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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7분 소설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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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Oct 24. 2015

#다섯 손가락 쟁론기

누가 가장 잘났을까

하루 일과를 마친 한 남자가 저녁에 일찍 퇴근 후 씻고 잠이 들었다.

이른 저녁은 조용했고 잠든 남자의 손은 지친 듯이 이불 밖으로 힘없이 떨어져 있었다.

남자의 코 고는 소리가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방을 흔들었다.

그때

 밤이 깊어지자 남자의 오른 손  손가락들이 눈을 뜨고 일어났다.

엄지 손 가락이 갑자기 빛을 달고 남자의 손에서 빠져나왔고 다른 손가락들은 땅딸한 키의 엄지를 눈알을 굴리며 바라보았다.

" 애들아.  우리 주인이 오늘 하루 종일 일할 때 내가 없었으면 어떻게 시멘트 자루를 다 옮길 수 있었겠니?

 시멘트 자루를 어깨에 멜 때 내가 떨어지지 않도록 힘을 다해 버텨주었다는 것을 너희들도 다 알 거야. 우리 주인이 이렇게 일찍 쉬게 된 것도 내 힘이 컸어."

엄지는 그렇게 말하며 방 안을 통통  뛰어다녔다. 마침 엄지가 그동안 숨겨온 딱딱한 굳은 살이 창가로 비쳐 드는 달빛에 드러났다.

검지가 그런 엄지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며 말했다.

" 엄지 너는 그 흉하게 튼 살이나 좀 가리렴. 부끄럽지도 않니?  그리고 내가 없으면 네가 무슨 수로 힘을  쓴다고  그래. 내가 단단히 버텨주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음 네 몸의 뼈가 동강 나고 말았을 거야."

엄지는 검지의 말이 맞다고는 생각했지만 주인에게 충성하느라 보기 싫게 굳어진 뱃살을 꼬집는 바람에 자존심이 추락했다. 그래서 콧방귀를 끼고 이렇게 말해버렸다.

"헐~ 주인 콧구멍이나 들락거리며 묵은 쓰레기나 끄집어 내는 주제에."

 이 말을 하자 다른 손가락들도 놀라서 입을 막았다. 그런 더러운 말을 하는 것은 금기사항이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검지는 피가 머리 위로 솟구쳐서 흥분해서 소리쳤다.

" 하지만 우리 주인이 시멘트 가루로 콧구멍에 막혔을 때  내가 안 뚫어 주었다면 주인은 숨이 막혀 죽었을 거야.  그리고  난 더러운 일만 하는 게 아냐. 힘들게 일을 하던 주인이 막걸리로 목을 축일 때 너를 도와 그릇을 잡아 주 주었던 건 나라고?  맛난 점심을 먹을 때 내가 없었으면 주인이 어떻게 김치며 생선을 집었겠니. 내가 없었으면 너는 이 모든 것을 할 수 없었을 거야."

 그러자 가운데 있던 중지가  말했다. 약간을 거드름을 피우는 듯한 태도로,

" 아휴... 잘난 척들 좀 하지 마라.  너희들이 아무리 큰 소리 쳐봤자야.

나야말로 손가락 중의 손가락이란 것을 모르는구나. 신이 나를 제일 사랑하셔서  예쁘고 날씬하게 손가락의 중심에 세우셨단 말이다.

 그리고 엄지야 살 좀 빼렴. 이 시대에 비만은 질병으로 취급받는 것을 몰라?  날씬하고 키도 커야 대접받는 시대란 말이다. 무식하게 힘자랑이나 하다니.

너희들 가운데 내가 없다고 생각해봐. 우리 주인의 손이 모양이나 제대로 나겠니? 너희들 모두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말 거란 걸 모르진 않겠지?"

그러자  넷째 손가락인 약지가 나섰다.

 "  중지 너는 키만 싱겁게 크고 하는 일이 뭐 있다고.  너희들은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약속인 결혼반지며 약혼 반지를 내게 왜 맡기는지 생각이나 해 봤니?

