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도스 산토스, 과테말라 - Todos santos, Guatema
20140912-20140913
아무래도 점점 더 산 속으로 들어오니 추울 수밖에 없다. 구름 속에 갇힌, 무거운 날씨. 신비로운 마을의 입구로 들어가는 딱 그런 날씨 같다.
우에우에떼낭고huehuetenango로부터 최종 목적지인 산마테오익스따탕san mateo ixtatan까지 여섯 시간. 그중 네 시간 정도는 험하고 구불구불한 아니 무시무시한 산길이고 그중 두 시간 정도는 비포장 도로다.
이미 께찰테낭고에서 우에우에떼낭고 올 때까지 우엑우엑을 한 상태라 우리 부부는 선택의 여지 없이 중간 지점을 찾아 며칠을 나누어 도착지까지 가기로 했다. 친절한 우에우에떼낭고 마리 mary 호텔 주인장은 쉬어갈 마을로 아구아까땅과 또도스 산또스를 추천해주었고 우리는 두말할 것 없이 목적지로 가는 방향에 있는 또도스 산또스를 다음 목적지로 결정했다.
버스를 이용해 우에우에떼낭고에서 또도스 산또스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매일 정해진 시간 운행하는 또도스 산또스 직행 치킨버스(현지말로 까미오네따 그랑데 camioneta grande) 혹은 직행 봉고차(미크로부스)를 기다렸다가 바로 가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산 뻬드로 솔로마 San pedro soloma 등 같은 방향의 도시로 가는 아무 미크로부스를 잡아타고 뜨레스 까미노(삼거리)에 내려 그 곳에서 또도스 산또스로 가는(왼쪽 길) 미크로부스로 갈아타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갈아타는 것이 부담스러워 직행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무슨 버스를 타고 어떻게 가야 하나 머뭇거리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그런데, 저 앞에 또도스 산또스 마을의 인디 헤나 전통 의상을 입은 한 아저씨 걸어온다. 물어볼까 말까 머뭇거리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저씨가 또도스 산또스 가는 거라면 이 차를 타고 같이 가면 된다고 먼저 말씀을 걸어 주신다. '당신 마을로 가시는 길인데 아무렴 아저씨와 동행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안전하겠지!'란 생각으로 조그만 미크로부스(봉고차 버스)에 후다닥 몸을 실었다.
갈아타야 하는 뜨레스 까미노에 도착할 때까지 약 한 시간 가까이 당신을 또마스TOMAS라고 소개하신 아저씨와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마야인의 후손들이 지은 위삘을 통해 당신들을 알게 되었고 당신들의 삶을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서 이곳까지 여행을 왔으며, 최종 목적지는 산 마테오 익스따땅을 찍고 멕시코로 올라가는 것이라는 등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부의 불평등으로 인해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디헤나들의 실상에 대해서도 아저씨를 통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잠시나마 이들을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생각하게 되었다. 버스가 목적지를 향해 부지런히 달리고 있다. 어느새 또도스 산토스 이정표가 찍힌 아슬아슬한 외길로 봉고차가 들어서 있었다. 또마스 아저씨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까미사(남성용 블라우스)를 선물하고 싶다고 당신의 마음을 꺼내 놓으셨다.
커다란 눈망울에 진심이 가득히 보여 거절할 수가 없었다. 정말 받아도 될까,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다 보니 어느 새 갈아탄 미크로부스가 마을 센트로에 도착했다.
또마스 아저씨는 우리를 당신의 집으로 안내하셨다. 예쁜 인디헤나 전통의상을 입은 낯선 아저씨를 종종 걸음으로 뒤따라 간다. 강아지들이 보이고 어린이들이 보이고 오는 길에 아저씨가 안타까워하며 말씀해 주셨던 병약한 옥수수밭도 보인다. 여기 깊은 산속의 마야 인디헤나들의 마을에는 비료 등을 구할 수가 없어서 옥수수 재배 등이 수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오늘따라 평범한 옥수수밭도 더 초라하게 보인다.
