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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cosong Sep 29. 2015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사파티스타 자치지구 오벤틱, 멕시코

2014년 10월 8일  

산크리스토발 포근한 날씨. 그러나 오벤띡에 들어서자마자 구름이 마을을 힘껏 가려준다.

날씨마저도 그들이 쓴 복면처럼 비장하게 느껴진다.



얇은 가디건 한 장은 걸치고 가는 것이 좋겠다.       

구름으로 가려진 곳을 찾아내서 살고 있는 것인지, 구름이 그들을 가려주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오벤띡' 마을에 이르자마자 뜨겁고 단내가 나던 관광지의 공기는 온대간대 사라지고 없다. 산의 발등부터 올라오는 구름들이 마을에 결계를 치기 위해 스물스물 올라오기 시작한다.   


사파티스타 zapatista 운동에 관심을 갖는 우리 같은 외국인들이 하루 두어 명은 꾸준히 찾아 온다기에 우리는 내리는 순간까지 아무런 긴장을 하지 않았다. 인터뷰를 한다는데 어떤 질문을 해야 하나, '궁극적 목표'를 스페인어로 뭐라고 말하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좀 진지해져 있었긴 했지만.


 

그러나 오벤띡에 발을 처음 디딘 순간 우리의 그 여유로움은 차가워진 공기와 함께 극한의 긴장감으로 변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미리 보았던,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한 달팽이 마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고

족히 70-80명은 되어 보이는 검은색 스키 복면의 인디헤나들, 즉 사파티스타 무리가 마을의 입구를 에워싸고 있었던 것이다. 열 살 남짓해 보이는 소녀부터 머리가 희게 쉬어버린 할아버지까지 남녀를 막론하고 구성된 복면의 무리들은 약 10-20명씩 나누어져 픽업 차량 뒤에 실려 무전을 연신 날려대는 한 남자의 지령을 받고 어디론가 이동되어지고 있었다.  



동양인 부부를 힐끔 보고 복면 사이로 조용히 웃어 보이는 젊은이들도 있었기에 잠시 잠깐이라도 긴장을 놓을 수는 있었지만, 도착한 그 순간부터 마을을 떠날 때까지 마을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인상은 ‘비장함’ 그 자체였다.



마을 입장을 허가받고 사진 촬영을 허락받기 전까진 누구에게도 함부로 마을과 관련된 사진을 찍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관리자로부터 작성해야 할 신청서(간략한 프로필 제공)를 받기까지 약 20여분이 걸렸고 신청서를 토대로 입장을 최종  허락받기까지도 또 20-30여 분이 걸린 것 같다. 철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허락이 떨어지기까지 기약 없이 기다리다 보니 그 많던 검은 복면의 사파티스타 무리들은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출동'해 사라져버렸고 전보다 더 조용하고 비장한 분위기가 되어버린 마을 입구엔 우리 부부 둘과 몇몇 복면의 남성만 남았다.



오벤틱 전경



오늘은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에서 있을 마니페스타시온(manifestacion:시위, 집회)으로 인해 마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까 거리로 나가서  면담할 사람이 없어서인지 인터뷰 없이 바로 마을로 입장할 수 있었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몇 가지 있었기에 지난밤부터 모자란 에스파뇰실력으로 머리를 살살 굴리며 질문을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눈곱 만큼 몰려오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만 했다.






오벤띡 마을에 입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언제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마을의 풍경을 사진기에 담을 수 있는 날이 있고 또 없는 날이 있다. 오벤띡 주민들을 사진기에 담는 것이 금지된 것은 이미 아는 사실이었기에 사람들을 찍을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사파티스타 민족 해방군의 진행 중인 ‘역사의 기록'인  그들의 벽화 만큼은 직접 카메라에 담아오고 싶었기에 약간은 흥분된 상태로 오는 길 메모리 카드 제대로 넣고 왔는지 두어 번은 확인한 것 같다.






벽화와 마을의 모습을 담기 위해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우리와 동행하는 관리자에게 확실하게 허락을 받았기에 마누라는 마음을 놓고 정부와 세상에게로 살아 움직이며 소리치는 듯한 그들의 벽화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는 에밀리아노 사파타의 얼굴이 그려진 강당과 체의 벽화 말고는 더 다양한 벽화를 볼 수는 없었는데 이곳에 사는 인디 헤나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학교 안으로 들어가니 에너지가 넘치는 작품들이 마구마구 쏟아져 나온다.




