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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바다 Nov 22. 2023

예수를 닮은 자화상- 알브레히트 뒤러

<자화상의 심리학> 윤현희, 문학사상

예수를 닮은 자화상


고향 독일을 비롯한 유럽 남부의 지속된 기근과 페스트, 매독의 유행으로 피폐해진 사회상은 르네상스의 어두운 이면이었다.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을 예감하여 삶의 터전을 떠나 떠돌았다. 뒤러는 전쟁, 기근,질병, 죽음이 만연한 세기말의 상황을 『요한묵시록』에 빗대어 「묵시록의 네 기사」를 포함한 15점의 판화 시리즈를 제작해 유럽에 판매했다.                           자화상의 심리학 58 page


섬세한 검은 선만으로 원근감, 질감, 명암을 탁월하게 표현한 판화는 대단히 인기 있었다. 이에 고무된 그는 에이전트를 고용해 판화작품과서적을 외국으로 수출하는 대량 복제와 글로벌 유통에 뛰어들었고, 이를 통해 얻은 성공은 뒤러에게 안정적인 경제적 토대와 사회적 입지를가져다줬다. 뒤러의 나이 스물일곱은 그런 해였다. 유럽을 석권한 그는 모든 작품에 자신의 이니셜을 디자인한 모노그램을 넣거나, 회화작품 속에 카메오로 등장함으로써 창작자의 정체성을 각인하는 방식으로 지적소유권을 명기했다. 예를 들면 초기 회화작품 「삼위일체에 대한 경배」와 「장미 화관의 축제」 같은 성화의 한 귀퉁이에 예수와 닮은 금발을 어깨 위로 늘어뜨리고 등장하여 조용히 감상자의 시선을 끈다.이미지를 통한 예수와의 직설적인 동일시이자 성화 속 신스틸러다.                            자화상의 심리학 58 page


최초의 미디어 혁명인 활자 인쇄술은 지식 혁명의 파도를 불러왔고, 뒤러는 그 파도에 올라탄 근대적 지식인이었다. 구텐베르크에 의한 활자 인쇄술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440년경 독일의 중부 내륙 마인츠 지방이었다. 그 후 점차 발전의 중심은 베네치아로 옮겨 갔고 유럽은 정보의 대량 보급이라는 급류를 타고 지식 혁명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본다면 미디어 혁명이 자아의 양상마저 바꾸어 놓은 우리시대는 뒤러가 살아가던 시대와 가장 가깝다 해도 좋을 것이다. 20세기 말에 시작된 인터넷과 무선통신의 혁명은 새로운 경제 계급을 탄생시켰고, 21세기로 들어서자 대중문화의 국경을 허물어 버렸다. 지금에 와서는 정보지식 산업과 결합한 인공지능 기술의 혁신이 국가 간의 지리적·물리적 한계를 뛰어넘고 언어의 장벽마저 허물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던 유형·무형의 경계가 점차 사라지고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비가시적 영토가 되어 가는 중이다. 이러한 21세기적 정보·지식 산업의 혁명이라는 도도한 물결을 타고 탄생한 신新 중산층 엘리트의 자아는 뒤러의 그것과 매우 닮아 보인다. 이탈리아에 유학한 뉘른베르크의 힙스터로 자화상에 등장한 뒤러의 자의식과 소셜미디어와 유튜브를 창안한 혁신가들, 그리고 그런 플랫폼을 통해 스타가 된 이들의 자의식이 겹쳐 보인다는 것은 과한 생각은 아닐 것이다.  자화상의 심리학 60 page


마침내 1500년, 서른을 향해 가던 뒤러는 스물일곱 살의 화려했던 르네상스맨과는 완연히 다른 중세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장중한 자화상을 완성했다. 그의 성취는 근대적인 것이었지만, 신앙심 깊은 부모의 영향으로 중세적 신앙은 그의 자의식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깨 위로 드리운, 뒤러의 트레이드마크인 잘 손질된 금발의 사실적 묘사와 모피의 감촉이 생생히 느껴지는 털 코트는 귀족적 오라를 풍긴다. 눈동자에 반사된 창문의 묘사는 사실성을 뛰어넘어 사진보다 정교한 뒤러 회화의 정수를 담았다. ‘예술이란 자연을 치밀하게 관찰하고 재현하는 것에서 비롯되며, 자연을 찾아다니는 자만이 진정한 예술가’라던 그의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된 자화상은 자연적 사실주의와 과학적 관찰에 방점을 둔 북유럽 르네상스의 본질을 함축하고 있

다. 왼쪽 이마와 콧등 위에 반사된 황금빛은 어두운 뒷배경과 대조되어 신성한 분위기를 부각시키고, 결연한 시선은 정면을 향해 있다. 예수의 이미지를 꼭 닮은 자화상은 신의 아들을 본받아 살고자 했던 뒤러의 얼굴이다. 그림 왼쪽에는 자신의 이니셜 ‘A. D’로 디자인한 모노그램을 그려 넣었는데, 이는 ‘Anno Domini 주님의 해’라는 뜻도 있어서 뒤러의 모노그램은 이중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위에는 제작 연대를 기록했다. 오른쪽에는 스물아홉 살의 뒤러가 ‘변하지 않는, 불변의 색채’로 자신을 그렸음을 선언하고 있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주님의 해 1500년, 뒤러는 흔들리지 않는 시선으로 자신이 예술의 창조자이자 불멸의 존재로 기억될 것임을 선언한다. 신의 모습을 본떠 창조된, 신을 닮은 인간을 그려 내는 자신이야말로 제2의 창조자임을 말이

다. 그의 시선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으나, 정작 흔들림 없는 그 눈빛은 자기 내부로 침잠 중이다. 혹은 그는 어쩌면 세기말의 우울을 뛰어넘어 영원의 그 어디쯤을 응시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자화상의 심리학 6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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