집에 더욱 가까워질수록 또마스 아저씨를 닮은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긴 동생네 집, 여긴 누나네 집, 얘는 조카, 여긴 우리 아빠.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동안 옆집 꼬맹이들이 눈이 쫙 찢어진 동양인들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도망을 가다가 얼굴을 빼꼼 내미는 놀이를 반복해 댄다.
또마스 아저씨가 아내에게 우리에게 줄 까미사(블라우스)를 가져 다 달라고 부탁했다. 또마스의 아내는 이 층에 있는 까미사를 가지고 내려와 놓고서는 조용히 다시 올라가 까미사와 함께 입는 전통 바지와 또도스 싼또스의 대표적인 상징 파란끈이 달린 모자를 가지고 내려 오신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올라가시더니, 이번에는 나를 위하여 당신이 손수 만드신 여성용 위삘과 또도스 산토스의 파란색 줄무늬 치마, 빨간색 허리띠까지 가지고 내려오신다. 알아듣긴 하셔도 말로는 스페인어가 아직 어색하신 또마스 아저씨의 아내는 아무 말없이 우리의 표정을 살피며 흐뭇해하신다. (깊은 산속까지 오면 스페어대신 여기 마야 인디헤나들의 언어-부족마다 께추어 등 종류가 많다-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많아진다.)
우리가 너무 큰 선물을 받고선 어쩔 줄 몰라하던 사이, 또마스의 누나 프란씨스카가 달려나와 우릴 영접해 주었다. 그리고 딸과 둘이 사는 집에 방이 하나 남으니 우리만 괜찮다면 머물고 가라고 하신다. 사실 여행을 하는 중엔 낯선 사람과 수많은 인연을 만들게 되지만, 매번 낯선 이의 친절을 생각 없이 달갑게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조심스레 거절을 하려고 하니 또마스의 모든 가족들이 두손을 모으고 비슷하게 닮은 커다란 눈망울을 꿈벅거리며 정말 괜찮으니 우리의 마음을 받으라고 하신다.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프란시스카 이모님 집에 배낭을 풀었다.
하나님께 기도해보고 또마스 가족에게 받은 친절과 호의에 대해서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표현할지 결정하도록 했다. 먼저는 또마스에게 당신의 기족을 위하 '축복'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다. 중남미 대부분의 나라가 식민시대 이후부터 로마 가톨릭이 뿌리 깊게 박혀있기에 또마스 아저씨와 가족들도 기도받기를 기꺼이 즐거워해 주셨다. 우리는 또마스 가족의 손을 잡고 기도를 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하나님의 축복일 테니까. 성호경을 긋고 커다란 눈망울로 다시 한번 우리에게 사랑의 눈빛을 보내는 또마스의 가족들. 보통은 낯선 이의 친절과 다가옴이 부담스럽고 싫어야 할 텐데, 왜인지는 몰라도 이 마을, 또도스 산또스에서는 그러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이 맑은 눈망울을 소유한 영혼들을 통하 여주시는 그 사랑을 마음 깊이 받기로 했다.
사랑스러운 이 가족들에게 식사대접을 하기 위해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식당으로 가자고 하니 언덕배기 위에 작은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둘째 아들이 한 8-9살 되어 보이는데 한번 내 눈치를 보더니 모기 날아가는 목소리로 아버지 또마스에게 '뻬삐앙, 뻬삐앙'한다. 아무래도 이 식당에서는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메뉴가 뻬삐앙인가보다. 꼬맹이의 눈치를 보니 이 식당이 또마스 가족에게 매번 올 수 있는 곳은 아닌 것 같은데 메뉴 한 접시가 온통 15께찰, 우리나라 돈으로 2000원이 안된다. 여행자 부부의 작은 지출로서 서로에게 이렇게 기쁨을 줄 수 있다니 너무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식사는 너무 맛있었다. 우리의 입맛이 그새 현지화된 것도 있겠지만 음식 자체도 굉장히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편이다. 내일 다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맛있게 먹었다.