마누라가 무언가에 홀린 듯 다리를 쫙쫙 벌려 험한 바닥을 비켜가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갑자기 또 다른 복면의 남성이 급하게 달려 오더니 우리를 안내해주는 안내원에게 급히 말을 전한다. 알고 보니 오늘이 바로 사진을 찍을 수 없는 바로 그 날이란다. 미술을 전공해 그들의 벽화에 관심이 많은 나를 아는 우리의 동행자가 새로 온 복면의 남성에게


'학교 안에서만 안 찍으면 되는 것 아니야?'하고 나 대신 물어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No'였다.


오늘은 마을 안에 어떤 사진도 카메라에 담아선 안 된다고 한다. 그래도 다행히 지금까지 찍은 사진에 대하여는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는다. 아쉬웠지만 우리 뒤에 들어오는 일본인 커플과 호주 청년은 똑딱이도 들이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며 몇 분 전까지도 오늘이 그날인지 몰랐던 우리의 동행자 덕분에 그들의 기록을 사진으로 많이 남길 수 있었다며 감사하게 생각했다. 신분의 노출이 민감할 밖에 없는 이들의 삶을 위해서 불허된 그 시간부턴 단 한 장의 사진도 남기지 않았다.





마을을 천천히 한 바퀴 도는 동안 신랑이 복면의 남성과 오랜 대화를 나누었다.

돌아오는 질문은 대부분 ‘모른다.’였다. 처음엔 이미 다녀온 몇몇 여행자들의 생각처럼 진짜 ‘몰라서’그런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어 보면 볼수록 몰라서  ‘모른다’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다.


사파티스타는 총과 칼을 버리고 ‘말’이라는 무기를 선택한 단체이다. 말로 무장한 단체이니만큼 ‘한 마디, 한 마디’가 중요할 것이다. 아무리 지나는 외국인들에게 라지만, 말이 곧 생각이며 힘이며 무기인 그들에게는 그 '말' 한마디라도 신중하게 선택해서 뱉어야 할 것이 그들의 입장일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을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스스로를 옥수수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알고있는가? 옥수수의 시작이 바로 여기, 멕시코라는 것을?



돌아오는 길에는 마르코스의 책 El viejo antonio(한국어: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 스페인어 버전을 구매했다. 스페인어로 쓰여진 책이라 언제나 다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마누라는 그냥 촘촘히 별이 박힌 표지가 마음에 든다.


오아하까로 이동하기 위해 터미널로 향하는데 사파티스타 행열이 간발의 차이로 소깔로를 지나갔다. 잠시 뒤 소깔로 에선 현재 수사 중인 '멕시코 교대 학생 실종사건'에 대한 정부의 진상규명을 바라는 대규모 시위가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아까 우리가 오벤띡 앞에서 만났던 부산하게 움직이던 수십 명의 사파티스타 민족 해방 군들이 '당신들의 고통은 우리의 고통이기도 하다'라는 문구를 들고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침묵 행진을 했다고... (이때부터 멕시코 전역에서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나아와 각 도시의 광장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괄라 교대 학생 실종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행진이 멕시코 전역으로 이어지고 있다.




삼 주동안 매일 지나던 소깔로 광장인데 오늘은 활기차던 광장의 분위기가 꽤나 가라앉아있다.

벽에는 어제 없었던 낙서가 그려져 있고 바닥엔 실종된 이괄라 교대 학생들의 얼굴들이 도배되어 있다.

아이, 어른, 인디헤나, 전 세계에서 온 외국인들 할 것 없이 입술을 꽉 다문채 억울하게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된 젊은이들의 흑백사진을 내려다 보고 있다.




실종된(결국 살해당한것으로 밝혀졌다) 멕시코 대학생의 얼굴을 보고있는 사람들





삶다운 삶을 위해 공의의 십자가 아래 모인 슬픈, 혹은 화가 난 사람들을 보니 마음 한켠이 아려온다.






지금 이 순간에도 멕시코 전국의 광장과 길로 나와 정부를 향해, 그리고 이 세상을 향해 말없이 소리치는 복면의 원주민들이 있다. 여기 치아파스 주에만 이 사파티스타 자치지구가 5개가 있다고 하는데 누구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없다고 한다.


정권 장악식의 20세기 혁명과 스스로를 구분 짓는 그들에게

 '검은색 스키 복면을 벗게 되는 날, 곧 멕시코가 가면을 벗는 그 날' 은 어떠한 날이 될 것인지,

봉기후 20년간 외쳐왔던 그들의 '말'들을 통해서 그들이 진정으로 이루고 자하는 유토피아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그들의 외침이, 그 말이란 무기가 어떤 의미인지 조용히 알아가야 하겠다.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의 작은 가게에서 판매하는 사파티스타 작품들



혁명이 생활이 되어버린 듯한 그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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