도록 삶에서 멀리 떨어져 북극으로 가자......마침내 영혼이 폭발한다. 어디든 좋아! 어디든괜찮아! 이 세상 밖이기만 하다면! 


하지만 그는 아래와 같은 시도 남겼다.


우리는 보았다. 별들을, 수많은 파도를. 또 우리는 보았다. 모래를. 충돌과 뜻밖의 재난도 있기는 하였으나 우리는 자주 따분했다. 여기서 살 때와 마찬가지로... 


시인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 어딘가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여기와 마찬가지가 된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혹시 다른 곳에서 산다면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적어도 한달 만이라도..








많은 것들이 여기가 아닌 '어딘가'여서 매혹적이된다. 그곳엔 여기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비포선라이즈>의 주인공들처럼 우연한 만남이 기차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늘은 푸르고 공기는 가벼울 거라고. 삶 또한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여기와는 다를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 기왕이면 먼 곳으로 훌훌 떠나 모르는 얼굴과 언어와 풍경 사이에서 익명이고 싶은 마음. 내가 무얼 하든 어떤 모습으로 있든 상관하지 않을 곳에 존재하고 싶은 바램.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저 유명한 작가들도 그랬었다고 위안을 삼기도 한다. 전혜린은 먼 곳에의 그리움을 토로하며 자신 속에는 몇 방울의 집시의 피가 흐르는 것 같다고 했다. 하루키는 어떤가. 일본에 있다가는 일상 생활에 얽매여 속절없이 나이만 먹어버릴지 모른다고, 그리하여 날아간 그리스의 섬에서 <상실의 시대>와 <먼 북소리>를 쓰지 않았던가. 또한, 장그르니에는 <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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