식사 후엔 프란시스카 이모, 그리고 또마스의 아내와 함께 꽤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의 공원으로 가서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Dia de independencia:9월 15일)을 기념하기 위해 이 지역 학교 연합이 준비한 축제를 우중에 즐길 수 있었다.
과테말라 마야 인디헤나 마을에선 매년 이맘때마다 마을의 가장 지혜롭고 아름다운 여성을 '레이나'로 뽑는다. 마을에서 뽑힌 이 레이나들이 지난번 우리가 관람했던 미스 인디헤나(flor nacional pueblo del maya)에 대표로 참가하게 되는 것이다. 미혼모인 프란시스카의 하나뿐인 딸, 헤이디가 이 마을 학교 연합의 전년도 레이나(여왕)였다고 한다. 레이나 주니어정도 되는 위치인가 보다. 이모님을 닮아 얼굴까지 예쁜 헤이디가 공부도 잘하는 우등생이며 레이나라고까지 하니 괜스레 하루 얹혀사는 내 어깨까지 들썩거린다. 게다가 이 마을은 올해의 미스 인디헤나의 진, 그러니까 최고의 레이나가 선발된 그 마을 또도스 산토스가 아닌가!
오늘 축제는 헤이디가 새로 뽑힌 레이나에게 왕관을 넘겨주는 날이기에 엄마 프란시스카에게 더욱 특별할 것이다. 그윽한 표정으로 딸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프란시스카와 축제를 바라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마을이 워낙 험한 산 속에 있다 보니 간호사인 프란시스카가 벌 수 있는 돈도 한계가 있다고 한다. 당신의 수입으로는 한 달에 75께찰, 만 원 정도 하는 학비도 버거운 것이 현실이지만 헤이디가 저 멀리 우에우에떼낭고까지 유학해 대학교도 가고, 후에는 전문직의 여성이 되어 좋은 남자와 결혼하길 바란다고 마음을 나누어 주었다. 우리 엄마의 십 년 전쯤 얼굴을 보는 것 같아서 비에 젖은 어깨를 손으로 톡톡 털고 가볍게 안아 드렸다.
성대한 독립기념일 축제가 있기 전에 열리는 작은 동네 학교 연합 축제라지만, 지구 반대편 한국인 부부에게 과테말라 북서부 고산 지역 깊숙이 살고 있는 마야인 후손들의 모든 것은 새롭고 놀랍기만 하다.
동네 사람 대부분이 목양을 하며 생계를 꾸려 나가기에 축제 첫 머리를 목동들의 삶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로 시작한다. 예쁜 인디헤나 옷을 입은 목동소녀가 하모니카를 불자 이리저리 헤짚고 다니던 양들이 최면에 걸린 듯 풀을 뜯는 모습을 보며, 성경에서만 읽어 오던 어린 양과 양들이 순종하며 풀 뜯는 모습을 실제로 처음 본다며 남편과 함께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축제가 한창 뜨거워질 즈음, 남자들의 표정들이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 할 것 없이 상기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인고 하니, 여기 저기서 '까바요, 까바요!'하며 웅성웅성한다. 나는 스페인어로 cabello, caballero, caballo를 늘 구분하지 못하는데 머리카락이라고 하는 것인지, 신사들이라 하는 것인지, 말들이라고 하는 것인지를 알아듣지 못해, 대충 신사들이 웅성거리니 이번엔 신사들의 차례인가 생각하고 구석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준비하는 남자들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신랑이 곧 말 경주를 한다고 하니 나에게 얼른 사진기를 준비하라고 한다.