왜 사람들은  목숨을 보존하는 한약을 먹기 전 왜 나에게 먼저 맛보라는 것일까?

나는 가장 거룩한 약속의 손가락이고 인간을 치유하는 깨끗한 손가락이기 때문이야. 나야말로 인간들이 가장 아끼는 손가락이라고."

 약지는 흥분을 억누르며 겨우 말했다.

 

 그때 가만히 눈을 내리 깔고 있던 새끼손가락이 나섰다. 새끼 손가락은 늘 말이 없는 편이었으나 이번에는 꼭 할 말을 하고야 말겠다는 표정으로 나섰다.

" 나는 키도 작고 몸집도 작아. 그래서 새끼라고 이름 지어졌지. 그리고 끝 손가락이라고 하지. 그렇지만  나는 너희들이 앞장서서 일을 할 때 뒤에서 말없이 도왔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겠지?

 내 옆에 있는 손가락ᆞ너는 세상의 이름이 없어 무명지지. 이름이 없다는 것은 존재도 없고 다른 손가락들과 소통도 안된다는 것을 의미해.

네 몸에 약속의 징표인 반지를 끼운다고?

나야말로 나의 몸을 틀어 삶의 미래를 약속하지. 나야 말로 반지 자체지. 새끼 손가락을 거는 약속은 너의 몸에 끼우는 쇠사슬보다 강력한 언어란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새끼 손가락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 그동안 손가락들에게 무시당한 설움이 북받치는 모양이었다. 다른 손가락들은 조용하기만하던 새끼 손가락이 조목조목 따지는 것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새끼 손가락은 계속 말을 이었다.

" 가운데  손가락아.  가운데 우뚝 서서 장지라고 하던데. 키 큰 거는 인정할게. 그렇지만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을 기억해. 지혜로운 사람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주길 바라."

그리고 소지는 멀리 있는 검지를 고개를 빼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검지 너는 역할이 많기는 하지. 그러나 너는 인간의 식욕을 채우는 수단일 뿐이야. 그래서  오죽하면 이름을 식지라고 지었겠니. 너에게서 인간들은 탐욕을 느낄 뿐이야."

소지의 말에 손가락들이 기가 차다는 듯 새끼손가락을 바라보았다.


 검지는  자신의 약점을 찌르는 새끼 손가락이  어처구니없어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그는 인간들이 지식을 쌓을 때 자신의 몸으로 책장을 넘긴다는 사실을 알려주려다 그만 참았다.

 엄지는 혼자 지적인 척 따박따박 따지는 새끼 손가락을 가소롭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중지는 자신의 허리밖에 안 되는 소지를 한대 때려주고 싶었으나 약지가 끼어들까 봐 그만두었다.


   손가락들이 잠잠해지자 소지는 힘을 얻어 이번에는 엄지를 향해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 사람들은 몸집이 큰 너를  우리들의 어머니라 하였지. 그러나 어머니는 사랑과 희생이 따라야 하는데 너는 우리들의 힘까지 다 뺏어서 너의 욕심만 채웠어. 엄지 네가 힘을 쓸 때 나 역시 내 작은 몸뚱이를 오그라뜨리며 너를 도왔어. 그런데도 너는 멀리 떨어진 나에게는 관심도 없었지.  그리고 그것이 너의 모든 힘인 것처럼 떠벌리고 다녔어."

이쯤에서 엄지가 얼굴이 벌게 지기 시작했다. 이때 엄지의 곁에서  눈치를 보던

  검지는 소지를 편들고 싶어서가 아니라  엄지에게 복수할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엄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맞아. 엄지 너는 어쩌면 우리들과 다른 종류일지도 몰라.  이웃나라에서는  너를 '핑거'라 하지 않지"

 처음 들어보는 검지의  말에 엄지가 충격에 휩싸였다. 다른 손가락들도 그럴 리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엄지는 가끔 다른 손가락들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다르게 생긴 자신이 손가락이 아닌 것은 아닐까 하고 고민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충격은 더 컸다.

