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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7분 소설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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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Oct 14. 2015

#갯마을 손님

동백꽃 붉게 피던 날

아직 꽃샘 바람이 고개를 갸웃 거리던 때였다.

바닷가 선창 가까운 곳에 향이라는 예쁜 처녀가  짭짤한 바닷물 맛에 젖어 살고 있었다.

그네의 아버지는 고기 잡으로 나갔다가 파도에 휩쓸려 죽고  하나 밖에 없던 장성한 오빠는 바닷가로 난 산 벼랑에서 풍란을 캐다 떨어져 죽었는데 시체를 찾지 못하였다.

 향이 어미는 남편이 죽고 아들이 죽은 뒤에도 이 바닷가 선창을 떠나지 못하였다. 멍게에 해삼에 굴에 생선도 좋고 파래에 미역에 사시사철 바닷가에서 올라오는 것들을 두고 떠나서는 살 길이 없어  보였던 것이다.

향이 어미에게 소원이 있다면 향이가 돈 많은 어장 주인에게 시집 가는 그것 하나였다.  

 

동백꽃 가지에 꽃봉오리가 피어나던 날이었다.

향이네 집 동네 우물가에 왠 낯선 남자가 나타났다.

 맑은 물이 솟아 나는 우물은 그 물이 사시사철 마르지 아니하고 물맛이 달았다. 마을 노인네들은 감로주라고 우물을 매우 아꼈다.

  다들 바다로 밭으로 나가버린 한가로운 낮이었다. 차가운 물에 채소 씻는 처녀들이 왁자글 하였다.

사람 소리를 찾아 우물가로 간 남자는 따스한 봄햇살 아래 반짝이는 물그림자가 얼룽대는 얼굴로 시원하게 웃는 처녀들을 발견하였다.  그가 인기척을 내자 갈색으로 그을린 건강한 얼굴빛 안에 반짝이는 눈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처녀들 역시 말끔하게 차려입은 젊은 남자에게 시선이 쏠렸다.

까마귀처럼 까만 머리가 숱이 얼마나 많은지 두둥실 솟은 머리가 인상적인 , 코도 오뚝하고 입술도 반듯하고 눈도 서글하니 잘 생겼다.

향이와 친구들은 도시 냄새 풀풀 나는 남자를 보며  가슴속 빛난 분홍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것을 느꼈다.

 "저는 **에서 왔는데 여기 민박하는 집이 어디 있을까요?"

 남자의 목소리가 피리구멍에서 나오듯 듯 밝게 저음으로 울렸다. 투박한 선창가의 남자들과 다른 부드러움이 배인 말투였다. 세 처녀는 일시에 얼굴이 붉어졌다.

우물가의 처녀는 잘생긴 젊은 나그네에게 바가지에 나뭇잎을 띄어 건넨다던데... 처녀들은 순간 옛 이야기 속의 처녀를 자신들이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남자의 손에는 생수 병이 들렸다.

"여기는 민박하는 집이 없는데요"

향이가 수줍게 말을 이었다.

그때 친구 금이가

"향이 너네 집에 빈방이 있잖아. 오빠가 쓰던."

해버렸다.

"아~그래도 될까요?"  남자의 환하게 밝아오는 얼굴을 보면서 향이는 안된다고 말을 못했다.

 그래서 향이는 두 친구의 부러운 눈길을 받고 자석에 끌리듯 남자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물기 젖은 손을 다 말리지도 못한체.

 마침 향이 어미는 선창가에서 고기를 선별해주고 얻어온 잡어를 씻어 말리는 중이었다. 저 멀리에서 뱃고동이 뿌웅뿌웅 하고 울었다. 향이네 집은 선창가의 집들을 돌아 산 너머로 가는 길  동백나무가 우거지고 돌담이 쌓인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당에서 보면 넘실넘실 햇살에 춤추는 바다가 보였다.

 향이 어미는 딸이 낯선 남자와 들어서는 것을 놀라서 바라보았다.  남자의 어깨에 빨랫줄이 걸리면서 줄에 널었던 노래미 한 마리가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실례합니다. 이곳에 빈방이 있다고 하여 허락해 주시면 며칠 묵고 싶습니다. "

 남자는  깍듯이 인사를 하였다.

 도시에서 왔다는 그는 이름은 선재라고 하고 향이 어미에게 미리 숙박비를 내밀었다. 며칠만 머물겠노라고 반찬은 필요 없고 밥에 김치만 줘도 된다고 통 사정을 하는 바람에 향이 어미는 그러라고 승낙해 버렸다. 안 그래도 생활이 빠듯해서 빈방을 어떻게든 세를 주리라 다짐하던 차였다.

 다만 염려되는 것은 남자가 허여멀건 것이 사거리에 서면 온 동네 여자가 따라붙을 만큼 잘생겼다는 점이었다. 혹여라도..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젊은 남자가 입도 무거워 보이고 많이 배운 사람 같은 몸가짐이 믿음이 갔다.

  향이는 아침이면  손님의 밥을 지어다 바치고 방 청소를 하고는 오후면 선창가에 나가 들어오는 배들이 부리는 고기들을 선별하거나 고둥을 주으러 가곤 했다. 남자는 향이가 있는 곳에 멀리 나타나 사진도 찍고 종이에 기록도 하고 하였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은 어디로 갔다 오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가끔 마주치는 것을 보면 마을 이 곳 저 곳을 둘러보는 모양이었다. 향이는 햇살 속에 천천히 보였다 사라졌다 하는 그 사람을 환영처럼 바라보곤 하였다.

