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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정신분열의 시간

by 신지승

"나의 80년대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공백으로 남아있다."

간혹 대학 친구 진0근이가 안부전화를 걸어온다. 수십 년 동안 그렇게 안부전화를 걸어 주는 것도 쉽지 않은 고마움이다. 그를 통해 잊고 있었던 대학 친구들의 근황을 알 수 있다.

"동0이 소식 몰라? 제주도 동0이 좀 찾아줘" 그토록 같은 과 친구들의 근황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0근이도 동0의 소식은 매번 모른다고 한다.

동 0 이와 홍보관 언덕에 둘이 앉아 있었다. 반대편 학생회관 2층에 있는 교무과를 찾아가 졸업장을 받아야 하는데 왜 그리 망설였을까. 둘의 힘으로도 그 단순한 행동을 쉽게 하지 못한다는 게 지금으로서도 이해되지 않는다. 그게 그렇게 부끄러운 것도 아니지만 자랑스러워 할 수 없는 그 절망감 허무감은 도대체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당시의 보이지 않는 유령이 우리들 주위를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누군가가 조형해 놓은 사회적 요구, 기대는 가족의 기대나 개인적 욕망을 뛰어넘는 강박이 사상적으로 단련되지 못한 여린 이들에게는 특히 가혹하게 덮쳐왔다. 겨우 20대 초반의 앞 뒤 못 가리는 개인의 정신적 근육으로는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들었다. 심술궂게 표현한다면 운동권 그들은 정의와 신념에 겨워 뿌듯하게 그 시대를 누렸던 것이고

지금도 그 열매를 오롯이 누리고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동 0 이와는 자주 어울렸던 것은 아니었다. 같은 과였지만 그가 어떤 조직에서 활동하는지도 몰랐고 그런 걸 묻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나는 운동권도 아니고 도서관파도 아닌 그 어중간한 경계선에서 햄릿처럼 고뇌하고 번민하며 무력감과 절망 속에 살아야 했다. 순진한 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셈하지 않는 영혼들이라고 자부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당시 운동조직원 그들만이 오롯이 시대의 십자가를 졌다는 오만은 당시 나의 자존심을 몹시 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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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트머리국제마을영화제 집행위원장 -생활인과 공동창작 ,탈상업적 상상력의 대중창작시대 돌로 영화만들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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