또도스 싼또스는 매년 11월 1일마다 큰 '말 경주'를 한다. 지난번 여기 또도스 산토스의 말 경주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에 미국에서 중미 여행을 오신 사진 작가님 한분이 엘살바도르를 지나시며 우리 부부 만남을 갖고 이곳 이야기를 해 주신적이 있었다. 그때는 얼핏 지나가며 들었었는데, 종종 이렇게 외부인도 찾아올 만큼 근방에선 꽤 큰 축제인 것 같았다. 진행자가 오늘은 어른들이 하는 그 말 경주를 학생들이 약식으로 준비해 보여주는 것이라고 부연해서 설명해 주었다.
말경주의 순서는 대충 이렇다.
먼저 신랑들이 입장한다. 그리고 춤을 춘다.
춤사위에 열기가 붙으면 아내를 데려와 함께 춤을 춘다.
아내의 손을 잡고 춤을 추던 신랑은 본인의 모자를 아내에게 건넨다.
모자를 왜 벗어주냐고 물어보니 말을 달리다 벗겨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자를 벗어주는 표정들 속에서 더 깊은 의미를 읽을 수 있었기에 잠시 숙연한 마음까지 들었다.
11월 1일에 열릴 본 경기처럼 속시원 하게 달리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이백 미터 남짓하는 짧은 구간 속에서도 이내 발에 줄이 걸려 놀란 말이 날뛰다 주인을 던져버리는 아찔한 장면까지 볼 수 있었을 만큼 스펙터클하였다. 내가 보고 누리고 있는 것이 참 특별하고 귀한 경험일 텐데 사진 기술이 영 형편없는 내 자신이 야속하기만 하다.
원래의 말 경주는 마을 어귀에서 출발해 쎄멘테리오(마을 공동 묘지)로 향한다. 오늘 경기는 약식이기에 박스로 가짜 묘지를 만들어 세멘테리오처럼 표현만 해 놓았지만 본 경기 때엔 말들은 마을의 실제 이 마을의 세멘테리오로 달려간다. 세멘테리오에 도착한 신랑들은 여전히 우리가 살아있음을 신나는 춤사위로 표현해낸다.
매년 11월 2일, 그러니까 이 또도스 산토스의 말경주가 열리고 그 다음날엔 중남미 전체가 '망자의 날'(Dia de los muertos)로 지내는 날이다. 말을 끌고 망자들을 데리러 가는 산자들의 축제. 그 시작이 수천년 전이라고 추측하고 있는 마야 인디헤나 후손들의 모든 삶을 알아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어깨너머로 바라본 깊은 산 속 마야인들의 삶은 꼭 오늘의 이 축제와 닮아있다.
종교, 문화, 예술, 패션, 사상 등. 이들의 모든 것은 타의였건 자의였건간에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종교는 원시 종교와 가톨릭이 혼합되어 여지껏 본적 없는 교회당의 모습으로 꾸며져 있었고 이들의 의복은 스페인 사람들의 것 같기도 하고 마야 원주들의 것 같기도 하다. 춤사위, 노래, 언어 무엇 하나 진짜 그들의 것은 온전히 남아있는 것이 보이지 않을 만큼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아오며 살아온 듯하였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 조용히 들여다 볼수록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을 때 본래의 모습이 아마도 이러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될 만큼 순수한 사람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마을의 식당 메뉴 만큼이나
이 마을 날라리 동네 청년들이 고를 수 있는 옷 디자인 종류 만큼이나
영혼이 단순해지는 기분이다.
8시가 채 되기 전,
또마스 아저씨의 가족들의 공동 화장실이 딸린 프란시스카 이모님의 낯선 방에서 잠을 청하려 한다.
온 동네가 커다란 산과 엄청난 양의 구름으로 뒤덮여있다.
내 영혼은 지금 압도적인 자연에 위엄에 잔뜩 긴장되어 있기도 하다.
머릿속이 하얀 것이 도화지같이 맑은 영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난 여운인지 ,
지금 우리를 감싸고 있는 이 어마어마한 안개 때문인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