향이 어미는 도시 손님이라 반찬이 입에 안 맞을까 걱정하였으나 

그는 첫 밥상을 받고 나더니 호래기 젖이 맛이 좋다. 가자미 찌개가 좋아서 밥을 많이 먹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향이는 그의 밥상을 내올 때 깨끗하게 비운 밥그릇과 반찬 그릇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그토록 멋진 사람이 호래기 젖을 먹는다고 생각하자 왠지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향이 어미가 하룻저녁은  대구 대가리를 썰어 무를 넣고 대구탕을 올렸더니 그는 여기 대구탕은 특별히 맛있다고 감격해하였다. 밥상에 올리는 반찬마다 다 좋다 하고 맛있다 하니 향이 어미는 하루하루 다른 반찬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 생선찌개, 고둥무침, 파래무침, 젓갈, 봄동 겉절이 등등.

그렇게 이틀이 지나자. 그녀는 나도 너 만한 아들이 있었노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편해졌다. 그도 또한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며 잠시 휴식할 겸 내려온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향이 어미는 "그럼 그렇지. 배운 사람은 어디가 달라도 달라.."

한편 그녀는 향이도 공부를 했으면 어찌했을까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이틀 동안 집을 비우고 돌아다닌 그는 사흘 째 되던 날은 멍하니 마루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책을 읽고 하였다. 그 날 오후, 향이가 토시를 끼고 고기 담은 대야를 이고 비탈길로 구불구불 올라오는데 마을 장군사당의 돌층계에 앉아 있던 그가 물방울을 훔치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놀라서 하마터면 고기를 땅에 엎을  뻔하였다. 그때 그가 성큼 다가오더니 대야를 자기가 받아주겠노라 하며 향이의 까만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였다.  남자의 깊고 큰 눈이 향이의 눈 바로 앞에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비린물이 흘러내린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괜찮다고 거절하고는 쌩 올라가버렸다.

 그 날 저녁에, 마당 한 귀퉁이 장독대 앞에서 향이 어미가 바닷가에서 잡아온 성게를 깔 때 그는 노란 성게알을 입에 넣고는 이렇게 맛난 것을 처음 먹어본다는 듯 향이 얼굴을 보고 눈을 크게 떠 보였다. 향이도 그땐 살며시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는 생각난 듯 쪽 마루에 가서는 수첩에 또 무언가를 적어두고 다시 와서는 고둥의 생김새를 성게의 가시발을 눈으로 해부라도 하듯이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는 해삼창자도 호르륵 소리를 내며 잘도 먹었다. 향이와 어미는 그가 호르륵 소리를 내며 먹는 해삼창자를 같이 호르륵 거리며 먹었다.

그는 못 먹는 것이 없었다. 전어알밤 젖도 아가미젖도 잘 먹었다.


나흘 째 되던 날 점심을 먹은 후

손님이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향이는 국화빵 파는 할아버지 가게로 가서 국화빵을 샀다.

도시 손님에게 이 맛난 국화빵을 맛 보여 주리라 생각하였다.

매일 그가 즐겨하는 것은 이 곳의 대구탕과 아가미젖과 선창가의 일꾼들과 동백꽃과 객줏집 같은 것들이었다.  향이가 도시는 여기보다 더 좋은 게 있지 않느냐고 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도시에는 아가미젖이 여기보다 좋지 않고 동백꽃도 여기보다 붉지 않고 선창가 어부들의 구릿빛 피부도 없다 하였다. 그렇다면 이 국화빵도 도시에는 없으리라.

향이는 봉투에 담긴 빵을 가슴에 소중히 안고 비탈길을 올라갔다.

 그는 왔던 대로 바지를 곱게 입고 재킷을 걸치고 가방을 메고 방을 나서는 중이었다. 향이 어미가 대구 말린 것 두 마리를 신문지에 둘둘 말아 그에게 건넸다. 그녀는 아들을  보내는 것만 같아 서운하였다.

향이도 대문 앞에서 그가 나오는 것을 보니  마음속이 텅 비고 찬 바람이 씽씽 부는 것만 같다.

 "아주머니 그간 잘 먹고 잘 지내다 갑니다. 향이는 어디갔습니까?"

 "저기 오네. "

그녀는 사가지고 온 빵 봉지를 그에게 내밀었다.

"향이를 못 보고 갈  뻔하였네."

그가 다정하게 말을 하며 그녀를 내려다 보았다. 바닷바람에 그의 머리숱이 빵처럼 부풀어 오른다.

"국화빵이로구나. 향이 처럼 곱다."

그는 빵 봉지 안에 코를 대 보며 말했다.

  '향이처럼  곱다'라고 한 말이 향이의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다음에도 여기 오면 꼭 들르게." 향이 어미는 괜스레 앞치마 자락으로 손을 하염없이 닦으며 말했다.

그는 꼭 다시 들르겠다고 말한 후 손에 들었던 볼펜 한 개와 작은 수첩 한 개를 향이에게 주고 총총 걸음으로 사라졌다. 그가 돌아간 길담에는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향이는 눈물이 떨어지려는 것을 감추려고 방으로 들어와 문을 꼭 닫아버렸다.

그가 준 펜을 손에 쥐었다.

수첩을 펼쳤다. 새 수첩 맨 첫장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언덕길을 오르는 젊은 여자가  있고 그 옆에 동백꽃이 붉게 피고

또 그 동백나무 아래 작은 집이 있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 그림 아래 작게 글자가 또박또박 적혀있었다.


 '달달한 물이 솟는 우물가/ 동백꽃 붉게 붉게 피는 집/ 향이, 어여쁜 처녀가 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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