 마침 가운데 손가락이 앞으로 고개를 숙이며 나섰다.

 평소 엄지 옆에서 자신을 소외시켰던 검지에게 이때 할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사실 중지는 엄지보다 평소에 검지가 더 미웠던 것이다.

" 검지  너는 이 나라에 살면서 이웃 나라의 편견으로 엄지를 몰아세우는구나. 차라리 이웃나라에 가 살지그래. 사람들이 엄지를 치켜세우면 우리는 모두 엄지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할래? 엄지가 다르게 생겼다고 해서 우리들 손가락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엄지를 죽이는 것과 같아."

 검지는 입을 꾹 다물었고 엄지는 자신의 편을 들어준 가운데 손가락이 새삼 멋져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나 힘이 있어 보이던 엄지가 지에게 공격을 당하고 꼼짝 못하는 것을 본 넷째 손가락  약지도 힘을 내어 불만을 토로하였다.

"  새끼손가락이 당돌하게 나를 쓸모없는 손가락이고 이름 없는 손가락이라고 해서 기분이 매우 나빠.

내 몸에는 주인의  오장육부 신경이 다 연결되어 있고 독이 있는지 없는지 위험을 무릅쓰고  약에 내 몸을 담갔던 세월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쓰려.  주인의 건강을 책임져 온 나를 따를 손가락이 있으면 나와봐."

 약지의 이 말에는 다들 아무 말도 없었다.

 근엄한 표정을 짓고 얼굴을 찌푸리던 엄지가 나섰다.

" 예전부터 검지가 나랑 제일 친했고 역시 검지야 말로 나를 제일 이해한다고 느꼈지. 그런  검지가 오늘 나를 미워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어. 이때까지 오케이 사인을 할 때 내 몸을 떠받들어 동그라미를 만들어 주던 검지는 어디로  가고..... 여태껏 둘째 손가락은 나를 좋아하는 척 위선을 떨었던 것이었어."

 뻘쭘해하는 검지를 향해 헤딩을 해 보이던 엄지는 새끼 손가락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중지 옆을 지날 때는 고개를 숙여 감사함을 표했다. 새끼 손가락은  엄지가 다가오자 몸을 벌벌 떨었다.

"연인들이  손가락 걸기로 약속을 한다고? 그래 틀린 말은 아니야. 하지만 그런 약속은 언제나 시간이 지나면  기억도 못하고 잊히지. 너는 이름 그대로 작은 손가락일 뿐이고 마지막 손가락일 뿐인 거야.

그래서 사람들은 너를 믿지 못하고 내 몸에 인주를 묻혀서 절대적인 약속을 행사하였지. 내 몸에 빨간 인주를 묻히는 날에 내 몸은 엄청난 위력을 갖고 종이 위를 날아다니는 것을 너희들도 보았을 거야."

 엄지는 뿌듯한 자부심에 잠겨 들었다.

 "그래 엄지는 인주를 만나면 무한대의 힘을 발휘하기는 해. 인간들도 그런 엄지에게는 고개를 숙였어."

 늘 엄지의 도움을 받던 검지는 앞으로 엄지가 자신을 찾지 않을까 봐 슬쩍 엄지 편을 들고 나서는 것이었다.

그러자 엄지는 기분이 좋아서 배를 앞으로 쑥 내밀었다. 그러자 새끼 손가락은 뒤로 소심하게 물러나며

연약한 몸을 흔들었다. 중지는 피곤하다는 듯 날렵한 몸을 위로 쭉 뻗었고

 엄지는 의기양양하게 자기 자리로 몸을 돌려 날아올랐다.

그때

 주인이 잠꼬대를 하며 일어났다.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네.

 너희들이 그렇다 해도 주인인 내가  안 쓰면 그만인데 무엇이 그리 잘났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야."

 하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손가락들은 주인의 말에 부끄러워 이불 속으로 다들 숨어버렸다.

 

-끝-


*손가락 명칭-첫째: 엄지   둘째: 검지   셋째: 중지  넷째:약지. 무명지  다섯째: 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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