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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키워낸 상상력

by 삐약이

앞에서도 말했듯 나는 혼자 있는 게 익숙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는 오빠나 아빠와 있었고, 내가 큰 후 중학교 때와 고등학교 때는 늘 혼자 집을 지키며 밤을 보냈다. 그 시간을 이용해 나는 수많은 애니메이션을 봤다. 주로 액션물을 즐겨 봤으며 때로는 개그물이나 가족물, 힐링 물 등 다양한 장르를 성업했다.

어릴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던 건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어릴 때는 아빠가 애니메이션 보는 걸 좋아하지 않아 늘 몰래 보다 아빠가 올 시간이 되면 채널을 바꿔 놓으면서 눈 속임을 하는 일이 잦아 맘 편히 볼 수 없었다. 그러다 중학생이 되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게 애니메이션은 그저 단순한 게 아닌 친구가 돼 주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넓은 세상과 그 속에 살아 숨 쉬는 캐릭터들의 음성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고, 새로운 세상을 안겨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성우가 되고 싶었던 걸지 모른다. 성우가 돼서 애니 속 캐릭터들을 연기해 보고 싶었지만 현실은 성우를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다고 후회하진 않는다. 내게 성우 학원에서 배운 것들은 모두 좋은 거였고 행복한 거였으니까. 그리고 더없이 소중한 교훈들과 성우들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알게 됐으니까.

그렇게 나는 한 명의 덕후가 돼 가면서 어둡고 긴 밤을 보냈다. 밤이 되면 잠이 오지 않아 늘 애니메이션을 틀어놓고 혼자 폭소를 하며 보냈다. 왜 혼자 있으면 잠이 그렇게 안 오던지... 그저 잠깐 보자고 틀었던 애니메이션을 마지막 화까지 보고 새벽을 새는 날이 잦았다.

그러나 집에서도 뭐라고 하지 않았을뿐더러 아무도 없는 텅 빈집에서 할 수 있는 게 그것이 유일했기에 내 생활은 늘 애니메이션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다 성우를 알게 되고, 성우들이 했던 작품을 보며 점점 내 상상력도 풍부 해졌다. 그것을 글로 썼으나 가끔 비웃음을 당하고 친구들에게

"뭐 이런 걸 썼어?"

하는 핀잔도 들어 내 글을 보여주는 걸 하지 않게 됐다. 그러면서 점점 혼자만의 세상으로 고립을 택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알아주지 않는 내 마음을 꼭꼭 닫은 채로 나는 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사춘기가 왔으나 말할 사람도 없었고, 그걸 표현하는 방법도 몰랐다. 그저 참는 게 다인 줄만 알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참는 게 익숙하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참는 건 아니지만... 내가 할 말을 해야 할 때 잘 못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내가 뭔가를 요구하다 안 되면 답답할 때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도 잘 못한다. 대신 다른 사람들이 부탁하는 건 잘 들어준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거의 부탁하는 건 되는 한 들어주고, 안 되는 건 나도 모른다고 답한다. 대신 들어 줄 때는 확실하게 들어주려 노력한다. 그게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눈치도 많이 본다. 상대방 목소리가 조금만 낮아져도

'나 때문에 ㅎ화가 난 걸까?'

생각하면서 불안해한다. 그래서 주변에서

"너무 눈치 좀 보지 마."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이것은 내가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눈치를 많이 봤기에 그런 듯싶다. 그래서 남의 눈치를 쉽게 보고 남이 한 사소한 말에도 상처를 쉽게 입는다.

이런 나를 고치려 시도 중이다. 그러나 아직은 멀었음을 알고 있기에 천천히 노력하려고 한다. 아직은 서툴러도 노력하다 보면 당당한 내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내일은 더 이런 부분은 이렇게 하자.'

다짐하고 다시 나를 다잡는다.

'혼자'라는 건 어떻게 본다면 외로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속에서 상상력의 힘을 키웠고 내 자아를 새롭게 발견했다. 내가 쓰는 글이 인정받지는 못했어도 글로 나를 표현하려 노력했고 나를 다스리려 애썼다.

앞으로도 나는 수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릴 적의 마음을 되새긴다면, 내가 쓴 글로 나를 치유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충분히 극복할 거라고 믿는다.

밤이 오면 다시 새벽이 오듯...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올 것을 믿는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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