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화목함과 그렇지 않은 면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어떤 날은 화목하고 즐거운 반면, 어떤 날은 한없이 지치고 힘겨운 날이 되곤 했다. 그런 날들을 겪으며 나는 수많은 눈물과 외로움 속에서 살아야 했다. 단지 웃음이 많았던 건 내 얼굴에 있는 우울함과 원망을 감추기 위해서였을 뿐, 진짜로 웃으며 지내는 건 아니었다는 걸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다.
어릴 적에는 그저 웃으면 되는 줄만 알았고, 그걸로 내 마음을 달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웃음도 울음도 필요함을 나는 어른이 되고서야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어린 시절의 나는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다. 화가 나도 그냥 속으로만 화를 냈고, 떼를 쓰거나 할 때만 울었다. 진짜로 화가 났을 때는 참는 그런 아이였다.
우리 집은 아빠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엄마가 돈을 벌었다. 내 기억 속 아빠는 늘 술을 드시며, 돈이 있으면 집에 안 계시고 돈이 없으면 계시는 분이었다. 게다가 돈이 있어도 자신을 위해 쓰는 분이라 늘 돈을 다 쓰고 엄마에게 달라고 하는 날이 많았다.
“꼭 갚을게. 그러니까 돈 좀 줘.”
이 말은 아빠의 입버릇이었다. 늘 갚는다고 하면서 갚지 않았고, 엄마는 그걸 알면서도 내 앞에서 싸우기 싫으셨는지 돈을 주시며 담담히 견디셨다.
그리고 나를 돌보며 묵묵히 일을 하는 엄마의 모습은 지금도 내 기억에 선명하다. 식당에서 야간으로 일하시고, 집에 와 지쳐 주무시고, 다시 일을 나가던 모습. 그럼에도 나를 사랑하며 아껴주시던 그 모습은 내 기억 속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을 기억 중 하나다. 그러다 보니 나는 아빠보다 엄마를 더 찾았다.
어릴 때 나는 늘 “아빠 언제 나가?” 하고 물었다. 아빠가 있으면 어색했고, 빨리 나가기를 바랐다. 못된 딸일 수도 있으나 그때의 나는 혼자가 편했다. 혼자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 혼자 놀다 잠드는 날들. 그 날들이 편해서 나는 아빠가 있으면 괜스레 어색해 했다. 무엇보다 내 맘대로 TV를 보지 못하는 게 싫었다. 아빠는 늘 리모컨을 쥐면 놓지 않으셨다. 그리고 늘 바둑을 보거나 스포츠 중계를 보셨는데, 나는 그 당시 좋아하던 애니를 보고 싶었지만 아빠가 싫어하는 걸 알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빠가 잠이 들었을 때는 TV 리모컨을 몰래 가져가 보려 했지만, 그것도 들키는 바람에 늘 TV는 아빠의 차지였다. 내 세계에서 아빠는 무서운 사람, 늘 돈 때문에 엄마와 싸우고 항상 화가 나면 소리를 지르고 폭발적으로 화를 내는 그런 사람으로 각인돼 있었다. 반면 엄마는 달랐다. 언제나 웃어주고, 화를 내도 상냥히 달래주는 그런 사람. 나에게 늘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주시고, 내가 작은 것이든 상을 타 오거나 칭찬을 받으면 좋아하던 사람. 그래서 나는 엄마를 좋아했다.
그렇기에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건지도 모른다. 엄마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나는 세상을 원망하고 내 눈을 원망하며, 아빠에게도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 더 엇나갔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를 늘 위해주고 밤낮으로 일하면서도 웃어주는 엄마가 있었기에 나는 단단해질 수 있었다. 아빠의 사랑이 없어도 가장으로 엄마가 있어서 나를 살렸다.
그래서 나는 현재 엄마와 단둘이 사는 생활이 좋다. 비록 부자는 아니더라도 우리 두 사람이 먹을 게 있고, 서로 웃을 수 있는 이 시간들이 너무나 고맙다. 가끔 아빠가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렇다고 용서가 되는 건 아니다. 내게 했던 행동과 오빠에게 했던 행동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에게 했던 행동들은 나에게 있어 상처가 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아빠를 거부했다.
아빠가 어느 날 카톡을 보냈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조용한 채팅방에 넣었다. 더 이상 바뀐 내 번호를 알려주는 것도 싫었고, 현재 안마를 한다고 했을 때 그만두라고 할까 봐 겁이 났다. 또다시 그만두지 않겠다고 했을 때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를까 겁이 나 아빠와의 연락을 포기했다. 그렇게 나는 아빠와의 인연을 끊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빠도 가족이잖아. 사이좋게 지내.”
그 말을 하는 사람에게 나는 묻고 싶다.
“혹시 엄마가 밤에 일을 나가서 보고 싶어 울 때, 아빠가 오히려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 본 경험 있으세요?”
“아빠가 늘 돈이 없어 들어왔다 나가는 경험 있으세요?”
“오빠를 때리려 하고 늘 술을 드시는 모습을 본 적 있으세요?”
나보다 어렵고 안 좋은 가정환경이 있다는 건 안다. 그리고 내가 보호를 받고 자랐고, 오빠와 언니보다 상처가 크지 않음도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빠가 오지 않기를 바란다. 더 이상 돈 문제로 힘겹게 엄마를 고생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연락을 무시했다. 톡방을 조용한 방에 옮기고 읽지도 않았다. 바뀐 번호를 알려주고 싶지 않아 애써 모른 척했다.
이기적일 수 있고 냉정할 수 있다. 그러나 내게 있어 아빠가 온다는 건 긴장의 연속이자 피곤의 연속이기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지금이 좋다. 엄마와 단둘이 지내며 그저 하루하루 웃고 울 수 있는 지금 이 생활에 만족한다. 만일 아빠가 나타난다면 이 생활이 무너질 것 같아 가끔 무섭지만, 그럼에도 아빠가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지낸다.
나는 이기적인 딸이다. 그걸 부인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빠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에게 더 감사하고 엄마를 더 사랑한다. 아빠에게는 죄송하지만 그 마음이 변할 것 같지는 않다. 오늘밤에는 자기 전 조금 우울할 것 같다. 내가 너무 이기적이라서. 너무 못된 딸이라서. 그렇기에 나는 아빠에게는 나쁜 딸이고 이기적인 딸이다. 누군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지금이 좋다. 엄마와 더 오랫동안 이 시간을 이어가고 싶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용서하는 게 어렵다는 걸 아빠와의 관계를 통해 알았다. 그래서 나는 미워하는 관계보다 좋아하는 관계에 더 생각이 많다. 오늘은 관계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다. 그리고 내 주변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언젠가 아빠를 만난다면 겁먹지 않고 당당히 대하고 싶다. 내 길을 꿋꿋이 가는 모습을 보여줘 더 이상 엄마와 나를 상처 입히지 않게 하고 싶다. 그게 현재 내 바람 중 하나다.
수많은 상처들 중 가족과의 상처는 오래 남는다. 그만큼 서로가 깊은 관계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더 아프고 괴로운 게 아닐까? 오늘밤은 잠들기 전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늘 하는 말이지만, 정성을 담아 말해 줘야지. 그리고 좋은 꿈을 꿀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